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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츠랩] “자책 말고, 투자 자존감을 높이세요”[박종석 정신과 전문의]

중앙일보

입력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지난해 화제의 도서 중 하나죠. 『살려주식시오』의 저자 박종석 정신과 전문의(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입니다. 주식 중독에 빠진 정신과 의사(본인)의 좌절과 치유를 담았는데요. 책을 출판한 게 지난해 5월. 출판 시점이 올해 초였다면 아마도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을까.

약 석 달에 걸친 강력한 조정장! 상당수의 투자자가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데요. 게다가 진행형. 스트레스, 우울증,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분이 꽤 많습니다.

박종석 정신과전문의가 8일 서울 구로구 연세봄정신과의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박종석 정신과전문의가 8일 서울 구로구 연세봄정신과의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직장에서 화풀이하거나 가족에게 짜증 내지 마세요. 당신을 더 초라하고 우울하게 만들 뿐입니다. 급하게 복구하시려다 ‘나락’ 갑니다. 욕망을 다스리면서 게임을 하시거나, 차라리 웹툰을 보세요”

박 원장이 최근 페이스북에 남긴 이 글을 보고, 직접 만나고 왔습니다.

책이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요. 개인적으로 삶이 좀 바뀌셨나요? 상당히 직관적인 책 제목인데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도 궁금합니다.
일단 방송 출연이 늘었고요(웃음). 멀리서 찾아오는 환자도 많아졌죠. 정신건강과 관련한 책은 주로 환자나 질환 자체를 다루는 게 많잖아요. 그런데 주변에 널리 있을 법한 주식 중독이란 주제를 다뤘고, 제 경험도 솔직하게 담다 보니 많은 분이 관심을 둬 주신 거 같아요. 제목은 출판사의 아이디어였는데 처음엔 반대했죠. 역시 전문가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예상보다 강한 조정에 당황하는 투자자가 많습니다. 투자 실패로 인한 충격 때문에 상담을 하러 오는 경우가 실제로 늘었나요?
네. 눈에 띄게 늘었죠. 사실 예전엔 주식 중독 상담하며 40~50대 남성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요즘은 20~70대, 남녀를 가리지 않은 것도 특징이죠. 주가가 내려가니까 온종일 주식 창만 쳐다보게 되고, 안 하던 해외 주식과 코인에도 곁눈질하죠. 일이 잘될 리가 없잖아요. 직장에서 가정에서 결국 트러블이 생기니까 결국 해선 안 될 생각마저 하고. 결국은 여길 찾아오죠. 그나마 다행이에요.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거니까.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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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식시오』엔 뼈아픈 투자 실패담이 많은데요. 가장 큰 실책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세요?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남의 말만 듣고 투자한 거죠. 사실 처음에 실패했을 때 자신을 돌아봤으면 그 정도로 처참하게 실패(박 원장은 2016년 전후 약 3억원의 손실을 봤다)하진 않았을 텐데 저의 선택은 더 위험한 투자였죠. 속칭 찌라시나 리딩방에 더 의존하게 되고, 또 손실을 보는 일이 반복됐어요.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결국 사람도 잃고, 직장도 잃었죠. 돈은 갚으면 되지만 그 시기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줬어요. 그건 정말 갚기 힘들죠.
이 분야에서 단련된 정신과 의사도 그 정도 수준에 이를 수 있군요.
고도의 훈련을 받았지만 결국 똑같은 사람이죠. 준비 없이 뛰어들면 누구나 멘탈이 무너질 수 있어요. 사실 돈도 사람에겐 일종의 안전망이잖아요. 거기 균열이 생기니까 아무리 정신 승리를 해도 ‘내 삶은 이제 어쩌나’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죠. 자책하면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되거든요. 감정 조절도 안 되고,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는 거죠.
도파민형 투자자와 세로토닌형 투자자의 차이가 중요하다고요.
성격을 형성하는 기본 요소 중엔 새로움 추구 성향과 위험 회피 성향이 있는데요. 이 두 성향의 비중과 우세에 따라 자극 추구형이 도파민형, 상대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는 쪽이 세로토닌형입니다. 주식 투자에 적합한 건 아무래도 세로토닌형인데요. 단기적으로는 도파민형이 큰 이익을 얻는 거 같지만, 장기적으론 세로토닌형의 수익이 압도적으로 크죠. 아무래도 도파민형은 남자가 많은데요. 문제는 본인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 일반적으로 잘 모른다는 점이죠. (웃음)
 우리 뇌는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음. 셔터스톡

