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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은 안돼" 빨간 컨버스 신은 37살 '달려라 하니' 英런웨이 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국 패션 브랜드 JW앤더슨 SNS에 올라온 2022 FW시즌 '하니' 캐릭터 의상과 이미지. JW앤더슨 인스타그램

영국 패션 브랜드 JW앤더슨 SNS에 올라온 2022 FW시즌 '하니' 캐릭터 의상과 이미지. JW앤더슨 인스타그램

"혹시나 금발로 바꿀까봐 머리카락 색은 검정색과 짙은 갈색, 두 가지만 할 수 있게 했어요."

이진주 작가 "머리색은 검정과 짙은 갈색으로 제한"

영국 디자이너 브랜드에 한국 캐릭터 '하니'가 등장한다. 1985년 만화 잡지 '보물섬'에 연재되며 세상에 나온 '달려라 하니'의 주인공 캐릭터가 영국 패션 브랜드 'JW앤더슨'의 2022 FW 시즌에 쓰일 예정이다. JW앤더슨 측은 최근 공식 인스타그램에 '하니'의 얼굴이 프린트된 가방과 의류 사진 등을 게재하며 콜라보레이션 사실을 밝혔다.

최근 '달려라 하니' 테마공원인 서울 성내동 하니공원에서 만난 이진주(70) 작가는 "지난해 11월 JW앤더슨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JW앤더슨이 보내온 애니메이션 '하니' 이미지는 컷마다 머리 모양과 하트 위치가 다 다르고 눈도 흐릿해 총기가 없었다. 디지털로 또렷한 하니를 새로 그려 보내줬다"고 말했다. '달려라 하니' 애니메이션은 KBS가 1987년 제작해 1988년에 방영됐다.

영국 패션브랜드 JW앤더슨 SNS에 올라온 2022 FW시즌 '하니' 캐릭터 의상과 이미지. JW앤더슨 인스타그램

영국 패션브랜드 JW앤더슨 SNS에 올라온 2022 FW시즌 '하니' 캐릭터 의상과 이미지. JW앤더슨 인스타그램

88년의 하니를 2022년 의상에 쓰기 위해서는 디지털 작업을 새로 해야했다. 달려라 하니 애니메이션에 쓰였던 이미지 그대로 의상에 사용하기엔 화질이 떨어지고 머리핀, 머리카락 등 디테일도 떨어져, 이진주 작가는 그림 4컷을 디지털 작업으로 또렷하게 그려 보냈다. 이 작가는 "옛날 이미지는 눈도 흐리고 총기가 없다"고 말했다. KBS 유튜브 캡쳐

88년의 하니를 2022년 의상에 쓰기 위해서는 디지털 작업을 새로 해야했다. 달려라 하니 애니메이션에 쓰였던 이미지 그대로 의상에 사용하기엔 화질이 떨어지고 머리핀, 머리카락 등 디테일도 떨어져, 이진주 작가는 그림 4컷을 디지털 작업으로 또렷하게 그려 보냈다. 이 작가는 "옛날 이미지는 눈도 흐리고 총기가 없다"고 말했다. KBS 유튜브 캡쳐

이 작가는 JW앤더슨 측에 4개 이미지의 캐릭터 사용권(라이센스)을 내줬다. 계약서에는 의류·가방·신발·액세서리 등 사용 분야도 명기했다. 이 작가는 "처음 JW앤더슨로부터 연락받았을 땐 워낙 '하니' 캐릭터를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에게 사기도 많이 당해서 시큰둥했다"며 "그런데 꾸준히 연락이 오면서 하니 캡쳐본을 모델 옷에 올린 시안을 여럿 받아봤는데 꽤 파격적이고 좋아 보였다"고 말했다.

