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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축구장 3만개 태웠지만 "산불 탄 나무, 안 잘라도 된다" [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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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13시간’ 태운 산림…나무 생존률은?

지난 14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점리의 해발고도 800m 한 야산. 작은 나무가 산 곳곳에 빼곡히 심겨 있었다. 대부분의 나무는 높이 1m를 넘지 않았고 작은 나무는 20㎝ 정도 크기였다. 이곳이 벌거숭이 산이 된 건 2017년 5월 6일부터 나흘간 이어진 산불 때문이다. 당시 산불로 이 일대 국유림 259㏊, 사유림 506㏊ 등 765㏊에 달하는 산림이 잿더미가 됐다.

지난 14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점리의 해발고도 800m 한 야산. 2017년 5월 발생한 산불로 큰 나무들이 모두 잘려나간 가운데 수백 그루의 나무가 살아남아 울창한 숲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4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점리의 해발고도 800m 한 야산. 2017년 5월 발생한 산불로 큰 나무들이 모두 잘려나간 가운데 수백 그루의 나무가 살아남아 울창한 숲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반면 길을 따라 200m가량 이동하자 15~20m 높이의 소나무 수백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지역에 남아있는 나무라고 보기엔 상당히 건강해 보였다.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자 땅에서 1~2m 높이엔 여전히 산불이 휩쓸고 간 그을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표화’ 피해지는 상당수 살릴 수 있어

지난 14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점리의 해발고도 800m 한 야산. 2017년 5월 발생한 산불로 큰 나무들이 모두 잘려나간 가운데 수백 그루의 나무가 살아남아 울창한 숲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4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점리의 해발고도 800m 한 야산. 2017년 5월 발생한 산불로 큰 나무들이 모두 잘려나간 가운데 수백 그루의 나무가 살아남아 울창한 숲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경북 울진·강원 삼척 산불이 계속된 지난 8일 경북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 일대에서 산불진화대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울진·강원 삼척 산불이 계속된 지난 8일 경북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 일대에서 산불진화대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경북 울진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강원 삼척시까지 번져 동해안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면서 산림 복구 방향에 관심이 쏠린다. 국내에서 발생한 산불 중 가장 긴 213시간 동안 이어진 산불로 울진 1만8463㏊, 삼척 2460㏊ 등 2만923㏊가 피해를 봐서다. 비슷한 시기 발생한 강릉·동해, 영월 산불까지 합치면 산불 피해 면적은 축구장(0.714㏊) 3만5018개 크기인 2만5003㏊에 달한다.

현재 지자체 등은 산불 피해지역의 나무 대부분을 베어내야 할 것으로 보는 가운데 ‘산불 피해목을 모두 베지 않아도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강원석 박사팀은 17일 “직경 44㎝의 소나무가 지표면에서 2m 아래까지만 그을렸다면 생존율이 9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 산불 피해를 본 나무를 전부 자르지 않아도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2017년 산불 피해 ‘353그루’…80% 생존율

경북 울진·강원 삼척 산불 엿새째인 지난 9일 강원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 고포해변 주변 일대 산림이 불에 타 까맣게 그을려 있다. [뉴스1]

경북 울진·강원 삼척 산불 엿새째인 지난 9일 강원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 고포해변 주변 일대 산림이 불에 타 까맣게 그을려 있다. [뉴스1]

경북 울진·강원 삼척 산불이 나흘째 이어지는 지난 7일 오전 경북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의 한 장뇌삼밭이 불타고 있다.[연합뉴스]

경북 울진·강원 삼척 산불이 나흘째 이어지는 지난 7일 오전 경북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의 한 장뇌삼밭이 불타고 있다.[연합뉴스]

강 박사팀은 산불 피해목 존치 여부의 신속한 판단과 갈등 해소를 위해 2017년부터 ‘산불 지표화 피해지의 소나무 피해목 고사 여부 판단 연구’를 해왔다. 대형 산불이 발생한 후 신속한 복원을 위해선 산불 피해목의 고사 여부를 빠르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산불 피해 후 판단을 잘못하면 살 수 있는 나무가 잘려나가거나 고사할 나무를 베지 않았다가 일을 두 번 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산불 피해목의 고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 산불 발생 후 피해목을 베는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2019년 4월 발생한 속초·고성 산불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당시 산불 피해를 본 속초시 영랑호 주변 소나무를 베는 과정에서 속초시에 민원이 쏟아졌다. 주민들은 “영랑호 주변의 멀쩡한 나무를 왜 베어내는 것이냐”며 “잎이 푸르게 살아있는 나무까지 베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랑호 주변은 나무가 많은 데다 산책로가 잘돼 있어 주민이 자주 찾는 곳이어서다.

