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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문재인과 윤석열의 검찰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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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현철 사회디렉터

최현철 사회디렉터

검찰은 문재인 정부 내내 가장 뜨거운 곳이었다. 초반엔 적폐수사로 정·재계와 사법부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중반부엔 그 수사의 주역이 검찰총장으로 발탁됐는데, 돌연 칼끝을 정권 심장부로 겨눴다. 드러난 정권 핵심부의 비위를 덮고, 그 주역과 추종세력을 어떻게 내쫓을지 골몰하며 후반부가 지나갔다. 억지스러운 지시와 항명, 격투기에 가까운 몸싸움 등 추한 모습도 노출됐다.

모든 일의 주역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결국 검찰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야당의 대선 후보로 나서서 당선됐다. 이렇게 탄생한 첫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친정을 어떻게 다룰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문 정부, 검찰개혁 하다 혼란만
윤 “권력비리 엄단이 검찰개혁”
“검찰공화국 회귀” 우려 씻어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020년 ‘윤석열 사단 대학살’ 이후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020년 ‘윤석열 사단 대학살’ 이후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언급한 검찰의 추한 모습은 ‘검찰 개혁’을 둘러싼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실 ‘검찰 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금과옥조였다. 명분은 기소를 독점하고 경찰을 지휘하며 수사권까지 갖는 등 검찰에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됐다는 진단에서 출발한다. 그 권한을 이용해 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선뜻 부응하고 편파 수사와 인권침해를 서슴지 않으며, 스스로 권력화한다고 봤다.

이런 진단은 노무현 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내며 검찰개혁을 시도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내린 것이다. 김인회 인하대 교수와 함께 펴낸 『검찰을 생각한다』(2011)에서 이미 진단과 함께 처방까지 내놓았다. 요체는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중립성을 보장하되, 민주적 통제 아래 둔다는 것이다.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등 검찰 힘 빼기는 정권 초기부터 시행됐다.

문제는 검찰의 중립성 보장과 민주적 통제는 형용모순에 가깝다는 점이다. 한쪽을 강조하면 다른 쪽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는 중립성 보장에 좀 더 주안점을 두었다가 검찰의 저항에 밀려 쓴맛을 봤다. 그래서 이번 정부는 민주적 통제에 집착했다. 권한 많은 검찰은 부패하고 군림하기 마련이니 선출된 권력이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선출된 권력의 통제는 다 민주적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서 뇌피셜이 작동한다. 이전 정부는 죄다 악당이고 민주화 운동 출신에 촛불 혁명을 등에 업은 자신들만 유일하게 민주적이라는 것이다. 현실과 맞지 않는 자아도취적 규정은 처음부터 비극을 잉태했다. 하필 도덕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조국 전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되며 갈등이 폭발했다.

반면 윤석열 당선인의 검찰개혁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권력형 비리를 엄단할 수 있어야 하며, 일반인 사회 약자는 훨씬 더 배려하는 법 집행을 하는 것”이다. 후보 시절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핵심은 검찰이 권력 수사를 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후자는 능력 있고 힘센 검찰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도랄까.

보복수사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부에서 미운털이 박혀 좌천을 거듭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발탁하겠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공수처나 경찰에 넘겨준 수사권은 일단 지켜보겠지만, 제대로 안 된다는 싶으면 폐지할 태세다. 한발 더 나아가 민정수석실과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겠다는 보완책도 냈다. 정치와 청와대도 검찰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지난 3년간 수사는 제대로 못 하고 내분만 계속해온 검찰을 지켜본 국민으로선 “거악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수사만 없어졌다”는 윤 당선자의 일침에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그런데도 뒤끝이 썩 개운하지 않다. 검찰은 조직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대형 수사로 존재감을 알렸다. 자연스럽게 검찰개혁은 잘하는 조직의 뒷다리 잡기로 비친다. 노무현 정부가 시도한 개혁도 대선자금 수사 후 동력을 잃었다.

조직을 지킨 검찰은 똑같은 행태를 되풀이했다. 벤츠 여검사, 김학의 전 차관, 김광준 부장검사 등 스폰서 접대와 뇌물을 받은 검사들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사건을 축소·은폐하기에 급급했다. 다스 실소유주 의혹이나 국정농단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정윤회 사건 등 권력의 치부는 알아서 덮었다. 반면 한 번 문 표적은 주변까지 탈탈 터는 별건 수사 관행이 계속됐고, 수많은 사람이 조사를 받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수사 잘하는 검찰로의 변화는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변화가 화려하고 빛날수록 선별적으로 수사하고 정치권력과 유착하는 검찰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질 수 있다. 윤 당선자의 인식은 자칫 “빛이 찬란하면 그림자쯤 별것 아니다”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검찰 공화국으로의 회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림자를 지우는 방법은 빛을 여러 각도에서 비추는 것이다. 수사 잘하는 것만 보지 말고, 인권을 잘 지키는지, 권한을 남용하지 않는지, 제 식구를 감싸지는 않는지 다양하게 따져봐야 하는 조직이 검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