'하니' 관련한 저작권이 이 작가에게 고스란히 있었던 덕에 하니의 영국 진출이 수월했다. JW앤더슨 측과 이 작가를 연결한 파이특허법률사무소 이대호 변리사는 "지난해 JW앤더슨 측에서 애니메이션 스틸컷 6개 정도를 보내오면서 '이미지를 쓰고 싶은데, 작가를 좀 찾아달라'고 했다"며 "저작권 관련 이해 관계자가 여럿이었다면 시간적으로도, 이해관계 조정 측면에서도 진행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80년대 저작권 챙긴 비결? '내 것' 집착 강했고, 운이 좋았을 뿐"

유튜브 '옛날티비:KBS Archive'에는 '달려라 하니'와 '천방지축 하니'가 고스란히 올라가있다. '달려라 하니'의 방영권을 가진 KBS는 10년간 재방송을 했지만 이 작가가 "10년이나 재방을 하니 반응이 안좋다"며 중단을 요청해 재방송을 멈췄다. 이 작가는 "유튜브에 올린 건 아카이브도 되고 홍보도 되는 것 같아서 그대로 뒀다"고 했다. 유튜브 캡쳐

유튜브 '옛날티비:KBS Archive'에는 '달려라 하니'와 '천방지축 하니'가 고스란히 올라가있다. '달려라 하니'의 방영권을 가진 KBS는 10년간 재방송을 했지만 이 작가가 "10년이나 재방을 하니 반응이 안좋다"며 중단을 요청해 재방송을 멈췄다. 이 작가는 "유튜브에 올린 건 아카이브도 되고 홍보도 되는 것 같아서 그대로 뒀다"고 했다. 유튜브 캡쳐

한국이 1987년 국제저작권협회에 가입하기도 전부터 이 작가는 저작권을 꼼꼼히 챙겨뒀다. "내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였다. '달려라 하니'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대원동아의 정욱 회장이 "저작권은 작가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했던 것도 운이 좋았다.

KBS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달려라 하니' 관련 저작권은 모두 이 작가에게 뒀고, KBS는 방영권만 가졌다. 수익은 이 작가와 대원동아·KBS가 각각 3분의 1씩 나눠 가졌다.

이 작가는 "'하니' 사용 계약을 맺을 때 변호사 없이 혼자 모든 문구를 꼼꼼하게 따져 본다. 몇십년 하다 보니 혼자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촬영한 광고를 '인터넷 매체에만 사용한다'거나, 재계약 시 '1년에 일정 이상 수익이 나지 않으면 자동 해지' 조건까지 세세하게 단다. 그는 "요즘 작가들은 그런걸 모르고 그냥 도장을 찍는 경우가 많더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번 계약서에도 이 작가가 제공한 이미지에서 컬러 등 작은 수정사항도 이 작가의 허락을 받도록 명기했다. 머리카락 색을  검정색·짙은 갈색 두 가지로 한정한 이유에 대해 이 작가는 "하니가 한국 캐릭터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시대를 앞서간 패션' 하니, "빨간 하이 컨버스는 본 적도 없었다"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위치한 하니공원에 선 이진주 작가. 김정연 기자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위치한 하니공원에 선 이진주 작가. 김정연 기자

이 작가는 처음에 SF 만화를 그렸지만 전두환 정권 하에서 '폭력물 금지' 방침과 당시 '캔디' 열풍을 타고 아내인 이보배 작가(2011년 작고)와 함께 순정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엔 순정물을 안하려고 했는데, 하고 보니 이게 적성이더라"고 말했다.

SNS 등에서 '시대를 앞서간 패션'이라며 하니의 캡쳐본이 돌며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이 작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빨간 하이 컨버스를 그냥 '예뻐 보여서' 신겼다"고 했다. 해외 청소년 잡지와 일본 하이틴 패션잡지 등에서 본 밀리터리 점퍼, 딱 붙는 바지, 삐죽한 머리 등으로 반항아적 스타일을 만들었다.

'하니'를 활용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이 작가는 "하니가 좋은 이미지로 남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하니가 골절된 모습을 보고싶지 않아서 정형외과 광고 등도 다 거절했다고 했다. 지금은 하니를 이용해 유튜브로 간단한 플레이툰(그림을 연결시켜 동영상으로 만든 것)을 연재하고, 카카오톡·라인 등에 제안할 이모티콘을 준비 중이다. 다만 이 작가는 "평생 마감 스트레스를 받아서, 마감이 급하게 돌아오고 작업량이 많은 웹툰화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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