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둔촌주공 250마리 길냥이 이주작전…그들도 사람처럼 정든 곳 못 버리더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다큐 '고양이들의 아파트' 포스터. [사진 엣나인필름, 메타플레이]

다큐 '고양이들의 아파트' 포스터. [사진 엣나인필름, 메타플레이]

“뚱아~” “까미야!” 밥때가 되면 다정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캣맘’들이 챙겨준 사료와 간식을 먹고 나면 잠이 쏟아졌다.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뛰놀다 다치면 상가 약사 할아버지가 치료해줬다. 1980년 세워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고양이들 이야기다. 6000세대 가깝던 대단지다. ‘고양이 천국’으로도 유명했다. 수백 마리 고양이는 온 아파트가 함께 키우는 반(半)집고양이 같았다.

봄이면 “언덕 양지바른 자리의 산수유나무꽃에 노란빛이 물드는”(이인규 작가의 동네 기록 프로젝트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작은 숲을 품은 오래된 아파트는, 사람에게도 고양이에게도 고향이었다. 재건축이 결정되면서 2019년 아파트 단지가 완전히 헐리면서 추억도 철거됐다. 그 많던 고양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주민들이 떠난 둔촌주공아파트에 ‘공순이’‘뚱이’ 등 길고양이들이 남은 다큐의 한 장면. [사진 엣나인필름, 메타플레이]

주민들이 떠난 둔촌주공아파트에 ‘공순이’‘뚱이’ 등 길고양이들이 남은 다큐의 한 장면. [사진 엣나인필름, 메타플레이]

1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바로 그 고양이들의 이주 프로젝트를 기록한 작품이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로 데뷔해, 도시 공간 다큐 3부작 ‘말하는 건축가’(2012) ‘말하는 건축 시티: 홀’(2014) ‘아파트 생태계’(2017) 등을 만든 정재은(53)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주민 이주가 시작된 2017년 5월부터 아파트가 모두 헐린 2019년 11월까지 2년 반을 카메라에 담았다.

“둔촌주공 고양이는 통통하고 윤이 나고 행복해 보였어요. 여느 길고양이처럼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죠.” 10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아트나인 영화관에서 만난 정 감독은 2016년 9월 둔촌주공아파트에 갔을 당시를 기억했다. 둔촌주공에서 나고 자란 주민 이인규 작가의 초대였다. “사람과 친밀해진 이 고양이들은 아파트가 재건축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어요. 그 질문이 영화의 시작이었죠.”

정재은 감독 [사진 엣나인필름, 메타플레이]

정재은 감독 [사진 엣나인필름, 메타플레이]

영화는 고양이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오르내리는 이삿짐을 일제히 바라보는 게 놀란 듯하다. 독립적이고 재빠른 고양이는 촬영하기 어렵다. 고양이 눈높이로 핸드헬드 카메라를 들고 땅바닥을 기다시피 찍은 장면부터 드론, 무인 카메라 등을 총동원했다. 세심한 편집과 신묘한 분위기의 음악도 한몫한다. ‘범 내려온다’의 이날치밴드 베이시스트 장영규 음악감독이 참여했다.

다큐에서 둔촌주공아파트가 철거되어가는 장면. [사진 엣나인필름, 메타플레이]

다큐에서 둔촌주공아파트가 철거되어가는 장면. [사진 엣나인필름, 메타플레이]

면적 46만㎡의 둔촌주공은 3면이 도로, 한 면이 습지로 둘러싸인 거대한 섬과 같다. 8차선 큰 도로를 건너는 고양이의 로드킬 위험성도 높았다. 아파트 주민과 동물보호운동가로 구성된 ‘둔촌냥이’ 모임이 주축이 돼 이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8년 1월 국회 사무처에서 ‘둔촌 주공아파트 길고양이 이주 대책 세미나’가 열렸고, 구청도 지원에 나섰다. 공사 직전 마지막까지 다큐 촬영팀 등이 아파트에 머물 수 있었던 배경이다.

“사람은 여기가 없어지는 걸 아는데 고양이는 모르니까.” “이렇게 죽어야 할 애들은 아닌 것 같아서….” 다큐 출연자들 말이다. 고양이 성향에 따라 다양한 작전을 폈다. 구분하기 힘든 고양이를 촬영하고 그림으로 그려 구획 별 지도를 그렸다. 붙임성 좋은 고양이는 해코지당할 위험이 커 입양을 추진했다. 대부분은 중성화 수술 후 인근 동네로 이동시켰다. 더 안전한 지역에 더 맛있는 간식을 놓고 유도하려 애썼다.

주민들이 떠난 둔촌주공아파트에 ‘공순이’‘뚱이’ 등 길고양이들이 남은 다큐의 한 장면. [사진 엣나인필름, 메타플레이]

주민들이 떠난 둔촌주공아파트에 ‘공순이’‘뚱이’ 등 길고양이들이 남은 다큐의 한 장면. [사진 엣나인필름, 메타플레이]

문제는 단지를 떠나지 않거나, 자꾸만 돌아오는 고양이가 있다는 점. 다큐엔 의문사한 고양이 사체를 구청 청소과에서 치우는 장면도 담긴다. 고양이마다 운명이 어찌 될지 몰라 “닥치는 대로 찍어두다 보니” 총 85회 차 촬영 분량이 350여 시간에 달했다. 9시간짜리 최초 편집본을 상영시간 88분으로 압축했다.

스스로 “동물활동가는 아니”라는 정 감독은 “고양이를 무조건적인 약자라고 연민으로만 바라보면 답이 없다. 도시 길고양이도 자기 삶의 주체고 나름대로 환경을 개척한다”고 했다. 이어 “고양이가 사람과 친밀해지면서 학대 문제도 많아졌다”며 “사람과 공존해온 ‘이웃’으로서 길고양이와 아파트라는 터전에 대한 시선의 이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파트가 한국 사회의 모든 모순과 욕망, 애증, 돈의 결정체잖아요. 그런 가운데 ‘고양이들의 아파트’라는 우화적 접근이 사람들한테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동물권에 대한 인식의 성장과 재개발을 통한 불로소득 욕망이 묘하게 만난 이 이야기가 아파트라는 도시 생태계에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파트와 재건축을 이렇게 볼 수도 있다고 다큐를 통해 제안해보고 싶었죠.”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