이에 속초시는 영랑호 주변의 경우 산책로이기 때문에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고사하면 안전사고 등의 위험이 있어 제거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속초시는 “지금은 멀쩡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른 뒤 고사할 가능성이 커 제거했다”며 “지금 제거하지 않으면 2~3년 뒤에 고사한 나무를 다시 한번 치우는 일을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나무 직경’과 ‘그을음’ 피해목 고사에 큰 영향

산불 피해목 그을음 지수 산출방식.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산불 피해목 그을음 지수 산출방식.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지난 14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점리의 해발고도 800m 한 야산. 2017년 5월 발생한 산불로 큰 나무들이 모두 잘려나간 가운데 수백 그루의 나무가 살아남아 울창한 숲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4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점리의 해발고도 800m 한 야산. 2017년 5월 발생한 산불로 큰 나무들이 모두 잘려나간 가운데 수백 그루의 나무가 살아남아 울창한 숲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강 박사팀은 실험 과정에서 피해 강도가 ‘심(深)·중(中)·경(輕)’ 가운데 ‘경’인 1.5㏊를 3개 구역(A·B·C)으로 나눈 뒤 잎이 타지 않은 353그루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현재까지 69그루(19.5%)만 고사하고 284그루(80.5%)는 살아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산불 피해 나무의 경우 피해 강도를 ‘심·중·경’으로 분류한다. 심의 경우 나무의 잎과 가지가 시커멓게 탄 것을, 중은 잎 전체가 갈변한 상태를, 경은 불이 스치고 지나가 대부분이 푸른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강 박사팀은 그을음과 고사율은 높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산불 피해목의 입지특성, 생육특성, 그을음 특성을 조사해 분석한 결과 나무의 직경과 그을음 정도가 피해목 고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이에 강 박사팀은 산불 피해목의 ‘흉고직경(DBH)’과 ‘그을음 지수(BSI)’로 고사율을 알 수 있는 공식도 만들었다. 그을음 지수 산출 방법은 산불 피해목을 동·서·남·북 4개 면으로 나눈다. 면별로 그을음 흔적의 높이와 비율을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측정해 나온 값을 고사율 표에 대입해 생존확률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직경 44㎝에 잎이 푸르고, 지표면에서 동 1.8m, 서 1.8m, 남 0.8m, 북 1m 높이까지 그을린 C구역 1번 나무의 경우 고사율 표에 대입하면 생존확률이 95~96% 수준으로 예측됐다. 해당 연구는 ‘산불 후 소나무의 고사 여부 진단예측방법’으로 지난해 4월 7일 특허출원 후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2020년 산불 피해지 ‘180그루’ 중 2그루만 고사

지난 14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점리의 해발고도 800m 한 야산. 2017년 5월 발생한 산불로 큰 나무들이 모두 잘려나간 가운데 수백 그루의 나무가 살아남아 울창한 숲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4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점리의 해발고도 800m 한 야산. 2017년 5월 발생한 산불로 큰 나무들이 모두 잘려나간 가운데 수백 그루의 나무가 살아남아 울창한 숲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4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점리의 해발고도 800m 한 야산. 강원석 국립산림과학원 박사가 2017년 5월 발생한 산불에서 살아남아 남은 소나무의 직경을 제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4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점리의 해발고도 800m 한 야산. 강원석 국립산림과학원 박사가 2017년 5월 발생한 산불에서 살아남아 남은 소나무의 직경을 제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강 박사팀은 2020년 10월 강원 정선군 신동읍 산불 피해지에도 피해목을 관찰할 수 있는 구역을 만들었다. 당시 180그루를 지정해 연구 중인데 현재까지 단 2그루만 고사했다고 한다.

강 박사팀은 올해 산불의 경우 대부분 7부 능선 기준으로 아래쪽은 지표화(地表火) 피해를, 위쪽은 수관화(樹冠火)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표화란 낙엽 등 지표면에 있는 연료가 불이 타는 것을 말한다. 수관화는 지표화로 진행되는 산불이 연소성이 강한 연료와 만나 나무의 윗부분이 타는 것을 말한다. 소나무 등 침엽수림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확산속도가 빠르고 피해 규모도 크다.

강 박사는 이런 이유로 7부 능선 아래쪽은 비교적 피해가 작아 살릴 수 있는 나무가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강 박사는 “산불 당시 불을 맞았더라도 피해 정도가 ‘경(지표화 피해지)’인 지역의 나무는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 연구를 시작했다”며 “불에 맞았다고 모든 나무를 다 베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강 박사팀은 산불 피해목 생존 여부를 더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음파 단층촬영을 이용한 내부진단도 진행할 예정이다. 나무 단면의 음파 속도를 측정해 내부 생육상태를 진단하는 것인데 쉽게 표현하면 사람에게 초음파 검사를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강 박사는 “산불 피해목의 경우 3년 정도 버티면 살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며 “산불의 경우 불이 나기 전 산림의 상태로 돌아가려면 30년이란 세월이 필요한 만큼 이번 연구가 많은 나무를 살리고 빠르게 산림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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