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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임기 마지막 날까지 ‘공기업 알박기’ 인사 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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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산업부·중기부 산하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2020년 연봉 상위 10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산업부·중기부 산하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2020년 연봉 상위 10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청와대, “인사 협의해 달라”는 요청 거절

새 정부 국정에 부담 안 주려면 멈춰야

문재인 정부 내내 도마 위에 올랐던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가 임기 말까지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은 어제 현 정부의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꼭 필요한 인사의 경우 저희와 함께 협의해 달라”는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의 말에 문제의식이 담겼다.

최근 공기업 인사를 보면 왜 이런 염려가 나오는지 알 수 있다. 지난 10일 임찬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이 한국가스안전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됐다. 임 감사는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국장 등을 지냈다. 지난달 25일 임명된 김명수 한국남부발전 상임감사는 김해영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새 정부 출범을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에 민주당 출신을 잇따라 공기업 요직에 보내니 ‘알박기’라는 말이 안 나오겠는가. 당선인 측의 문제 제기에 대해 “5월 9일까지는 문재인 정부 임기고, 임기 내에 주어진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답변은 퇴임 직전까지 알박기 인사를 강행하겠다는 통보처럼 들린다. 정권 교체기에 접어들면 차기 정부의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공직 인사를 자제하는 관행을 무시하는 언사다.

취임 당시 문 대통령은 “공기업 낙하산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성장금융 등 국민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공기관에 전문성과 무관한 인사를 앉히려고 해 비난을 받았다. 지난 정부가 선택한 인물은 가만두지 않았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들을 내몰고 현 정부가 낙점한 사람들을 앉힌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게 불과 두 달 전이다.

문 대통령은 전임자가 인선한 공공기관 임원이 새 정부 국정 운영에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절감했을 터다. 해결사로 나섰던 장관이 훗날 법정 구속되는 광경을 뻔히 보고서도 임기 말에 청와대와 민주당 출신 인사들을 공공기관 임원으로 심고 있다. 오죽하면 노무현 정부 관계자조차 “대통령 임기가 두 달 남은 상황에서 정치권 출신을 공기업에 보내는 건 부적절한 행태”라고 언급하겠나.

차제에 역량이 미흡한 인물이 ‘보은 인사’로 공기업 요직을 꿰차는 구태를 차단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행정부는 물론 공공기관까지 대통령이 임명하는 주요 직위와 보수, 임기 등을 상세히 명시한 미국의 ‘플럼북(Plum Book)’ 사례를 참고해 공기업 인사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윤 당선인은 정치 경력이 9개월에 불과해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에서 신세 진 사람이 전임자들보다 한결 적다. 국가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고질적 낙하산 인사의 병폐를 뿌리 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