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 '습작' 끝내다, 환갑에 이룬 '문학소녀' 꿈…작가 남궁순금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3.15 06:00

업데이트 2022.03.1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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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친구, 동료, 연인 등에 얽힌 어떠한 사연도 좋습니다.
아무리 소소한 사연도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익명으로 남궁순금 작가를 추천한 이번 사연처럼
누구를 추천하는 사연도 횐영합니다.

‘인생 사진’은 대형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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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차 마감: 3월 31일

환갑, 남궁순금 작가에겐 새로운 시작입니다. 마흔아홉해 품었던 꿈이 비로소 현실이 된 겁니다.

환갑, 남궁순금 작가에겐 새로운 시작입니다. 마흔아홉해 품었던 꿈이 비로소 현실이 된 겁니다.

저는 중앙일보 열렬한 독자입니다.
더욱이 오래전부터 문학 기사를 열독해온
열혈 문학 독자입니다.

근자에 신인 등용문이었던
중앙신인문학상이 없어져서 무척 아쉬웠던 터입니다.

이런 터에 올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인
남궁순금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환갑인 61세에 '문학소녀'의 꿈을 이루었더군요.
늦은 나이임에도 인생 이모작의 길을 연
그의 삶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남궁순금 작가를
‘인생 사진’의 주인공으로 추천하고자 합니다.

물론 타 언론사 신춘문예 당선자라서
추천하기에 적잖이 망설여집니다만,
결국 우리나라의 문학을 위해서,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를 위해서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감히 추천합니다.

제가 남궁순금 작가를 ‘인생 사진’ 주인공으로
추천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환갑에 '문학소녀'의 꿈을 이룬 사실만으로도
문학가를 꿈꾸는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될 터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흔치 않은 바둑 이야기를 통해
코로나로 사람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시대에
‘자신과 타인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작가의 사명을 보았기 때문’(심사평)입니다.
손으로 대화한다는 뜻에서
手談이라 불리기도 하는 바둑을 통해
인간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작가 의식이야말로
지금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이겠죠.
605편의 응모작 중
‘바둑두는 여자’가 당선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나머지 하나는 중견 소설가인 남편 하창수 작가의
오랜 내조자에서 당당히 자신의 길을 열었다는 점입니다.
작가를 꿈꿨던 사람이 30년 내조했으니
차마 못 한 말 많을 겁니다.
그 ‘못한 말’을 인생 사진을 빌려 듣고 싶습니다.

남궁순금 작가의 이야기는
인생 이모작을 꿈꾸는 많은 독자에게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남궁순금 작가는
제가 이 추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미리 얘기했다가 응모에서 떨어지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그 모르게 응모하는 것이고,
혹시 선정되더라도 응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이 땅의 독자를 위해 추천하오니
부디 긍정적인 검토를 바랍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중앙일보 독자 올림

당선되었다는 현실이 외려 그에게 비현실로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참으로 오래 꾼 꿈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당선되었다는 현실이 외려 그에게 비현실로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참으로 오래 꾼 꿈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사연을 본 후 당선작인
‘바둑두는 여자’부터 찾아봤습니다.

추천하며 독자가 든 두 번째 이유,
‘바둑을 통해 인간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작가 의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인연과 인연이 멀어지고
은둔형 외톨이가 양산되는 시대에
타인을 위해 서로 애를 쓰고
소통하는 메시지가 무엇보다 공감된 겁니다.

사실 이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끊어진 인연 그리고 추억과 기억을
사진으로 이어보자는 게 취지니까요.
그래서 남궁순금 작가를
‘인생 사진’의 주인공으로 선정했습니다.

사연 선정 소식을 전하며
제가 춘천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궁순금 작가는
구태여 춘천에서 서울 상암동으로 오겠다고 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오기에 참으로 불편할 텐데도
굳이 그가 상암동으로 온 이유를 만나자마자 알게 되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어찌 이 먼 곳까지 오실 생각을 하신 겁니까?”
“신문사 스튜디오가 어찌 생겼는지 궁금했어요. 무엇보다 제 눈으로 보고 싶었어요.”
남궁 작가는 바둑을 좋아합니다. 실제로 그는 이창호, 최정 프로를 만나 악수를 하면서 손과 마음이 떨렸다고 고백했습니다.

