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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페트병으로 CO2 흡수…고대 연구팀의 '일석이조' 기술

중앙일보

입력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분리 수거한 페트병. 강찬수 기자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분리 수거한 페트병. 강찬수 기자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대표적인 환경문제인 기후 위기와 플라스틱 오염,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마련됐다.
바로 버려진 페트(PET)병으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CO2)를 흡착·활용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 기술이다.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옥용식 교수와 UNIST, 중국 홍콩시티대학 등 국제연구팀은 최근 '녹색 화학(Green Chemistry)' 국제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폐(廢)페트병을 가공해 CO2를 포집·활용하는 기술을 소개했다.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만드는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CO2 포집·저장(CCS) 기술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CO2 포집 비용이 장애물로 지적되고 있다. 포집 공정은 CCS 전체 비용의 50~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옥 교수팀이 개발한 기술은 이런 CO2 포집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활용이 안 돼 골칫거리인 플라스틱 오염 문제까지 덜어줄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페트병 처리해 다공성 탄소 합성

폐페트병을 처리해 다공성 탄소를 만들고 CO2를 흡착하는 과정을 그린 개념도. [Green Chemistry, 2022]

폐페트병을 처리해 다공성 탄소를 만들고 CO2를 흡착하는 과정을 그린 개념도. [Green Chemistry, 2022]

연구팀은 우선 폐페트병을 세척·건조하고 약 5㎜ X 5㎜ 크기로 절단한 다음, 600℃에서 1시간 전(前)처리했다.

페트(PET), 즉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성분을 물리·화학적 활성화 과정을 거쳐 이른바 '폐 PET 플라스틱 유래 다공성 탄소(WPDPC)'를 만들었다.
처리 조건을 달리해 3종의 다공성 탄소, 즉 PET6-CO2-9, PET6-K7, PET6-KU7을 합성했다.
이들 다공성 탄소에는 지름이 0.8nm(나노미터, 1nm=100만분의 1㎜) 이하인 미세한 공기 구멍이 있고, 이 기공(氣孔)이 CO2를 붙잡는 역할을 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CO2가 기공에 잘 포집되도록 하기 위해 연구팀은 표면에 질소 성분을 첨가하기도 했다.

다공성 탄소는 굴뚝 배기가스처럼 CO2가 다량 들어있는 기체에서 CO2를 골라 흡착한다.
CO2를 가득 머금은 이 다공성 탄소에 질소(N2) 가스를 가하거나 100~150℃로 가열하면 CO2가 떨어져 나온다. 이 떨어져 나온 CO2를 모으면 다른 화학 공정의 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다공질 탄소는 다시 CO2 흡착에 사용할 수 있다.

연구팀이 다공성 탄소를 이용해 CO2 흡착-탈착 실험을 진행한 결과, PET6-CO2-9의 경우 1g당 CO2 2.68밀리몰(mmol)을, PET6-K7은 3.03 밀리몰, PET6-KU7는 3.28 밀리몰을 안정적으로 흡착했다.
현재 CO2 흡착에 많이 사용하는 모노에탄올아민의 흡착 능력(1g당 1.5밀리몰)과 비교했을 때 효과가 더 좋았다.

산업화하면 경제성도 충분해

폐페트병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발생하는 CO2를 포집하고, 남는 전력과 다공성 탄소를 판매해서 이익을 얻는 시설의 흐름도. 이 시설을 가동하면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익도 남길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를 통해 유엔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 17가지 가운데 11~15번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Green Chemistry, 2022]

폐페트병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발생하는 CO2를 포집하고, 남는 전력과 다공성 탄소를 판매해서 이익을 얻는 시설의 흐름도. 이 시설을 가동하면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익도 남길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를 통해 유엔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 17가지 가운데 11~15번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Green Chemistry, 2022]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규모를 키워 CO2 포집을 산업화했을 때 환경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경제성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생애주기 평가(life-cycle assessments, LCA)와 기술경제 평가(techno-economic assessments)를 진행했다.

CO2 포집만을 따졌을 때는 PET6-KU7이 가장 유망한 후보였지만, 전체 공정을 고려했을 때는 세 가지 중에서 PET6-CO2-9가 플라스틱 문제 해결과 탄소 중립 달성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또, 자본 투자와 운영 수익 등을 따졌을 때 다공성 탄소 생산과 활용 시스템을 산업적으로 확대해도 경제성이 충분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특히, 시간당 1톤의 다공성 탄소를 생산하는 시설(투자비 약 60억 원)을 15년 동안 가동한다고 했을 때 순(純) 현재가치(NPV)가 최소 260억 원에서 최대 645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됐다. 투자비는 2년 이내에 회수 가능한 것으로 전망됐다.

이 시설은 폐페트병을 태워서 생산한 전력으로 다공성 탄소를 생산하고, 페트병을 태울 때 배출되는 CO2는 다공성 탄소로 포집하면서 페트병과 온실가스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다. 여분의 다공성 탄소와 전력은 외부에 판매해 이익을 얻는다.

전남 신안군 자은면 내치 해변에 중국 글씨가 있는 어구와 페트병이 해변에 널려있다. 중앙포토

전남 신안군 자은면 내치 해변에 중국 글씨가 있는 어구와 페트병이 해변에 널려있다. 중앙포토

옥 교수는 "폐페트병을 활용한 CO2 포집 기술은 기후변화와 플라스틱 오염을 동시에 완화할 수 있기 때문에 유엔이 제시한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s)를 충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란 관점에서 잠재력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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