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간송에 기부한 국보 사려, 56명이 이더리움 32억 모았다"

중앙일보

입력 2022.03.16 19:31

업데이트 2022.03.17 14:52

지난 1월 국보로 사상 첫 경매 매물로 나왔던 '금동삼존불감'(이하 삼존불감·국보 73호)이 간송미술관의 품에 머무르게 됐다. 금동삼존불감을 사들인 블록체인 커뮤니티 '헤리티지 다오(DAO)'가 소유권의 51%를 간송미술문화재단에 기부하기로 하면서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문화재를 산 뒤 소유권을 다시 재단에 기부한 낯선 구매자에 문화계가 들썩이고 있다.

헤리티지 DAO에 참여한 56인 중 한명이자 이번 경매와 계약을 주도한 김경남(Leon Kim) 참여자를 16일 단독 인터뷰했다. 재미교포인 그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DAO 플랫폼인 크레용(Crayon)의 대표다.

56명 1주일 만에 900 이더리움 모아 

헤리티지 DAO 로고

헤리티지 DAO 로고

'탈(脫)중앙화 자율 조직'의 앞글자를 딴 DAO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공동투자조합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조직처럼 대표나 관리자 혹은 부서가 존재하지 않고, 개인들이 자유롭게 모여 자율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구성원 투표를 통한 민주적 방식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최근에는 우주탐사나 미공개 영화 대본 인수를 추진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국보인 삼존불감을 사들인 헤리티지 DAO에는 총 56명이 '기여자(Holder)'로 참여했다. 간송미술관이 내놓은 국보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이하 계미명불상)과 삼존불감이 지난 1월27일 케이옥션에 나온다는 소식에, 김 대표가 국보 구매를 위한 헤리티지 DAO 모집글을 하루 전날(26일) 쥬스박스(Juicebox)에 올리면서 모금이 시작됐다. 쥬스박스는 컨스티튜선 DAO와 어산지 DAO 등 세계 유명 DAO의 모금이 이뤄진 곳이다.

쥬스박스(Juicebox)에서 모금을 진행한 헤리티지DAO

쥬스박스(Juicebox)에서 모금을 진행한 헤리티지DAO

그는 “(글을 올린 지) 하루 만에 600이더리움이, 일주일 만에 900이더리움이 모였다”며 “지난 1월 31일 케이옥션과 구두 계약했다”고 말했다. 이더리움 시세가 들쑥날쑥 하지만 당시 가격으로 따지면 약 32억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경매에서 DAO가 국보를 낙찰받은 전 세계 최초의 사례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케이옥션에 전시된 국보 '금동삼존불감' [연합뉴스]

케이옥션에 전시된 국보 '금동삼존불감' [연합뉴스]

이처럼 짧은 시간에 이 정도의 돈이 모일 수 있었을까. 그는 "참여자 56명은 국보가 팔린다는 사실과 삼존불감이 경매를 통해 개인의 손에 들어가면 대중이 향유할 수 없게 된다는 안타까움을 공유했다”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는 공감만 얻는다면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컨스티튜션DAO가 소더비 옥션에 나온 미국 헌법 초판 인쇄본을 구매하기 위해 4000만달러(478억2000만원) 가량의 이더리움 모금에 성공했지만 헤지펀드 관계자가 4320만 달러에 낙찰받으며 실패했다.

국보인 삼존불감을 사들인 뒤 다시 간송미술관에 기부했지만 문화계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싱가포르 법인이 구매자로 등장하면서 해외에 국보가 팔린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김 대표는 “기여자 중에는 외국인도, 한국인도 있다”며 “법률상 문화재를 취득하려면 법인이 필요해 내가 대표로 있는 ‘볼트랩스’라는 싱가포르 법인 이름으로 계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DAO 취지 살려, 51% 간송재단에 기부  

헤리티지 DAO가 산 삼존불감은 간송미술관에 남아 전시될 예정이다. 헤리티지 DAO가 문화재 지분의 51%를 기부하고 관리 감독을 간송미술관에게 맡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헤리티지 DAO가 삼존불감이 본래 있던 곳에 영구히 보존되면서 전시 등에 활발히 활용될 수 있도록 재단에 기탁했다”고 밝혔다.

거액을 들여 사들인 문화재의 지분 과반 이상을 기부하는 게 쉽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는 "DAO의 특성을 이해하면 당연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걸 투표로 결정하는 만큼 삼존불감을 다시 되파는 선택도 투표로 가능하지만, 구매 전부터 과반이 넘는 지분을 간송미술관에 기부해 국보를 다시 되팔 수 없는 구조로 하자고 구매 전부터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헤리티지 DAO가 공개한 사이트(https://snapshot.org/#/heritagedao.eth)에서 케이옥션 계약부터 기부까지 모든 과정이 투표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이트에 공개된 바에 따르면 삼존불상의 계약서상 금액은 25억원이다.

간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이제의 권국현 대표변호사는 “헤리티지 DAO는 삼존불감을 간송의 후손 개인이 아닌 간송미술문화재단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이렇게 되면 개인이 국보를 되팔 수 없고, 문화재청의 관리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부가 마무리되면 삼존불감의 소유자도 간송미술문화재단 외 1인으로 바뀌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기부는 아직 서명까지 이뤄지지는 않았다. 간송 측은 “마지막 의견 조율 단계에 있어 다음 주 초 기부 관련 서류 작업이 완료될 것”이라고 전했다.

온라인에서 투표로 이뤄지는 헤리티지 DAO의 의사결정 과정

온라인에서 투표로 이뤄지는 헤리티지 DAO의 의사결정 과정

헤리티지 DAO는 삼존불감을 당장 상업적으로 활용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대체불가토큰(NFT) 사업권 대가로 간송 측에 소유권 일부를 넘겼다는 문화계 등의 의혹에 대해서도 "당장 삼존불감 NFT를 발행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기여자들이 당장의 금전적 이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다”며 “다만 NFT 세계관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 기대한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게임 샌드박스에 삼존불감을 전시하거나 다른 메타버스 세계에 삼존불감을 3D로 재현해 올려 감상하는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간송미술관에 삼존불감이 다시 전시되는 것도 의미 있지만, 다양한 NFT 세상을 통해 삼존불감을 해외에 알려 한국의 국보가 재평가받기를 바란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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