남궁 작가는 바둑을 좋아합니다. 실제로 그는 이창호, 최정 프로를 만나 악수를 하면서 손과 마음이 떨렸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작가로서 궁금증이 이유였습니다.
‘바둑두는 여자’에 두 가지 큰 맥락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둑, 또 하나는 글쓰기입니다.
이 두 가지 맥락은 남궁순금 작가가 실제 좋아하는 것이며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몸소 체득한 경험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꿰인 겁니다.
그는 그 새로운 체득을 위해
먼 길을 마다치 않은 겁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작가를 꿈꾸셨다면서요. 그 나이면 고무줄놀이에 여념 없을 때인 거 같은데요.”
강원도 영월 상동읍 백운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 덕에 남궁 작가는 일기나 편지를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학교는 이미 폐교되었지만, 어릴적 품었던 꿈은 여태도 남아 있었던 겁니다.

강원도 영월 상동읍 백운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 덕에 남궁 작가는 일기나 편지를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학교는 이미 폐교되었지만, 어릴적 품었던 꿈은 여태도 남아 있었던 겁니다.

“하하. 맞죠. 대체로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놀이를 하는 때였죠. 그런데 나는 일기를 쓰거나 편지를 쓰거나 뭐 그런 것들이 다 그렇게 재밌었어요. 재밌는 데다 뭘 하면 자꾸 잘했다고 그러니까요. 이러면서 ‘이다음에 작가 돼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그게 변하지 않고 오래도록 내 안에 있었던 거죠.”
“결국 그 꿈을 49년 만에 이루신 거네요. 그 긴 시간 못 이룬 꿈이니 더 간절하셨겠습니다.”
1987년 문예 중앙으로 데뷔, 1991년 장편 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하창수 작가가 남궁 작가의 남편입니다. 이번 남궁 작가의 당선은 같이 산 30여 년 세월의 부담을 서로 내려놓는 일이 되었습니다.

1987년 문예 중앙으로 데뷔, 1991년 장편 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하창수 작가가 남궁 작가의 남편입니다. 이번 남궁 작가의 당선은 같이 산 30여 년 세월의 부담을 서로 내려놓는 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작가랑 결혼했잖아요. 더구나 제 주변에 작가가 너무 많아요. 서울예대 출신 선후배들이 ‘언제 쓸 거냐, 언제까지 뒷바라지만 하냐?’고 하기도 하고요. 이런 얘기가 자극돼서 이제 와 쓴 건 아니지만 계속 불편했던 건 사실이에요. 내가 작가가 못 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계속 빚진 기분 같은 거예요. 그간 쭉 시민운동을 했어요. 대표를 두 번이나 했으니 할 만큼 했죠. 그래서 이제는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작해서 데뷔할 때까지만 써보자는 맘으로 글쓰기 시작했죠.”
“이번에 당선 예감이 들었습니까?”
“밥하다 와서 쓰고 또 중간에 결혼 안 한 세 살 어린 여동생 병원도 데리고 다녀야 했죠. 동생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난치병 환자로 분류돼서 서울대 병원에만 다녀야 하거든요. 이러면서 뜨문뜨문 썼는데 원고가 90매, 100매 막 가는 거예요. 그래서 덜어내서 80매에 딱 맞췄어요. 쓰면서 제가 들뜨고 벅차고 뭉클 한 거예요. 적어도 이 이야기를 심사위원들이 제쳐 놓을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러면서 될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진짜 당선되고선 오히려 더 당황스러웠어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내가 이렇게 나이 들었다는 그 비현실도 있고, 이제 됐다는 그 비현실도 있고요.”
“남편분이 참 좋아하셨겠어요. 같이 오시지 왜 혼자 오셨어요? 부부 작가 기념으로 사진도 같이 찍으시지….”
오래도록 그는 작가의 남편, 작가의 친구, 작가의 동료로 살아왔습니다. 어쩌면 그 사실 자체가 그에겐 갚지 못한 빚이었습니다.

