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여가부 운명, 첫 여성 행정학회장 박순애 손에 달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최초의 여성 한국행정학회장이 여성가족부의 운명에 관여하게 됐다.”

국민의힘 관계자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인수위원인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를 두고 16일 한 말이다. 박 교수가 정부 조직개편 관련 업무에 참여한다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에 “비경제 분야 정부 조직개편 논의는 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인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이 키를 잡고 전문가인 박 교수 등이 함께 참여한다”며 “여가부 폐지 논의 과정에서 각계 및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도 취합하겠지만, 결국 인수위 조직개편안 마련에 두 사람이 주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가부 폐지는 대선 기간인 1월 7일 윤 당선인(당시 대선후보)이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한줄짜리 공약 글을 올리면서 뜨거운 정치 쟁점으로 부각됐다. 윤 당선인은 당선 이후인 13일에도 “(여가부가)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 했다”며 공약 이행 의지를 거듭 드러냈고, 정치권의 갑론을박으로 번졌다. 이처럼 극도로 예민한 사안인 여가부 폐지 작업에 이 의원과 박 교수가 손을 대는 것이다. 윤 당선인의 특별보좌역인 박수영 의원은 17일 페이스북에 “지금 정부, 18부 4처 18청 너무 많다”는 글을 올렸는데, 이를 두고 “인수위가 여가부 폐지 등 ‘슬림화’에 방점을 둔 조직개편안 마련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인수위원으로 선임된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중앙포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인수위원으로 선임된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중앙포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을 맡은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가운데)이 지난해 12월 13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임현동 기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을 맡은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가운데)이 지난해 12월 13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임현동 기자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측근인 이 의원은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성사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인수위에서는 선임분과 격인 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을 맡아 비경제 파트의 정부조직개편 등을 조율한다.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 박사 학위를 받은 박 교수는 유독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이 많은 공공·행정조직 성과 관리분야 전문가다. 2017년 여성 최초로 기획재정부 공기업·준정부기관경영평가단장으로 일했고, 2020년에는 65년 역사의 한국행정학회에서 첫 여성 학회장으로 선출돼 1년간 일했다. 올 1월 13일에는 한국행정학회·한국정책학회와 중앙일보가 공동주최한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해 윤 후보에게 공직자의 정치 중립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 의원과 박 교수는 개인적 인연도 있다. 이 의원이 과거 서울대 행정대학원 특별과정인 국가정책과정을 수료할 때 박 교수가 주임 교수였다고 한다. 박 교수는 16일 중앙일보에 “부족한 사람이 과분한 자리를 맡았지만, 인수위 기간 소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인 지난 1월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여성가족부 폐지’ 한 줄 공약. [윤 당선인 페이스북 캡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인 지난 1월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여성가족부 폐지’ 한 줄 공약. [윤 당선인 페이스북 캡처]

향후 ‘윤석열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테이블에 오를 때 여가부 폐지는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대선 직후 국민의힘 측은 “여가부 폐지는 국민 여론과 시대정신을 따른 것”(11일 권성동 의원)이라고 공약 추진 의지를 밝혔지만, 민주당에서는 “여성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돼 있지 않고 마초적 냄새가 풍기는 대목”(14일 서영교 의원)이라는 반발이 나왔다. 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구도에서 민주당이 여가부 폐지에 쉽게 동의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도 “차별, 혐오, 배제로 젠더의 차이를 가를 일이 아니다. 여가부 폐지 공약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서병수 의원)는 반대 의견이 나왔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도 15일 “남성의 편을 들려고 여가부를 없애버려야겠다는 것은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안철수 인수위원장,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 원희룡 기획위원장 등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안철수 인수위원장,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 원희룡 기획위원장 등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여가부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008년 이명박 당선인 시절 인수위는 여가부를 통폐합하는 등 18부 4처의 행정조직을 13부 2처로 축소하는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회 문턱을 넘는 과정에서 민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여가부가 ‘여성부’로 이름을 바꿔 살아남았다. 2010년 1월 아동·청소년 및 가족 관련 업무를 이관받은 여성부가 명칭을 다시 여가부로 바꾸면서 이명박 정부의 여가부 폐지 공약은 무산됐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 당선인의 공약 이행 의지가 확고한 만큼 여가부 폐지도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하지만,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어 조심스럽다”며 “저출산·청소년·가정폭력·양성평등 등의 업무를 다른 부처에 이관하거나 신규 위원회 등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여성 표심을 자극하지 않도록 인수위가 섬세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