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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원배의 직격인터뷰

사공일 "전문성·능력으로 인사하고, 규제개혁해 기업 기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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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임성빈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국은 지금 변곡점에 서 있다. 대내적으로는 공공의 역할과 포용적 성장을 강조한 문재인 정부를 지나, 시장 중심의 경제성장에 무게를 두는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등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으로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부 안팎에서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나침반'을 제시했다. 사공 이사장은 윤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직접 나서기보다 부처 장관에 힘을 실어야 한다”며 “장관직에는 지역구 국회의원 기용을 피하고, 능력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기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를 15일 서울 강남구 세계경제연구원 집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IGE) 명예이사장이 15일 서울 강남구 무역센터 자신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현동 기자 /20220315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IGE) 명예이사장이 15일 서울 강남구 무역센터 자신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현동 기자 /20220315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인수위원회가 꾸려졌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선거 과정에서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이 많은 공약을 내놓았다. 이제 인수위원들은 이미 내놓은 공약들이라도 다시 한번 추려내야 한다. 지금 나라 살림살이가 어떤지 상세하게 보고를 받았을 테니, 바깥에서 들고 온 공약들이 실현 가능한지, 우선순위를 정하고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인수위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려면.
인수위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운영돼야 한다. 대통령 선거의 연장선상에서 정치적 색깔을 그대로 갖고 인수위를 운영하면 국민에 실망을 안길 수밖에 없다. 인수위원들이 당장 내일 신문의 헤드라인이나 ‘뉴스감’을 생각하고, 단기 정책을 쏟아내서는 안된다. 국민은 인수위 60일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인기 영합적인 정책을 쏟아내면 안 된다. 인수위는 정치인보다는 전문적이고 실무적인 인사를 중심으로 구성돼야 한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의 힘을 빼겠다고 한다. 청와대와 부처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 
청와대 조직을 간소화하고 힘을 빼겠다는 윤 당선인의 공약은 백번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애초에 청와대가 왜 힘을 갖고 부처 위에 군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비서진에 정책을 지시하는 방식이 문제다. 이것은 청와대가 부처 위에 군림하라는 것과 같고, 그 결과 청와대가 비대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 지시를 공개할 필요가 있을 때는 국무회의를 통해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통령 보좌진은 어떻게 해야 하나. 
청와대 수석은 목소리도 얼굴도 없어야 한다. 공은 장관과 부처에 돌려야 한다. 다만 전체 상황을 조율하는 대통령의 분신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수석의 목소리가 커지면 장관은 ‘바지사장’이 될 수밖에 없다. 바지사장 장관 아래의 부처 공무원도 일에서 손을 놓게 한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청와대를 나와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는 건 문재인 대통령이 이행하는 데 실패한 공약이기도 하다. 윤 당선인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를 광화문으로 옮기는 일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경호 등의 비용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 너무 크다. 정부청사에서 일하는 공직자들의 활동을 제약하고 업무를 방해할 수 있다. 정부청사에는 수많은 민간인이 드나들고, 주변의 유동 인구까지 고려하면 대통령의 경호를 위해 오히려 국민과 멀어지는 결과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 핵심은 비서실을 어떻게 운영하는가다. 
기존 청와대 조직을 그대로 두자는 얘기인가.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을 경내인 비서동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비서동에서 집무실까지 차를 타고 이동할 정도로 거리가 꽤 멀다. 대통령이 비서실과 함께 일하면 더 높은 효율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백악관도 대통령과 비서실이 같은 공간에서 일한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IGE) 명예이사장이 15일 서울 강남구 무역센터 자신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현동 기자 /20220315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IGE) 명예이사장이 15일 서울 강남구 무역센터 자신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현동 기자 /20220315

