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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일 만에 멈춘 몸 속 돼지 심장, 시한부 환자에겐 ‘희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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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호 24면

진화하는 이종간 장기이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충북 오창분원 미래형동물자원센터에서 발생공학 연구자인 윤승빈 박사(오른쪽)와 정필수 박사가 돼지 난자와 체세포를 이용하여 형질전환 복제수정란을 제작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충북 오창분원 미래형동물자원센터에서 발생공학 연구자인 윤승빈 박사(오른쪽)와 정필수 박사가 돼지 난자와 체세포를 이용하여 형질전환 복제수정란을 제작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지난 9일, 세계 최초로 사람 인체에 이식된 돼지 심장이 멈췄다. 딱 61일간의 희망이었다. 시한부 환자 생명 연장을 위한 돼지 심장의 첫 여정이 안타깝게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미국 메릴랜드대 의료센터가 집도한 이번 이종이식 수술은 다양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한부 환자에게는 새 생명을, 수많은 장기이식 대기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벅찬 희망과 기대를 주었다. 이렇게 환호와 탄식을 한꺼번에 받은 바이오 이종장기가 우리에게 가까이 오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장류 심장·신장 이식 생존 성적 좋아

1996년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에서 복제양 돌리가 탄생했다. 성체 피부세포와 난자의 핵을 치환해 어미와 꼭 닮은 한 마리의 새끼 양을 탄생시켰다. 즉, 늙은 세포가 어린 양으로의 회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들어가는 생명공학 연구비와 영국 정부의 인내심, 그리고 생명 공학자의 끊임없는 열정이 과학사의 한 획을 긋게 한 것이다. 이런 기술은 중대형 동물을 다루는 연구 분야의 큰 혁신을 가져오게 됐다. 이후로 몇 년 되지 않은 2000년대 초에 소·돼지·염소·개 등 다양한 중대형 동물 또는 가축에서 체세포핵 치환법을 이용한 새끼 출산이 가능해졌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개발한 형질전환 미니돼지. [사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개발한 형질전환 미니돼지. [사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특히 체세포의 유전자 조작으로 형질전환 복제동물을 만드는데 이 기법이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런 복제 또는 체세포 핵치환 기술을 기반으로 2001년 미국 미주리대에서 세계 최초로 장기 크기가 사람과 유사한 동물인 돼지에서 초급성 원인유전자 알파갈(α-gal; α-1,3-galactosyltransferase)을 제거할 수 있었다. 비로소 바이오이종장기 또는 이종이식 연구가 본격적인 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미국·유럽 등 바이오 선진국을 중심으로 초급성·급성·혈관성 등 이종이식 거부반응 최소화가 가능하도록 다중 유전자 조작을 통한 면역 적합성 형질전환돼지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국내도 2009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바이오신약장기사업단 사업에 참여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국립축산과학원·단국대·건국대·전남대 등 연합 연구팀이 순수 국내 기술력으로 알파갈 유전자가 제거된 복제돼지 ‘지노(XENO)’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바이오 이종장기 분야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한 초석을 다지게 됐다.

이와 더불어 사이클로스포린 등 여러 종류의 면역 억제제를 섞어 쓰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종이식 면역 거부반응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됐다. 이때부터 바이오 이종장기 연구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실험동물인 원숭이를 이용한 효능평가에 몰입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면역 적합성 형질전환 돼지 장기를 이식받은 영장류의 최대 생존일수는 심장 945일, 신장 499일, 폐 14일, 간 29일 등이 있다. 이를 통해 성적이 우수한 심장과 신장이 사람에게 이식가능한 고형장기로서 주목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15년 미국 하버드의대에서 돼지 내인성(內因性) 레트로 바이러스가 제거된 돼지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많은 과학자들이 우려했던 인체 내 질병 유발 잠재적 위험 요소를 제거할 수 있었다. 바이오 이종장기의 안전성 제고를 통해 인체이식 장벽을 크게 낮추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수많은 걱정 속에서도 이런 과학기술적 성과들의 지속적인 창출을 통해 올 1월7일 세계 최초의 인간 대상 돼지심장 이종이식 수술이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1월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심장병 환자 데이비드 베넷(오른쪽). [EPA=연합뉴스]

지난 1월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심장병 환자 데이비드 베넷(오른쪽). [EPA=연합뉴스]

한편 이번 이종이식 수술을 두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시선과 해석은 물론, 향후 전망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내 몸속의 돼지장기,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고민과 선택을 시작해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첨단 과학기술은 수혜자·피해자·옹호론자·비판론자·방관자 등 다양한 시선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그 갈등 해결은 너무도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생명공학자들 중에서도 찬반이 갈리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기도 하다. 수년 전 중국 연구팀이 유전자가위로 인간 배아를 조작해 출산까지 하게 하는 실험을 단행해 큰 윤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에 비해 본 돼지심장 이종이식 수술은 대체로 시선이 관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방영한 의학 윤리학자, 동물권 단체, 종교인 등에 의한 환자 안전, 동물권리, 종교적 우려 등이 언론에 소개될 뿐이다.

