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혜명의 파시오네

개관 10년 여수 예울마루

중앙일보

입력 2022.03.16 00:18

업데이트 2022.03.1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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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흔히 한 나라의 문화예술 수준을 판단하려면 그 나라의 공연장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공연장은 한 사회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울 예술의전당이 그렇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세워졌다. 1970년대 고도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이 가난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벗고 문화 수준을 갖춘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역량을 세계에 인정받으려는 의지의 결과물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공극장은 약 260여 개(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등록 기준)에 이른다. 양적으론 몰라보게 성장했지만 수도권에 편중된 문화예술 인프라는 우리나라 공연예술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자체와 기업의 뜻깊은 동행
수준 높은 지역문화 이끌어와
기업의 활발한 동참 이어지길

정부와 지자체가 건립한 공공극장만이 지역예술 발전의 거점기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역을 기반으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기업이 지자체와 뜻을 모은다면 지역경제 성장은 물론 문화예술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예울마루 효과’라 불리며 문화예술시설 벤치마킹 사례로 손꼽히고 있는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가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전남 여수시 예울마루 전경. 대극장·소극장·전시장 등을 두루 갖췄다. [사진 예울마루]

개관 10주년을 맞은 전남 여수시 예울마루 전경. 대극장·소극장·전시장 등을 두루 갖췄다. [사진 예울마루]

결정적인 계기는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개최였다. GS칼텍스는 사회공헌 사업의 하나로 여수시와 손을 잡고 문화예술시설 조성사업인 예울마루 1단계, 망마 공연장과 전시장을 개관했다. 예울마루는 문화예술의 너울이 가득 넘친다는 뜻의 예울과 전통가옥의 마루처럼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마루가 합쳐진 말이다. 말 그대로 예술과 휴식이 공존하는 공간을 지향하며 문을 연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다.

프랑스 출신의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7층 규모의 예울마루는 여수 망마산의 어떤 자연경관도 헤치지 않도록 친환경적으로 설계됐다. 산속에 공연장을 감추고 외형상으로 지붕과 계단만 보이는 천재적 건축가의 기막힌 발상의 전환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며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예울마루 효과’가 지역문화 발전에 끼친 영향을 자세하게 살펴본다. 현재 여수시 인구는 대략 28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2012년 예울마루가 개관된 이래 누적 관객수는 약 93만 명(2020년 12월 기준)으로 조사됐다. 인구 대비 누적 관객수가 놀랍지만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도는 유료 관객 점유율이다. 코로나19 이전 예울마루의 유료관객 점유율은 무려 72%에 달했다. 이는 수준 높은 관객을 보유한 문화도시로서 여수시의 이미지 상승효과로 이어졌고 초대권 없는 클린 공연장을 표방하며 지역의 긍정적인 공연문화 정착에도 기여했다. (전국 공연장 평균 유료 객석 점유율 44%. 2019년 공연예술실태 조사보고서).

11년째 여수심포니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문정숙 대표는 “예울마루는 공연장을 넘어 여수시민의 문화적 긍지”라며 “지역 예술인 및 단체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지역 문화예술 거점기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왔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상찬도 이어졌다. 지휘자 정명훈은 “대극장은 물론 리허설룸까지 완벽한 공연을 지원하는 최고의 무대”라고 평가했다. 첼리스트 양성원은 “30~40년 후에도 최고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미래를 위해 지은 홀”이라고 말했다.

2019년 5월 예울마루 2단계 문화예술 조성사업인 ‘예술의 섬 장도’가 개관했다. 육지와 장도를 연결하는 진섬다리는 조수 간만의 차이로 하루에 두 번 물에 잠기는데, 만조 시 물 위를 걷는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관광객들과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예울마루 효과’는 여수를 바꾸어 놓았다. 단지 시설물을 짓고 운영을 지자체에 맡기는 기부채납의 형태를 벗어나 현재까지 기업이 운영비의 절반 이상(62%)을 부담하며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계속해서 참여하는 사회공헌사업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개관 10년을 맞은 이승필 예울마루 관장은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지자체, GS칼텍스가 협력 거버넌스를 유지하며 글로벌 시대 여수시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도시로서 거듭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예울마루 효과’는 스페인의 ‘빌바오 효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문화예술 불모지에서 지역 예술인들의 창작 욕구와 시민들의 문화향유권 확대에 기여하며 품격있는 문화예술의 도시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반가운 소식이 또 있다. 국내 대표 관광지인 제주에도 호반건설이 참여하는 기부채납 형태의 공연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수도권과 지역의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문화 발전을 위한 기업의 역할이 새롭게 기대되고 있다.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