오래도록 그는 작가의 남편, 작가의 친구, 작가의 동료로 살아왔습니다. 어쩌면 그 사실 자체가 그에겐 갚지 못한 빚이었습니다.

“당선되고 나서 며칠 지난 다음에 차 한잔하다가 이야기하더라고요. ‘당신이 데뷔하는 게 참 편하다’고요. 우리는 평상시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러니 이 사람이 그렇게 툭 던졌는데 그 느낌이 탁 오더라고요. 이제 비로소 남편도 어떤 부담을 더는구나 하는 느낌이요. 그동안 적지 않은 30여 년 세월 같이 살아오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빚진 마음을 이 사람도 다 보았고, 느꼈고, 그러면서 응원했겠지만, 이 모두 남편에겐 어떤 부담이었을 거예요. 나를 글 쓰게 하려고 이 사람이 노트를 손수 만들어 내게 줬어요. 그 노트에 주제를 써 놓았더라고요. 예를 들면 하늘, 커피, 할머니 뭐 이런 식으로요. ‘이걸 소재로 하나씩 써라. 막힐 때마다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어라’ 하면서 자극을 줬어요. 또 어디 다녀오면 내게 노트를 선물 했어요. 사실 내가 그거를 눈물겹게 받은 적은 없고, 왜 또 내게 스트레스를 주냐는 생각도 했죠. 왜 엄마들이 애들 공부하게 하려고 이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하하.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기도 하고 좀 그랬어요.”
“이 세상 사람들이 남궁순금 작가를 어떤 이미지로 기억해 주기를 바라나요?”

이 질문을 한 건 이미지를 통해 남궁 작가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요량이었습니다.
세상에 비치고픈 이미지에 당신의 마음이 담겨 있게 마련이니까요.

남궁 작가는 잠깐 뜸을 들이고선 답을 했습니다.

“하늘이에요. 저는 하늘색이 그렇게 좋거든요. 며칠 전에도 바다를 갔었죠. 그냥 아무것도 없는 바다 하늘을 찍은 사진이 있어요. 한번 보실래요?”

휴대폰 사진첩에서 보여준 사진은 말 그대로 말갛습니다.

“왜 아무것도 없는 하늘인가요?”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렇고, 우리가 그야말로 눈앞에 보이는 물질에 너무 치우쳐있죠. 저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맑은 개울과 어린 송사리 그런 것들이 너무 좋아요. 먼지 풀썩풀썩 나는 신작로 같은 거도 그렇고요. 해 지면 소 끌고 가고, 소여물 끓이는 것도요. 참 소박하지만, 어우러지는 그런 게 내 안에 항상 있어요. 정서적으로 서로 따뜻했으면 좋겠고, 상식적으로 예의를 좀 지켰으면 좋겠고, 욕심을 좀 덜 냈으면 좋겠고, ‘그냥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라는, ‘뭔가 덜어내야 한다’라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라는 그런 의미에서 하늘이라 할 수 있어요.”
남궁 작가는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음’이 그가 작가로서 세상에 풀어놓아야 할 이야기라고 합니다.

남궁 작가는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음’이 그가 작가로서 세상에 풀어놓아야 할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가 말에서 하늘의 의미가 전해져 왔습니다.
‘여기서 멈춰야 한다’,
‘뭔가 덜어내야 한다’,
‘그냥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의 하늘은
그가 작가로서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어지는 그의 말에도 담겨 있었습니다.
“문학을 통해서 이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내가 발현하는 게 작가로서 내 남은 생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환갑에야 들어선 새길,
먼지 풀썩풀썩 나는 그 길이
오롯한 그의 길이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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