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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V토크] 펜싱선수 될뻔 했던 늦깎이 양희준, 신인왕 후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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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해보험 센터 양희준. [사진 한국배구연맹]

KB손해보험 센터 양희준. [사진 한국배구연맹]

남들보다 늦었지만 프로에선 빠르게 자리잡았다. KB손해보험 센터 양희준(23)이 프로배구 신인왕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남자배구 신인왕 구도는 2파전이다. OK금융그룹 레프트 박승수(21)와 KB 양희준의 대결구도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는 지난해 가을까지 한솥밥을 먹은 사이다. 한양대 3학년 양희준과 2학년 박승수는 나란히 졸업하기 전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박승수는 서브 리시브에 강점이 있고, 양희준은 높이(1m99cm)를 살린 속공이 장기다.

시즌 초반엔 박승수가 앞섰다. 수비 능력 덕분에 일찌감치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양희준의 존재감이 빛나고 있다. 총득점에서도 양희준(69점)이 박승수(60점)를 추월했다. 소속팀 KB도 정규시즌 1,2위를 다투고 있어 유리하다.

높은 타점에 순발력도 좋은 편이라 속공에 능하다. 속공 성공률은 61.40%. 기록 기준에 미달해 순위 안에 들지 못했지만 4위에 해당한다. 세터 황택의와 호흡이 좋아지면서 성공률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 양희준은 "택의 형이 적극적으로 토스에 대해 말하라고 해줘서 고맙다. 성공률을 더 높게 끌어올리고 싶다"고 했다.

KB손해보험 센터 양희준. [사진 한국배구연맹]

KB손해보험 센터 양희준. [사진 한국배구연맹]

서브도 좋은 편인 양희준은 "범실이 조금 많은데 상대가 예측하기 힘든 곳에 넣는 게 내 장점인 것 같다. '운이 좋다'고 보시기도 하지만 운이 아니라 내가 노리는 곳으로 때릴 수 있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양희준은 올 시즌 절반이 지날 때까지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3라운드까지는 '상비군'에서 연습만 했다. KB손보는 김진만 코치가 젊은 선수들을 집중 지도하는 '상비군'을 만들었다. 4라운드부터 차츰 출전횟수가 늘더니 이제는 선발 출전도 잦아졌다. 양희준은 "계속 기회를 받는 게 너무 감사하다. 부담감도 있지만, 믿음에 부응하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양희준은 구력(球歷)이 짧다. 중3 때 뒤늦게 배구를 시작했다. 양희준은 "부모님도 키가 크신 편이라 중2때 키가 178㎝였다. 그런데 1년 사이 10㎝가 자랐다. 체육 선생님께서 배구부가 있는 학교 감독님과 친분이 있어 제안을 했다"고 떠올렸다.

사실 양희준은 펜싱 선수가 될 뻔했다. 그가 다녔던 대전 매봉중엔 펜싱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펜싱도 순발력 못지 않게 체격조건이 중요하다.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오상욱(1m92㎝)이 매봉중 출신이다. 큰 키 덕분에 농구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배구였다. 아버지 양형모(49)씨의 영향이었다.

KB손해보험 센터 양희준. [사진 한국배구연맹]

KB손해보험 센터 양희준. [사진 한국배구연맹]

양희준은 "농구는 몸싸움도 심하고, 부모님께서 운동을 시키실 생각도 없어 펜싱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배구를 좋아하셨다. 아버지와 대전 충무체육관에 프로배구를 보러간 적도 있었다. 나도 흥미가 생겨 '일단 한 달만 해보겠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일하신다. 공부를 아주 잘하진 않았지만 아버지가 멋있어보여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배구를 하길 잘 한 것 같다"고 웃었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만큼 따라잡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했다. 배구를 위해 전학도 했지만, 문제가 생겨 청주 각리중으로 다시 학교를 옮겼다. 이 과정에서 1년 유급을 선택했다. 양희준은 "이대로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뒤처질 것 같아서 유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키는 어느덧 2m 가까이 자랐고, 마른 편이었던 체격도 점점 좋아졌다. 부모님의 뒷바라지 속에 배구에 집중한 덕분에 명문 한양대에도 입학했다. 양진웅 감독은 양희준의 가능성을 보고 1학년 때부터 양희준에게 기회를 줬다. 지난해 드래프트에 나선 양희준은 2라운드 2순위(전체 9위)로 KB 유니폼을 입었다. 양희준은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더니 좋아하셨다"고 뿌듯해했다.

입단 전까지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신인왕이 가까이 왔다. 양희준은 "사실 팀내 출전 경쟁도 치열해서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번 시즌은 경험을 쌓는 게 목표였다"면서도 "욕심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남은 네 경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현재 2위인 KB손해보험(18승 14패·승점58)은 2년 연속 봄 배구를 예약했다. 1위 대한항공(승점 63)과 격차가 크지 않아 정규시즌 1위는 물론 창단 첫 우승도 노릴 수 있다. 양희준에게 '신인왕과 우승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이라는 우문을 하자 현답을 내놓았다. "우승이다. 대학 1학년 때(전국체전) 이후 우승을 못 해봤다. 내가 와서 팀이 우승까지 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했다. KB 관계자들이 왜 침이 마르게 양희준을 칭찬하는 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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