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월드컵 세대’ 유권자 분석]남성 “한 쪽만 병역의무 불공평” vs 여성 “사회 구조적 차별 남아 있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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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시위에 나선 여성단체들. [뉴스1]

지난 1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시위에 나선 여성단체들. [뉴스1]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20대의 표심은 선명하게 갈렸다. 지상파 방송3사 출구 조사 결과 20대 남성 10명 중 6명(58.7%)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20대 여성 10명 중 6명(58%)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지지했다. 이들이 지지 후보를 정한 가장 큰 요인은 젠더 문제다. 중앙SUNDAY의 포스트 월드컵 세대 조사 대상자의 상당수는 여성가족부 폐지 등 젠더 문제를 1순위(21.1%) 혹은 2순위(16.5%)로 고려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 성별은 이념, 계층, 지역과 더불어 정치적 선택에 있어 중요한 기준으로 부상했다”고 진단했다.

이는 정치권이 선거에 성별 갈라치기를 악용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 정치권이 젠더 갈등을 일종의 지분싸움으로 만들었다”며 “마치 이 성별은 내 편이고, 다른 성별은 저편인 것처럼 묘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치권이 의도적으로 성별 갈라치기를 하며 유권자들의 반발이 커졌다”며 “한쪽에 강한 주장을 하게 되면 이번 선거 결과와 같이 반작용이 형성되므로 결코 바람직한 전략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실제 성별에 따라 20대가 체감하는 성평등 정도는 다르다. 2000년대 전후 태생은 과거 세대보다 성차별이 눈에 띄게 줄어든 시대에 성장한 세대다. 하지만 대학 입학 후 남학생에겐 ‘병역’이라는 변수가 생긴다. 대학생 이모(21·남)씨는 “어렸을 때부터 남녀는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성평등 교육을 받으며 자랐는데 남성만 병역의 의무를 부담하는 건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형 교수는 “남성 청년들은 사회적·물질적 보상이 없는 것에 더해 심지어는 조롱까지 받는다고 느낀다”며 “또래 여성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여성 정책에 대한 반감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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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20대 여성은 다른 지점에서 성차별을 체감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언제든 성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남아 있는 구조적 차별을 자신이 겪게 될 미래라고 생각한다. 지난 7일(현지시간)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10년 연속 주요 국가 중 최하위(29위)를 기록했다. 남녀 성별 임금 격차도 3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 수준이다. 김호기 교수는 “주변 선배, 가족 등의 사례를 통해 구조적 차별을 접한 20대 여성은 이를 예민하게 느끼고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데 초점을 맞춘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김민주(23·여)씨는 “이번 선거에서 실제로 분명히 존재하는 성차별이나 여성 혐오를 모두 지워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시각차는 중앙SUNDAY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두드러진다. 병역 자원 부족의 대안으로 남성 응답자의 51.5%는 여성 징병제 도입을 택했고, 모병제 조기도입(29.9%)이 뒤를 이었다. 여성 응답자의 경우 모병제 조기도입(26.4%)과 복무 기간 연장(24%)을 많이 꼽았다. 남녀갈등 해소방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남성의 33%는 ‘특정 성별을 위한 가산점, 할당제 폐지’ 방안을 선택했고, ‘병역, 육아 등에 대한 보상을 늘려 갈등 요소를 줄여야 한다’(29.9%)가 뒤를 이었다. 여성의 경우 60.3%가 ‘성범죄, 성차별에 대한 법적인 처벌 강화’를 선택했다.

일각에서는 Z세대가 마주한 저성장 시대가 젠더 갈등의 근원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성별로 해결 방안이 다른 것은 포괄적으로 보면 당장 눈앞에 이익에 민감해진 20대의 특징이 반영된 것”이라며 “가난과 빈곤 경험 없이 성장했는데 미래가 불확실하고 빈곤이 확실하다 보니 자신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이주희(25·여)씨도 “유독 MZ세대에서 남녀갈등이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경쟁상대’가 되었기 때문”이라며 “나눠 먹을 수 있는 파이가 작아진 상태에서 여성과도 경쟁해야 하니 혐오의 불씨가 더 커진 듯하다”고 말했다.  이은형 교수는 “남성 청년에게 가장 큰 인생 경험 중 하나인 군대와 관련된 사회적 인정과 함께 구조적인 성차별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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