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어떤 사람을 요직에 기용해야 하나. 
인사는 대원칙이 있어야 한다. 첫째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국정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전문성을 가진 인사여야 한다. 특히 소통 능력과 국제적인 안목이 필수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지정학적 리스크 등 세계적인 혼란 속에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꼭 필요한 능력들이다. 둘째로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경제, 외교·안보·국방, 보건·사회·노동·복지 등 각각의 관계 장관들의 철학이 비슷하고 손발이 맞아야 한다. 경제부총리라면 경제 분야의 다른 장관들의 생각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대통령이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을 정했다면, 조각 과정에서 이들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셋째로, 성별·출신 지역별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앞선 능력과 팀워크의 조건을 다 맞춘 것을 전제한다. 능력이 없는데 균형 때문에 인사를 할 수는 없다.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의 역할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경제부총리의 기획조정 기능을 강화하고, 경제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제도를 안 바꿔도 된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직접 ‘경제부총리하고 상의했어요? 경제부총리도 알고 있어요?’라고 물어보면 된다. 그러면 당연히 경제부총리의 위상이 올라가고 기획조정 기능도 원활하게 이뤄진다. 국무총리는 협치와 국민통합에 일의 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 국정의 실무는 분야별 부총리에게 맡기되, 큰 틀에서 업무를 조율하고, 대통령과의 소통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행정 각부 장관에는 현직 국회의원, 특히 지역구 의원을 임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나라 전체보다 지역구에 더 신경 쓰는 정책이 나올 수 있어서다. 또 여소야대 상황에선 유능한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입법 활동 등 할 일이 많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협치가 잘 이뤄질까.
내가 장관을 한 노태우 정부 시절 여소야대가 처음으로 나타났다. 그때 경험을 토대로 두 가지를 조언하고 싶다. 우선 장관을 지명할 때 전문성뿐만 아니라 소통 능력, 대국회 설득 능력을 염두에 둬야 한다. 현직 국회의원을 정무장관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이들이 청와대 주요 정책회의에 참여해 국회와 당에 청와대 분위기를 전달하고, 동시에 국회 여당의 분위기를 행정부에 알려주는 방식을 통해 국회와 청와대의 소통을 원활히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언론과의 소통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정례화하고 차담회ㆍ간담회 등을 많이 만들수록 좋다. 여소야대에서는 결국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언론이기 때문이다. 장·차관은 물론 실무 사무관도 언론에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정책을 홍보해야 한다. 비단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외신과의 소통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평가하자면
새 정부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문 정부는 검증된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무시하고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정책을 펼쳐 비난을 받았다. 탈원전ㆍ소득주도성장ㆍ부동산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검증되지 않은 하나의 가설이었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실업자가 늘고 자영업자가 피해를 본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이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수요는 커지는데, 공급이 없으니 부동산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청와대가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무시하고 군림하려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새 정부에서는 전문가 집단을 활용해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내부 전문 관료뿐만 아니라 국책 연구원, 검증된 민간 싱크탱크 등 외부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새 정부가 앞으로 5년간 꾸준히 추진해야 할 핵심 과제는
2% 내외인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을 올리는 요소는 노동, 자본, 경제 시스템의 효율화(생산성) 세 가지다. 고령화ㆍ저출산 때문에 노동의 투입량을 올리는 것은 힘들고, 자본 투자를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결국 경제 전체의 효율성이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기업과 기업인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따라서 규제 개혁이 중요하다. 말로만 규제개혁을 외치지 말고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상황판을 청와대에 뒀는데, 윤 당선인에겐 규제개혁 상황판을 대통령실에 두라고 권유하고 싶다. 문 정부는 세금을 써서 일자리를 만들어냈지만, 새 정부는 규제개혁을 통해 민간 부문이 일자리를 최대한 창출하도록 해야 한다.
대선 과정에서 재정의 역할과 국가채무 관리가 논란이 됐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다만 빠르게 늘고 있는 나랏빚이 걱정이다. 한국이 그간 지정학적 리스크를 이겨내 온 원동력은 한국의 재정이 탄탄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 같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지금처럼 국가부채가 늘면 국가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게 된다. 새 정부에서 나라 살림을 재점검하고, 국가채무나 재정적자 등 국가 재정건전성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재정준칙을 마련하라. 코로나19 지원금은 전국민에게 지급하는 것보다는 피해가 큰 계층에게 집중적으로 지급하는 게 맞다고 본다.
미·중 패권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경제라는 것이 진공 속에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정치ㆍ사회ㆍ문화 등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움직이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국방ㆍ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열강 사이에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게 한국이 처한 현실이다. 한미동맹을 공고히 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중국ㆍ일본과의 관계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동남아시아ㆍ중앙아시아 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식으로 외교의 폭도 넓혀야 한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 국가 간의 의리를 지키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자주적인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낼 수 있다.

◇사공일(82) 명예이사장은=1983년부터 1987년까지 최장수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은 이후 재무부 장관을 두 번 지내며 경제정책의 핵심에서 일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특별고문으로 활동하다 1993년 세계경제연구원을 세운 뒤에는 세계적인 경제 석학과 주요국·국제기구의 정책 수장을 초청해 그들의 생각을 국내에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으로 G20 서울 정상회의 개최 준비를 주도했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한국무역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취득한 뒤 미국 뉴욕대·영국 셰필드대에서 교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