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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패션 파리서 주목받아, 국내 소비자도 응원해줘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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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호 22면

파리로 진격한 패션 디자이너들

‘분더캄머’ 신혜영, ‘잉크’ 이혜미, ‘라이’ 이청청 디자이너.(왼쪽부터) 신인섭 기자

‘분더캄머’ 신혜영, ‘잉크’ 이혜미, ‘라이’ 이청청 디자이너.(왼쪽부터) 신인섭 기자

파리패션위크가 한창 진행중인 지난 6일(현지시간 오후 4시 30분) 파리 브롱나이궁에서 한국 디자이너 4명의 패션쇼가 펼쳐졌다. 서울패션위크에서 지원하는 국내 디자이너 해외 진출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행사로 ‘두칸(DOUCAN)’의 최충훈, ‘라이(LIE)’의 이청청, ‘분더캄머(WNDERKAMMER)’의 신혜영, ‘잉크(EENK)’의 이혜미 디자이너가 참가했다. 이날 쇼장에는 파리패션협회장 파스칼 모란드를 비롯해 프렝땅·봉마르쉐·갤러리라빠예트·네타포르테 등 주요 패션 업체 40개사의 바이어, 보그·엘르·하퍼스바자·패션네트워크·그라지아 등 40개사 패션 미디어 기자, 패션 인플루언서 50명 등 150명이 방문해 K패션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특히 이들 4명의 디자이너는 패션쇼 후 ‘트라노이’ 트레이드쇼에도 참가해 전 세계 바이어들과 수주 상담을 진행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는 파리패션위크 기간 중 최초로 서울패션위크가 전용관을 운영하면서 얻은 쾌거다. 파리에서의 흥분으로 가득 찬 3명의 디자이너를(최충훈 디자이너는 파리 일정으로 귀국 전) 중앙SUNDAY 본사로 초청해 젊은 디자이너로서 느끼는 솔직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잉크

잉크

코로나19로 한동안 오프라인 패션쇼 대신 패션필름을 제작해 디지털 쇼로만 소비자와 만났다. 오랜만에 오프라인 패션쇼를 연 소감이 어떤가.
이청청(이하 라이)=패션필름은 오프라인 쇼에선 구현할 수 없는 연출과 편집이 가능하지만, 오프라인 쇼는 모든 걸 응집시켰다가 한 순간에 폭발시키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얻는 희열이 더 크다.

신혜영(이하 분캄)=현장으로 초대할 수 없는 바이어들에게 브랜드를 소개하기에는 패션필름이 유리하지만 디자이너가 느끼는 감동은 덜하다. 뉴욕패션위크에 데뷔했을 때 패션필름으로 쇼를 상영했는데 현지시각 때문에 나는 서울 집에서 파자마를 입고 쇼를 감상했다. 너무 허무해서 다음 시즌 패션필름 상영 때는 새벽 배송으로 꽃다발을 주문해 혼자 기분을 냈다.(웃음)

이혜미(이하 잉크)=오프라인 쇼가 연극이라면 패션필름은 영화랄까. 디지털 쇼는 누구나 접속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인데, 디자이너로선 팬덤의 관심이 필요하고 현장의 열기가 더 매력적이다.

파리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라이=일단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성황이었다. 초대인원보다 훨씬 많이 와서 쇼를 못보고 돌아간 사람도 많았다. 트라노이에서도 바이어들이 적극적이었다. 온라인 쇼핑보다는 부티크로 직접 찾아가 소비하는 문화가 더 강한 곳이라 바이어들도 패션필름만으로는 수주를 잘 안 하는데, 이번엔 ‘어제 쇼를 봤다’며 자기가 찜한 옷을 찾아 바로 수주를 하더라.

잉크=K컬처의 인기가 실감 났다. 현장 실무자들이 말하기를 파리패션조합의 분위기도 이전과 많이 달랐다고 하더라. 쇼 장소 선정이나 진행 면에서 K패션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적극적이었다. 우리가 쇼를 한 장소는 펜디와 아미도 쇼를 했던 장소다.

분캄=트라노이 내에서도 서울패션위크 전용관을 따로 만들고 홍보까지 대대적으로 하니 다른 나라 디자이너들이 부러워하더라. 자기들은 보따리상처럼 각자 와서 일을 처리하느라 힘들다면서.(웃음)

라이=코로나19로 이번 파리패션위크에 일본·중국 디자이너들이 참석을 거의 못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미리 발 빠르게 움직여 행사를 기획했고, 덕분에 K패션 인지도를 확실히 높일 수 있었다.

라이

라이

K컬처 다른 분야보다 패션은 세계시장에서 인지도가 아직 낮아서 아쉽다.
라이=아버지를 도와 ‘이상봉’ 브랜드로 파리에서 24번의 쇼를 했는데(이청청 디자이너는 이상봉 디자이너의 아들이다), 파리에선 패션위크 기간 동안 르몽드·르피가로 같은 신문 1면에 패션 기사가 게재된다. 가장 좋았던 쇼는 뭔지, 두드러지는 이슈는 뭔지. ‘이상봉’도 여러 번 신문에 소개됐다. 그런데 한국에선 패션 기사가 신문 1면에 나온 적이 없다. 뒤쪽에 소개되는 것도 드물다. 우리 옷이 외국에선 정말 좋은 숍에서 좋은 대접 받으며 팔리는데, 국내에선 ‘신인 디자이너 옷이 왜 이렇게 비싸냐’ 불평이 많다. K드라마 인기가 해외 시장 진출을 견인한 것처럼, K패션도 국내에서 먼저 가치를 인정해준다면 그 분위기가 세계로 전파를 타지 않을까.