기타 행정적이거나 법적인 제재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반응은 그동안 생명공학자들의 지속적인 연구결과 축적과 다양한 분야와의 지속적 논의가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논란이 해소되었다고도 할 수 없다. 특히 호주 철학자 피터싱어 교수처럼 인간과 동물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라는 공리주의 철학자들의 동물해방론, 종(種) 차별주의 문제 등이 점점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형질전환 돼지의 목숨을 담보로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종 이기주의 논란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대표 저서 『사피엔스』가 생각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와는 달리 매년 증가하는 장기이식 대기자의 사망률 지표를 보면서, 그 당사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그대로 지켜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돼지심장을 이용한 약 두 달간의 생명연장은 어쩌면 최적의 인간 기증자 심장을 이식받기까지 최소한의 기회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윤리적인 기술이 가장 미래지향적

무병장수의 꿈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일 것이다.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간단하지만은 않다. 사람의 몸은 교체 또는 재충전이 가능한 프린터의 카트리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심심치 않게 인공심장·인공폐·인공눈 등 인공장기의 성공사례를 보도에서 접하곤 한다. 이들은 이미 공학적으로 개발된 것들이다. 여기에 바이오 이종장기가 과감하게 그 도전장은 내밀었다. 아마도 앞서 개발된 공학적인 제품들의 상당 부분을 바이오 분야가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생명은 생명 자체로만 대체 가능한 부분이 아직은 너무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류가 직면한 장기 부족 문제를 이런 기술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기대하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러나 언제 우리가 그 수혜자가 될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는 너무 조심스럽다. 앞서 영국의 복제양 돌리 연구처럼 결실을 이루기까지 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 인내와 열정에 달린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달간의 돼지장기 이식 여정이 그 혜택의 시간을 아주 가깝게 느껴지게 한다. 더더욱 인류 치료의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착실히 증명해 나가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이렇게 된다면, 부작용은 최소화되고 기능적으로 가장 우수한 생명연장 기술을 인류가 확보하게 될 수도 있겠다. 결국 미래 인류의 수명도 이런 인공장기 관련 연구들에 크게 좌우될 것만 같다. 특히 ‘바이오’라는 접두사는 고부가가치의 대명사를 넘어 넘사벽의 브랜드가 될 수도 있다. 페로몬 같은 유혹적인 산업이라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시간적으로 그리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양날의 검과 같은 기대와 우려의 상황에서 우리는 이종이식 등 첨단 생명공학 기술에 대해 체계적인 논의를 속히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제기된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가 시대의 흐름이자 숙제인 지금, 고도화된 문명기술을 초연결 또는 하나로 융합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더불어, 윤리 논란과 같은 다양한 시각과 갈등을 보다 성숙한 방법으로 녹여내는 지혜 또한 매우 절실한 시점이다.

최근 이런 초연결의 시대에 적합한 인간을 새로운 용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창의적 지식을 갖춘 융합지식형 인간인 ‘호모 컨버젼스’(homo convergence) 또는 융복합형 인간인 ‘호모 인테그레투스’(homo integretus)가 그것이다. 즉 현생 인류는 윤리·동물·생명 등과 같은 철학 및 인문학적 사고와 더불어, 생물·화학·물리·전기·전자 등 과학적 사고에 대한 종합적인 통찰력이 가능한 ‘메타인사이트 사피엔스’(meta-insight sapiens)가 중요한 생존 및 진화 포인트가 될 것도 같다. 다양한 논의와 합의가 너무도 자연스럽고 존중될 수 있는 보다 성숙한 과학문명사회를 꿈꾸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 필자는 항상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가장 윤리적인 기술이 가장 미래지향적이다’. 우수한 기술력을 확보한 바이오 이종장기 분야도 다양한 윤리와 철학이 장착되고 보완되도록 국가사회가 활발한 논의의 장과 체계화된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주 생명공학을 논하고 있는 최첨단의 시대에서 대한민국이 그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김선욱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미래형동물자원센터장. 고려대 응용동물과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동물번식학으로 석사를, 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26년째 근무하고 있다. 현재 미래형동물자원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장관 표창(2020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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