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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의 시선

총체적 실패 ‘부동산 징비록’ 남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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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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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임기 5년간 부동산 정책은 총체적 실패였다. 임기 초반 큰소리친 대로 집값을 잡기는커녕 설익은 정책 남발로 시장을 들쑤셔 놓기만 했다. 과거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지만 결과는 노무현 정부의 판박이였다. 결국 성난 부동산 민심은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 말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선거운동 과정에서 같은 말을 했다. 시장을 무시한 현 정부의 오만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늦었지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징비록’이라고 할 만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바둑으로 치면 어떤 수가 패착이었는지 복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수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실책을 세 가지로 정리해봤다.

공급 무시, 임대차법, 징벌적 세금
현 정부 주택정책의 결정적 실책
철저한 반성, 실용적 대안 있어야

첫째는 공급을 무시한 마구잡이식 규제다. 시장에서 가격을 움직이는 건 수요와 공급의 원리다. 그런데 현 정부는 처음부터 주택공급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대신 투기 세력을 뿌리 뽑아야 집값도 잡을 수 있다고 봤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현 정부 출범 전부터 내세운 소신이었다. 그는 『부동산은 끝났다』라는 책에서 “우리 사회는 끊임없는 공급부족론의 미혹에 빠져 있었다”는 주장을 폈다.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도 그의 소신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가 시장 원리를 무시한 대가는 처참했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는 말로 비웃음을 샀다. 새집을 지으려면 토지 확보에서 건축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런 당연한 상식을 깨닫는 데 정부는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 현 정부 출범 후 3년 6개월이 지나서야 주택공급의 중요성을 인정했지만 이미 늦어도 너무 늦은 때였다.

둘째는 사회적 약자 보호의 역설이다. 정부와 여당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속도전으로 국회를 통과시킨 임대차 3법이 대표적이다. 가뜩이나 비쌌던 집값과 전셋값은 임대차법 시행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세입자를 보호한다고 했지만 정작 가장 고통받은 사람은 새 전셋집을 구하는 세입자였다. 2020년 하반기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10.8%를 기록했다. KB국민은행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86년 이후 34년 만에 최고치였다. 이러다 ‘벼락거지’를 면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패닉 바잉(공황 매수)’에도 불이 붙었다.

이렇게 중요한 정책을 도입하기 전에는 치밀한 사전 검증과 분석이 있어야 한다는 전문가와 야당 의원(윤희숙 전 의원)의 지적은 철저히 묵살했다. 지금 다시 돌아봐도 당시 정부와 여당이 왜 그렇게 무리하게 밀어붙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놓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임대차법을 통해 세입자와 집주인, 서민과 부유층의 대결 프레임을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한다.

셋째는 징벌적 부동산 세금이다. 그동안 역대 정부가 추진해온 부동산 세금 정책의 큰 방향은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였다. 그렇다고 보유세를 무차별적으로 강화하자는 건 아니었다. 납세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상 폭과 속도 조절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원래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임기 중반까지는 “크게 보면 보유세는 강화하고 거래세는 낮추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쪽으로 정책 기조가 돌아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020년 7월 “취득·보유 및 양도의 모든 단계에서 세 부담을 크게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집을 살 때도, 갖고 있을 때도, 팔 때도 한결같이 무거운 세금을 매기겠다는 얘기다. 홍 부총리의 전임자(김동연 전 부총리)가 전한 청와대 회의의 풍경은 충격적이다. 그는 “대통령 앞에서 청와대 핵심이 양도차익 100% 과세를 언급하자 고성이 오가며 싸웠다”고 했다. 이념을 앞세워 고집을 부리는 청와대 핵심 참모 앞에서 합리적인 정책 토론이 설 자리는 없었다.

이제 50여 일 뒤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이후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새 정부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뒤집으려고 하지는 말아야 한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이걸 무리하게 되돌리려고 하면 또 다른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국회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할 것이다. 아무쪼록 새 정부는 일방통행식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시장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실용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