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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세종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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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정책은 대부분 역주행 논란에 휩싸였다. 소득주도 성장, 탈원전 정책 등이 그렇다. 그중에서도 가장 빨리 가시화한 정책은 4대강 보(洑) 해체다. 다른 것은 절차가 필요하고, 실행해도 피부로 느끼는 데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반면 보 해체는 몇 시간이면 실감할 수 있다. 급한 대로 보를 열어 강물을 빼면 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하고 한 달 뒤 4대강 보를 열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에는 금강 세종보 등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보 해체 정책은 일찌감치 체감했기에 후유증도 오래갔다. 농사지을 물이 부족해지는 등 전국에서 아우성이었다. 특히 세종보는 전국 16개 보 가운데 유일하게 도심에 있어 시민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세종보를 개방하기 전만 해도 금강에는 물이 찰랑찰랑했다. 물이 풍부한 금강은 시민 휴식 공간이었다. 마리나 선착장 등에서 수상 레저까지 즐겼다. 하지만 보 개방 이후 강은 황폐화했다. 지난 12일 찾은 세종보 주변은 물이 없어 강인지 들판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나무와 잡초가 무성하고, 야생동물 배설물만 곳곳에 쌓여있었다. 바람이 불자 강바닥에선 먼지가 솟구쳤다. 보 한쪽에 있는 수력발전시설도 녹이 슬어 다시 가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 시설에서는 연간 1만1000여 명이 쓸 수 있는 전기를 생산했다.

세종보 주변 금강에 물이 없어 황량하다. 강 바닥에는 잡초와 나무만 무성하다. 프리랜서 김성태

세종보 주변 금강에 물이 없어 황량하다. 강 바닥에는 잡초와 나무만 무성하다. 프리랜서 김성태

세종보 방치에 따른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도시 곳곳이 물 부족 사태를 맞고 있다. 국립세종수목원과 중앙공원에는 하루 수천 톤의 물을 공급해야 한다. 강이 마르자 세종시는 100억원을 들여 또 다른 물 공급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는 4대강 보 해체 또는 개방에 대비해 1조원 정도 투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다가 세종시 금강에는 오는 24일 관광용 다리(걷기 전용)가 일반에 개방된다. 다리 건설비만 1000억원이다. 시민은 보행교에 올라 물이 찰랑찰랑한 금강을 감상하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려면 세종보에 물을 담아야 한다.

이런 가운데 반전이 일어났다. 보 해체를 반대하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윤석열 당선인은 “4대강 보를 잘 지켜 국민이 물을 잘 쓸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두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가 벼랑 끝에 멈춰 선 것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일부 환경단체는 반대하지만, 세종 시민은 이 공약이 하루빨리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많은 국민은 정부에 ‘비정상의 정상화’를 요구한다. 4대강 보 해체도 이에 해당한다. 물을 활용하는 것은 문명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다. 특히 물 확보 등 강 관리는 도시 발전에 필수 요소다. 보 가동에 따라 수질 오염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대로 해결 방안을 찾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