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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시위에 할머니 임종 놓쳤다?…서울교통公의 여론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장애인 단체의 출근길 지하철역 시위와 관련해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라는 제목의 PPT 문건을 게시해 파문이 일고 있다. 해당 문건에는 장애인 단체를 공사가 싸워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지속해서 약점을 찾아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상대방 실점 소재로 물밑 홍보 펼쳐야”

전국장애인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난해 12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승강장에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연내 개정을 촉구하는 선전전을 마친 뒤 전철에 타고 있다. [뉴시스]

전국장애인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난해 12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승강장에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연내 개정을 촉구하는 선전전을 마친 뒤 전철에 타고 있다. [뉴시스]

17일 서울교통공사 언론팀 직원이 내부 자유게시판에 올린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지하철 시위를 사례로’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공사가 전장연과의 여론전에서 기본적으로 불리하다”며 “상대방이 실점 또는 무리수를 둘 때까지 기다리면서 디테일하게 (약점을) 찾고, 필요할 때 상대방의 실점을 소재로 물밑 홍보를 펼쳐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문건에는 “(공사가) ‘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는 언더도그마 때문에 (해당 이슈와 관련해) 이성보다 감성이 더 중시되며 원칙과 절차가 유명무실해진다”며 “약자는 선하다는 기조의 기성 언론과 장애인 전용 언론 조합과도 싸워야 한다”고 돼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고사성어도 인용됐다.

“문 가로막기, 할머니 임종 사례 활용”

서울교통공사가 지난 2월말 낸 보도자료. 문건에서 여론전에 활용해야 한다고 든 사례가 인용돼 배포됐다. [서울교통공사]

서울교통공사가 지난 2월말 낸 보도자료. 문건에서 여론전에 활용해야 한다고 든 사례가 인용돼 배포됐다. [서울교통공사]

해당 직원은 구체적인 대응 사례도 제시했다. 문건엔 “전장연도 사람이 있는 조직이다. 선 넘는 실수는 충분히 한다”며 “이번 시위에서 공사가 캐치(Catch)한 전장연 측의 미스는 바퀴를 열차-승강장 틈 사이로 끼워 넣기, 휠체어로 문 가로막기 등이다. 이는 고의적 열차 운행 방해를 증빙하는 것이 된다”라고도 썼다.

지난달 9일 한 시민이 “할머니 임종을 봐야 하는데, 시위 때문에 못 간다”고 하자, 전장연 관계자가 “버스 타고 가세요”라고 한 사건도 대응을 잘한 사례로 소개됐다. 문건엔 “여론전 위한 보도자료 준비 중 고객안전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사실 확인 후 시민피해 상황을 알리는 소재로 (이 사건을) 활용(했다)”이라며 “2월 23일 보도 후 여론이 급격히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례는 지난달 22일 배포된 공사 보도자료에도 들어갔다.

공사, “개인 의견” VS 전장연, “사장 사퇴하라”

전장연 측은 문건이 공개된 다음날인 18일 오전 서울교통공사 앞에서 규탄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사진은 안내 포스터. [전장연 홈페이지]

전장연 측은 문건이 공개된 다음날인 18일 오전 서울교통공사 앞에서 규탄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사진은 안내 포스터. [전장연 홈페이지]

서울교통공사 측은 “공사 직원이 작성해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이라며 “직원 교육 등 공사가 공식적으로 작성·활용한 문건은 아니다”고 밝혔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전장연 시위가 장기간 지속하면서 직원들 사기가 많이 저하됐고 그 과정에서 개인 의견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장연 측은 “서울교통공사 언론공작 문서에 경악한다”며 18일 오전 10시 서울교통공사 정문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18일 오전 8시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선전전도 예고했다. 이들은 ▶교통공사 사장의 공개사과와 사퇴 ▶공사 측의 전장연에 대한 손해배상소송 철회 ▶오이도역(2001년), 발산역(2002년) 등 리프트 추락참사공간 추모비 설치 ▶서울시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약속 2차례 미이행 공개사과 ▶장애인 이동권 완전 보장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이동권 20년째 부족”, “시민 피해도” 분분

지난해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4월 19일 1급지체장애인 여동수(52세)씨가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승강기에 오르고 있다. 여동수씨는 이동권과 관련해 ″지하철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버스를 비롯한 대중교통은 이용이 많이 불편하다″며 또한 ″식당 등 도심에 아직 계단이 많아 불편하다″고 밝혔다. [뉴스1]

지난해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4월 19일 1급지체장애인 여동수(52세)씨가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승강기에 오르고 있다. 여동수씨는 이동권과 관련해 ″지하철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버스를 비롯한 대중교통은 이용이 많이 불편하다″며 또한 ″식당 등 도심에 아직 계단이 많아 불편하다″고 밝혔다. [뉴스1]

장애인 단체가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고 나선 지는 2001년 1월 이후 21년이 지났다. 당시 4호선 오이도역에서 70대 장애인 노부부가 설을 쇠기 위해 상경했다가 휠체어 리프트에서 추락해 1명이 사망하면서 지하철 전 역사에 승강기 설치, 저상버스 도입 등 요구가 공론화됐다. 서울 시내 전철역 승강기 설치율은 지난해 4월 현재 92.2%까지 높아졌지만, 여전히 18곳의 역사엔 승강기가 없다. 전국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 도입률은 2020년 현재 27.8%에 머물러 있다.

전장연이 지난해 말부터 출근 시간 전철역에서 시위를 이어간 데 대해서는 “일반시민들의 이동권을 침해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전장연의 지하철시위 조치 부탁드립니다’,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기습시위 엄하게 형사처벌부탁 드립니다’ 등 글이 올라온 상태다.

한 청원인은 ‘사회적 피해를 유발하는 4호선 장애인 시위에 대한 처벌 촉구’라는 청원을 통해 “장애인분들이 불편사항 개선에 대해 요구를 계속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현재 시위 중인 특정 장애인 단체는 무고한 시민들의 시간과 금전에 피해를 끼치면서 행해지고 있다. 집회∙시위 등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진행하여야 한다고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사회적 피해를 유발하는 4호선 장애인 시위에 대한 처벌 촉구' 청원 중 일부. [청와대국민청원 게시판]

지난 2월 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사회적 피해를 유발하는 4호선 장애인 시위에 대한 처벌 촉구' 청원 중 일부. [청와대국민청원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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