잉크=파리로 출장 갔을 때 갈리에르 뮤지엄에서 놀란 적이 있다. 늘 패션 전시가 열리는 곳인데 관객은 패피가 아니라 평범한 남녀노소였다. 아이들은 바닥에 앉아 옷을 그리고, 어른 관객들은 브랜드의 아카이브에 관심이 많더라. 이래서 파리가 패션 왕국이구나. 우리는 지금도 공장 사장님들 설득하기가 너무 어렵다. ‘왜 이렇게 옷을 어렵게 만드냐’ 핀잔 받기 일쑤다.(웃음)

분더캄머

분더캄머

‘국내 디자이너 패션=싼 옷’ 공식이 만연한 데는 디자이너들 책임도 있다.
잉크=2019년 특강 때문에 조사를 해보니 1년에 1000개씩 브랜드가 생기더라. 온라인 유통이 쉬워졌기 때문인데 그만큼 경쟁이 심해졌다. 살아남기 위해 비슷비슷한 옷을 만들고 가격을 낮추는 브랜드가 많아졌다.

라이=브랜드가 많아야 다양성이 생기고 시장도 커진다. 문제는 특정 품목, 특정 트렌드에만 쏠리는 거다. 이제 소비자들도 ‘이 디자인은 왜 비쌀 수밖에 없는지’ 인정해주는 안목이 필요하다.

분캄=잘 나가는 플랫폼일수록 잘 팔리는 제품은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가에게 ‘00몰’ 톤으로 찍어달라고 의뢰하고, 저 브랜드에서 쓴 모델을 나도 섭외해 달라는 일도 흔하다.

잉크=MZ세대는 옷에 관심이 많다. 이런 때일수록 좋은 풍토를 만들어야 할 책임을 느낀다. 언젠가 메타(옛 페이스북)에 가죽점퍼 사진과 함께 ‘이 제품이 75만원일 필요가 없다. 그래서 우린 25만원에 판다’는 광고가 올라왔는데 댓글이 놀랍더라. 가격이 싸서 좋다는 내용이 많을 줄 알았는데, ‘좋은 제품에는 이유가 있다’는 댓글도 많더라. MZ세대의 가치소비를 실감했다. 아직은 그게 해외 명품에 머물러있지만, 점차 개성에 맞는 브랜드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소비자가 늘 것으로 기대한다.

라이=제 살 깎아 먹는 ‘카피 전쟁’도 줄어들길 바란다. 온라인 몰에선 사진이 상세하게 올라오니까 카피가 쉽다. 패션은 저작권을 주장하기 어려워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다. 소비자는 비슷할 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개발비와 오랜 시간의 노력이 숨어 있다. 그 과정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국내 소비자들의 칭찬이 많아지면 우리도 힘이 더 날 것 같다.

서울 밤의 감성, 자연과 공존, 꾸밈없는 멋, 튀는 빈티지 룩

두칸

두칸

두칸 DOUCAN 테마는 ‘서울의 밤, 빛’이다. ‘서울은 밤의 도시다. 서울의 밤은 언제나 활기차고 빛으로 밝게 빛난다’는 게 최충훈 디자이너의 설명이다. 직선적인 구조의 빌딩들과 그 사이로 펼쳐진 역동적인 도로의 곡선을 혼합해 실험적인 구조의 실루엣을 구현하고, 서울의 밤이 품고 있는 컬러풀한 빛을 광택감이 도는 원단으로 재구성했다. 기쁨과 위안을 주는 꽃을 물나염 형식으로 표현한 아트웍 패턴에서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서울 밤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라이 LIE ‘반려식물과 함께 떠나는 스키여행’이 콘셉트다. 자연에서 힐링만 할 게 아니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제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듯 반려식물을 데리고 알프스에 가서 도시 아파트 베란다에선 못 느꼈던 신선한 공기를 씌워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표현했다. 파리 시내에서 구한 동백나무를 비롯해 모델들이 가방에 화분을 담고 나오는 연출을 시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스키복 아카이브에서 발전시킨 그래픽적이며 유니크한 패턴·컷팅·실루엣을 일상복으로 옮겨와 정교한 테일러링과 믹스매치로 표현했다. 더불어 친환경·업사이클링 소재들을 통해 지속가능한 패션도 제안했다.

분더캄머 WNDERKAMMER 시인 윤동주와 그의 시 ‘거리에서’에서 영감을 얻었다. ‘멋 내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어느 시인 하나가 두툼한 모직코트의 깃을 잔뜩 세우고 포켓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로 달빛이 만들어낸 그림자를 친구삼아 눈 내리는 겨울밤을 산책한다’는 게 신혜영 디자이너가 표현하고자 한 무드다. 꾸미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멋스러움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룩이 핵심이다. 의상은 전반적으로 톤 다운된 컬러들로 편안한 분위기다. 드레스 위에 무스탕 점퍼를 무심히 걸치고, 헤어메이크업 역시 집에서 막 산책 나온 것처럼 부스스하게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잉크 EENK 매 시즌 한 가지 주제를 골라 알파벳으로 풀어온 브랜드답게 이번에는 ‘V for VINTAGE’를 콘셉트로 잡았다. 1980년대 패션 매거진들에서 영감을 얻은 우아하고 과장된 스타일의 빈티지 룩이 핵심이다. 80년대는 젠더 이슈가 뜨겁게 일어났던 때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서 슈트 어깨 패드를 과장되게 만든 ‘파워 숄더’가 등장했다. 이혜미 디자이너 역시 여성 슈트에 남성 패션을 접목시켜 과장된 실루엣을 강조하는 동시에, 디스코 시대이기도 했던 80년대의 낙천적인 분위기를 팝 컬러로 표현했다. 블랙 앤 화이트, 데님 온 데님, 파워풀한 실루엣의 쓰리피스 셋업 슈트, 밀리터리 아우터 등이 2022 FW 시그니처 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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