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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직격인터뷰

‘대형산불=4월 강원도’ 공식 깨져, 대응도 달라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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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우균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가 15일 캠퍼스 임학동산의 약 100년 된 금강송 앞에서 소나무(침엽수)와 참나무(활엽수) 가지를 들고 갈수록 대형화하는 산불의 특성과 대응책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우균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가 15일 캠퍼스 임학동산의 약 100년 된 금강송 앞에서 소나무(침엽수)와 참나무(활엽수) 가지를 들고 갈수록 대형화하는 산불의 특성과 대응책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경북 울진, 강원도 삼척·강릉·동해에 걸친 동해안 일대 초대형 산불은 지난 4일 시작돼 비가 내린 지난 13일 오전에 주불(큰불)이 잡혔고 잔불 진화도 마무리 단계다. 하지만 역대 최장(213시간)이란 부끄럽고 안타까운 기록을 남겼다. 이번 산불 영향 구역은 울진·삼척을 합쳐 2만923㏊와 비슷한 시기에 산불이 난 강릉·동해 일대(4000㏊)를 합하면 피해 지역이 서울 면적의 41.2%에 이른다. 역대 최대 규모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갈수록 잦아지고, 피해 규모도 날로 커지는 산불에 대한 근본 대책은 없을까. 화마가 잿더미로 만든 산에는 어떤 나무를 심어 전화위복으로 삼아야 할까. 이우균(61)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를 만나 진단과 대책을 들어봤다.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임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소나무 전문가다. 기후변화학회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이사장으로 있다.

[소나무 전문 임학자 이우균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 #기후위기로 산불 발생 시점 3월로 앞당겨지고 피해 커지는 추세 #지번·지적 아닌 유역·지역 단위로 산림 관리하고 수종도 개량해야 #산림청 헬기 보완 서둘려야…노후 기종 많고 야간용은 1대에 그쳐 #식목일 3월 중순으로 옮기고 범정부 차원 산불 대응 시스템 필요 #

미국·호주·그리스만의 문제 아니야
 -위성 사진에 거대한 산불 연기 기둥이 관측됐다.
 "매우 안타까웠다. 산림은 공급·지원·조절·문화 등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번에 약 250만㎥의 입목 자원이 소실됐다. 숲속 모든 동식물과 생태계 물질순환이 타격받았다. 정확히 계산을 해 봐야겠지만, 이번 산불로 약 150만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 것으로 추산한다. 산불은 단순히 산에 난 불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 재난(Disaster)이다. 열흘 이상 타는 산불은 고온 건조한 미국·호주·그리스에서만 발생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만큼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게 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온난화로 기온이 1.5℃ 상승한 상태에서 0.5℃가 추가 상승할 경우 산불 피해가 커진다."
 -산불 패턴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
 "그동안 산불은 3월 말 시작해 4~5월까지 이어졌다면 이번 산불은 3월 초에 발생했다. 거의 한 달이나 앞당겨지고 범위도 전국화하고 있다. '대형산불은 4월, 강원도'라는 등식이 깨졌다. 겨울과 봄으로 이어지는 가뭄과 변화무쌍한 바람이 봄철 산불을 더 많이 일으키고 있다. 최근 10년간 국내에선 매년 평균 약 481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지난 13일 기준으로 293건이 발생, 10년 평균(134건)의 2.2배다. 정권 말이고 대선이 겹친 시점인 데다 이번 산불은 발생 시기와 극단적 기상·환경, 확산 속도와 규모, 진화의 어려움, 장기화 등을 정부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 것 같다. 산불의 패턴 변화에 걸맞은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 "
 -산불 대응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앞으로는 산불 예측과 예방을 겨울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4월 5일 식목일을 3월 초·중순으로 앞당기는 것도 방법이다. 산불이 신속확산·대형화·장기화하니 이번 재난을 계기로 원전·LNG기지·저유소 등 국가기간시설 671개소에 대해 산불 발생 위험을 반영해 관리해야 한다. 금강송 군락지에는 활엽수로 방화 수림대(내화수림대)를 조성해야 한다. 산불을 중대 재난으로 인식하고 산림청뿐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것이다. 임업과 산림소유주가 소외되고 배제된 상태의 재난대응 체계는 한계가 있다. 피해당사자인 임업인과 산림 소유주가 참여하는 예방과 방제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경북 울진군 북면 야산에서 지난 4일 산불이 발생하자 초대형 헬기가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산불은 지난 13일 비가 오면서 주불이 잡혔다. 213시간 동안 계속돼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연합뉴스]

경북 울진군 북면 야산에서 지난 4일 산불이 발생하자 초대형 헬기가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산불은 지난 13일 비가 오면서 주불이 잡혔다. 213시간 동안 계속돼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연합뉴스]

여전히 부족한 소방인력과 장비
 -산불을 키우는 주요 원인은.
 "산불 발생 및 확산의 3요소는 기상·지형·연료다. 지난해 12월에서 지난 2월까지 강수량은 13.3㎜로 평년대비 14.6%에 불과했다. 1973년 이후 최저 강수량이다. 생장 활동을 시작하기 전의 식물은 가뭄 시기에 말라 있어 불에 잘 타는 연료 역할을 한다. 봄철에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지형적 특성에 따른 양간지풍(襄杆之風)이 분다. 국내 산불은 거의 사람이 일으킨 것인데 봄철에 농사와 나들이 활동이 늘어나면서 입산자의 실화가 산불의 33.3%를 차지한다. 가뭄과 바람 등 날씨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사람으로 인한 산불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담배꽁초 등 실화 처벌 수위는 적절한가.
 "산림 보호법 제53조에 따르면 타인 소유 산림에 불을 지르면 징역 5년 이상, 15년 이하다. 하지만 실제로 중형을 받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산불이 대형화하고 있고 지역주민은 물론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탄소배출로 이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처벌이 경미하다. 사유림에 함부로 들어가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이란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산불 감시 및 대응 시스템은 충분한가.