우리 뇌는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음. 셔터스톡

투자자들이 흔히 겪는 인지적 오류를 지적한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제 얘기 같기도 하고.
대표적으로 임의 추론의 오류가 있죠. ‘최근에 많이 떨어졌으니까 이젠 오르겠지’ 하는 건데요. 아시겠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카톡을 보냈는데 1시간 동안 상대방이 답이 없어요. 이때 ‘나를 무시하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과 비슷하죠. ‘예전에도 그랬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야’ 하며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것도 흔히 보는 실수인데요. 블랙핑크가 앨범을 낸다고 YG 주식이 항상 오르진 않죠.
실제 투자를 할 땐 사는 것보다 파는 게 훨씬 힘든 일이잖아요. 한두 가지 이유가 아닐 텐데 혹시 이때도 우리 뇌를 지배하는 무언가가 있나요?
애초에 우리 뇌는 손절매를 할 수 없게 설계돼 있어요. 손해를 볼 위기에 처하면 불안해지고, 그러면 그 불안을 회피하도록 유도하죠. ‘곧 본전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괜찮을걸?’하며 유혹하는 거죠. 그러니 손절매가 힘들죠. 그런데 경험 많은 사람, 좋은 투자자는 이걸 이겨내요. 불안에서 도망치지 않는 거죠. 한 마디로 투자 자존감이 높은 사람입니다.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전쟁 같은 변수는 전문가 할아버지도 예측 못 합니다. 저커버그도, 버핏도 물렸을 겁니다. 당신 탓이 아닙니다.”란 글을 봤는데요.
자기 잘못이 아닌 걸 자책하지 말라는 겁니다. 자책하기 시작하면 정상적인 사고가 힘들어요. 수능시험 못 봤다고 인생 끝나는 거 아니잖아요.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좀 편해요. 하다 보면 맛없는 음식도 먹고, 잘못된 길로도 가지만 그런데도 여행은 즐거운 거잖아요. 실패를 만회하려면 원인을 분석해야 하는데 자책하는 동안에는 분석이 불가능해요. 자책을 안 하는 게 또 막상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거리를 두라는 겁니다. 투자 말고 딴짓을 하라는 거죠.
박종석 정신과전문의가 8일 서울 구로구 연세봄정신과의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박종석 정신과전문의가 8일 서울 구로구 연세봄정신과의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요즘은 주식 투자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비중을 좀 줄이셨나요?
최근엔 해외 주식을 더 많이 합니다. 1~2월에 특히 변화를 좀 많이 줬어요. 현금과 금 비중도 높였고요. 제가 예상한 것보다 많이 떨어졌고, 기술적 반등이 쉽지 않은 구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손절매도 꽤 했는데요. 그래도 분할 매도를 많이 하면서 손실을 줄였다고 생각해요. 당장은 아쉽지만, 기회는 또 오니까요. 길게 봐야죠.
투자 전에 꼭 확인하는 지표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이터가 있을까요?
공부는 데이터 중심으로 확실히 하려고 해요. 몇 가지 원칙도 세웠죠. ‘세 분기 연속 적자인 기업은 쳐다보지 않는다’, 60일선을 이탈하면 아무리 싫어도 팔아야 한다’ 등이죠. 요즘 보면 투자도 공감 능력이 중요한 거 같아요. 금리 인상만 해도 그렇게 노래를 불렀는데 혼자 ‘괜찮을 거야’ 생각하면 안 되는 거죠.
요즘 스타일로 투자에 적합한 MBTI도 있나요? 원장님의 MBTI도 궁금하네요.
이런 질문 많이 받는데요. 사실 MBTI를 오류 없는 완벽한 성격 검사로 보긴 어렵죠. 굳이 이 기준에 맞춰 보자면 ESTJ나 ENTJ가 주식 투자에 적합한 유형이라고 봐요. 계획적이고, 덜 감정적인 성격이죠. 저는 MBTI가 아예 바뀌었는데요. E에서 I로. 사실 성격은 경험이나 환경에 따라 계속 변하죠. 주식으로 전 재산을 날렸으니 성격이 바뀔 만하죠.(웃음)

이 기사는 3월 14일 발행한 앤츠랩 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 이번 콘텐트가 마음에 드셨다면 주변에 소개해주세요!
https://www.joongang.co.kr/newsletter/ants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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