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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프랑스 전쟁 앙금 씻은 학생 교류, 한·일에도 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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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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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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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전인 1964년, 34살의 프랑스 가수 바르바라(1930~97)는 독일 중부 괴팅겐 대학의 축제에 초청받았다.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10살 때인 1940년 6월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파리가 점령된 뒤 1944년 8월 해방 때까지 4년 넘게 죽음의 공포 속에서 숨어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바르바라는 유대인이었다.

그래도 재수가 좋은 편이었다. 같은 연배인 안네 프랑크(1929~45)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다락방에 숨어 살다 1944년 8월 온 가족이 게슈타포에 체포돼 나치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1945년 독일 북부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16세의 나이로 숨졌다. 『안네의 일기』를 남긴 바로 그 유대 소녀다.

1963년 우애조약 이후 매년 행사
지금껏 양국 학생 900만 명 지원
프랑스 가수가 부른 ‘괴팅겐’ 유명
한·일 새 정부, 학생교류 추진 기대

굳이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프랑스인의 독일에 대한 감정은 좋지 않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 영화배우 알랭 들롱은 1968년 프랑스·영국 합작영화 ‘그대 품에 다시 한번(La motocyclette)’ 촬영차 독일을 방문한 뒤 1994년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받을 때까지 한 번도 독일을 다시 찾지 않았다고 한다.

바르바라는 여러 차례 초청을 거절하다가 끈질긴 설득에 괴팅겐을 찾았다. 가봤더니 약속한 그랜드 피아노도 준비되지 않았기에 화가 나서 숙소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랬더니 대학생들이 동네방네 다니며 피아노를 구해 직접 들고 와 무대에 올려놨다.

노래로 씻어내린 오랜 적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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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공연에 나선 바르바라는 학생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기분이 풀렸다. 그래서 현지에 며칠 더 머무르며 곡을 썼다. 독일 도시 이름을 제목에 붙인 샹송 ‘괴팅겐’의 탄생이다.

가사는 평범하게 시작한다. ‘물론 이곳은 센 강이 아냐/방센(파리 근교 지명)의 숲도 아냐/하지만 즐겁기는 마찬가지야/괴팅겐에서, 괴팅겐에서.’ 파리처럼 베란다에 꽃이 걸려있고, 거리엔 아이들이 뛰어놀며, 서로 역사적인 공통점도 있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굳이 설명하자면, 독일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발견이다. 괴팅겐에 와서 공연하면서 머릿속의 적대감이 사라지고 대신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에 눈에 갔다는 의미다.

바르바라는 프랑스어로 부른 노래가 인기를 끌자 독일어 버전도 내놨다. 이 노래는 목포에서 ‘목포의 눈물’이, 부산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그랬던 것처럼 금세 괴팅겐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눈여겨볼 점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일과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됐다는 점이다. 우연한 초청과 이를 계기로 만든 한 곡의 노래가 전쟁 뒤 서로 서먹서먹했던 프랑스와 독일의 전후 세대 사이에 소통과 상호이해를 촉진했다. 5년 전 괴팅겐에 간 적이 있는데, 바에서 ‘괴팅겐’을 처음 듣고 연유를 물어봤다가 이런 놀라운 사연을 알게 됐다.

문화가 외교를 이끈 경우다. 그 배경에는 지도자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프랑스와 서독은 그 한 해 전인 1963년 1월 23일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파리 엘리제 궁에서 양국 우애 조약을 체결했다. 엘리제 조약으로 불리는 이 조약에 따라 두 나라의 대통령과 총리와 외교·국방·교육 장관과 군의 참모장은 매년 회담을 열기로 했다.

주목할 점은 이 조약으로 프랑스·독일 청년사무소(FGYO)를 개설했다는 점이다. FGYO는 양국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지금까지 36만 회의 학생 교환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이를 통해 모두 900만 명의 양국 청년·청소년 교류를 지원했다. 1870~71년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914~18년의 제1차 세계대전, 1939~45년의 제2차 세계대전, 1947~56년의 전후 프랑스의 독일 자를란트 점령 등으로 양국 사이에 쌓인 원한·적개심·적대감은 이를 통해 상호 이해로 바뀌어나갔다. 2003년 엘리제 조약 40주년을 맞아 모인 양국청년의회포럼(YPF) 대표들은 양국 공동 역사 교과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프랑스 교육부와 독일 외교부가 지원해 2006년 프랑스·독일 공동 역사 교과서가 탄생했다.

양국 언어 동시 송출 방송사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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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이 학교 학생이었던 게르하르트 슈뢰더(1998~2005년 총리 재임)는 2003년 1월 엘리제 조약 40주년 기념행사에서 바르바라의 노래를 언급했다. 노래 ‘괴팅겐’은 두 나라의 마음을 잇는 교량이 됐다. 지속해서 소통한다는 지도자들의 결단이 청년과 청소년의 끊임없는 교류로 이어지고, 이는 두 나라 국민 사이의 오랜 앙금을 털어내는 계기가 됐다. 괴팅겐의 기적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1991년 동일한 문화 프로그램을 두 나라 언어로 동시 송출하는 아르테 방송을 국경도시 스트라스부르에 공동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독일 학생 교류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자 1987년에는 유럽연합(EU) 차원의 학생 교환프로그램인 에라스뮈스 프로그램이 가동됐다. 유럽 전역을 다니며 공부하고 일하면서 지식과 경험·통찰력을 확대한 16세기 네덜란드 출신의 가톨릭 수도자이자 인문주의자·세계주의자·자유주의자인 데시디리위스 에라스뮈스의 이름을 땄다. 다른 프로그램으로 확대된 2014년까지 유럽 31개국 4000개 대학에서 330만 명의 학생이 서로 교류했다.

정권 교체로 한국과 일본이 오랜 반목을 청산하고 교류와 협력으로 상호이해의 문을 열 기회가 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청소년과 청년세대의 교류 프로그램으로 한·일 사이에 ‘괴팅겐의 기적’이 벌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