 "산림청에 따르면 산불감시원 1만2000명을 배치하고 감시카메라(CCTV) 1448대와 드론감시단(32개) 208명을 운영하고 있다. 산림청이 소방헬기 47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13대는 30년 이상 노후 기종이다. 초대형 헬기는 6대뿐이고, 야간 산불 대응을 위한 헬기는 1대뿐이다. 산불전문 예방진화대 9600명, 산불 특수진화대가 435명인데 아직 부족하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산림청뿐만 아니라 지자체별로도 대응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산불·들불 위험 지도 만들어야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
 "산림청의 산불위험도 예측모형은 보통 기상인자에 기반해서 이뤄지는데, 넓은 면적에 대해 위험 수준만 예보된다. 그러나 산불은 넓은 곳 중 특정 장소와 시간에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찾아내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산불과 들불이 시작될 수 있는 ‘연료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마을·주택·온실 등의 분포지도를 통해 어느 생활공간이 산불 위험지와 가까운지 파악해 관리할 수 있다. 기상과 지표면 정보를 함께 이용한 진단모형을 만들면 위험도를 구체적인 장소 단위로 예측할 수 있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 정보 등을 통해 사람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 앱을 만들어 구체적인 공간에 시간 단위도 추가된 예보 및 경고시스템이 가능하다."
 -불에 소실된 산들을 어떻게 복구할까.
 "단기적으로는 산사태와 토사 유출이 일어날 위험이 높으므로 집중호우에 따른 토양유실 등 2차 피해 우려 지역에는 6월 이전에 사방 복구사업을 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산불피해 지역을 경제·생태·경관·환경적 측면에서 가치가 높은 산림으로 복구해야 한다. 정밀 조사를 통해 기후‧토양 등 자연환경과 산림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지역주민과 사유림 소유주(山主) 등과 협의해 복구 수종(樹種)을 선정해야 할 것이다."

이우균 고려대 환경생태공학과 교수가 15일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 교수는 산불 피해를 줄이려면 장기적으로 침엽수를 활엽수로 수종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경록 기자

이우균 고려대 환경생태공학과 교수가 15일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 교수는 산불 피해를 줄이려면 장기적으로 침엽수를 활엽수로 수종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경록 기자

 -소나무가 유달리 산불에 취약한가.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침엽수는 화염 유지 시간이 57.3초, 활엽수는 23.0초다. 대표적 자생 수종인 소나무가 불에 잘 타는 것은 맞지만, 소나무숲이 위치한 기상과 지형 조건에 따라 산불 발생과 확산 패턴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산림청의 조림 및 숲 가꾸기 정책이 소나무 위주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산불 피해를 줄이려면 수종을 다양하게 바꾸되 활엽수로 수종을 갱신할 필요가 있지만, 문제는 토질이다. 산불이 난 곳은 토양이 척박해져 활엽수보다 침엽수가 잘 자란다고 보고되고 있다.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지역에 활엽수를 많이 조림했으나, 20년이 지나고 보니 대부분 죽고 다시 소나무 숲이 된 곳도 있다. 산림청이 활엽수가 잘 자랄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다. 숲 가꾸기를 통해 밀도를 적절히 조절하면 산불 대형화를 막을 수 있다."

산림 관리 잘하면 인센티브 줘야
 -산림 관리 행정 체계는 문제없나.
 "전체 산림의 67%가 사유림이다. 지번·지적에 근거해 파편적으로 조림과 벌채가 이뤄지고 있다. 하나의 유역에 있는 산림이 소규모로, 수백 또는 수천 개의 지번과 소유주로 쪼개져 있다. 사유지는 산불이 나도 제대로 보상을 못 받으니 권한과 책임을 갖고 관리할 동기 부여가 잘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산림정책이 있어도 현장에서 제대로 산림관리를 할 수 없다. 이제는 최소 유역 또는 지역 단위로 바꿔 관리해야 규모의 경제를 갖춘 산림 경영이 가능하다. 그래야 환경생태적으로 건강하고, 온실가스 흡수 및 저장도 잘하고,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산림을 유지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임업 직불제' 활용이다. 유역 단위의 산림관리와 지역 기여 등을 고려해 인센티브를 주면 좋겠다."

이우균 고려대 환경생태공학과 교수는 1973년 1차 치산녹화계획을 시작한지 50년이 지났으니 향후 50년을 내다보고 미래 우리나라 산림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이우균 고려대 환경생태공학과 교수는 1973년 1차 치산녹화계획을 시작한지 50년이 지났으니 향후 50년을 내다보고 미래 우리나라 산림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산림 정책의 개선 방향은.

 "박정희 정부 때인 1973년 1차 치산녹화계획을 시작하면서 복구를 위한 속성수 조림, 이후 경제성 있는 수종을 조림해 산림을 푸르게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후 무엇을 위해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부족했다. 우리 산림은 대부분 40~50년생이라 아직은 더 잘 가꾸어야 한다. 수익성, 환경 및 기후변화,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고려해 산림의 미래상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산림관리를 해나가야 한다. 산림 복구 50년 차인 지금은 2단계 미래산림의 모습을 그려야 할 때다. 어떤 나무를 심고, 어떻게 가꿀 것인지 시간과 장소별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이시영 인턴기자가 인터뷰 정리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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