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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위 강군도 비틀대는 이유…국방혁신, 러 실패서 배워라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3월 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은 “러시아가 단기적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달성하는 전술적 성과(tactics gain)에 상관없이 장기적으로는 전략적 패배(strategic defeat)로 고전할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파괴돈 러시아군 탱크 주변에서 탄약을 수거하고 있다. AFP=연합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파괴돈 러시아군 탱크 주변에서 탄약을 수거하고 있다. AFP=연합

그가 러시아의 전략적 실패를 확신한 근거는 무엇일까? 군사전략 이론 측면에서 러시아의 군사작전을 분석해 보면 일정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전략 연구자인 아서 리케는 ‘군사전략’을 ‘다리가 3개 달린 의자’에 비유했다. 즉, “군사전략(Military Strategy)은 최종목표(Ends)ㆍ수단(Means)ㆍ방법(Ways)이라는 3가지 요소가 균형(Balancing)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다. 만약 균형을 이루지 못할 경우 의자가 넘어지듯 군사전략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욤키푸르(유대교의 속죄일) 전쟁’이라 불리는 제4차 중동전쟁(1973년 10월 6일~25일)에서 이집트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가말 압델 나세르에 이어 집권한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은 이집트군의 능력과 한계를 냉철하게 인정하고 군사전략을 수립했다.

첫째, 전쟁의 최종 목표(Ends)를 제한했다. ‘이스라엘의 멸망’이라는 기존의 최종목적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대신 이스라엘이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ㆍ1967년 6월 5~10일) 때 점령한 시나이 반도의 일부를 신속하게 점령하고 협상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기로 했다.

둘째, 방법(Ways)은 이집트군의 수준에 맞췄다. ‘기동전’을 포기하고 방어를 통한 ‘소모전’을 통해 이스라엘군의 피해를 강요하기로 했다. 그래서 수에즈 운하를 신속하게 도하한 뒤 시나이 반도에 견고한 방어진지(교두보)를 편성함으로써 역습해 오는 이스라엘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작전을 구상했다.

셋째, 수단(Means)은 이스라엘의 공군과 기갑부대 대응에 집중했다. 소련으로부터 대량 도입한 지대공 미사일(SA-6)과 대전차 유도미사일(AT-3) 등이 대표적이다.

이집트는 군사전략의 ‘균형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한 덕분에 전쟁 초기에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 중반부터 시리아와 요르단의 정치적 압력을 못 견딘 이집트가 기존의 수세적인 군사전략을 벗어나 ‘공세’로 전환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수단과 방법의 불균형으로 이집트 군의 공세는 실패하고 전쟁의 주도권은 오히려 이스라엘로 넘어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전쟁 초기의 성과 덕분에 협상을 통해서 수에즈 운하와 시나이 반도를 회복할 수 있었다. 결국 전쟁의 최종 목표를 상당 부분 달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군사전략의 최종 목표(Ends)는 ‘전쟁을 어떤 상태에서 전쟁을 종결할 것인지’를 미리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을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전쟁을 종결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상태에서 종결할 것인지’를 합리적으로 설정하고, 전투원들을 포함한 국가 구성원들이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달 21일(우크라이나 침공 3일 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영상은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줬다.

영국 국방부가 분석한 13일(햔지시간) 현재 전황도. 러시아가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를 아직도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 국방부

영국 국방부가 분석한 13일(햔지시간) 현재 전황도. 러시아가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를 아직도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 국방부

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세르게이 나르쉬킨 해외정보국(SVR) 국장에게 “그게 무슨 뜻인가? 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안하는 건가? 말을 해봐, 말을!”라며 반복적으로 다그쳤다. 결국 궁지에 몰린 나르쉬킨 국장이 “네, 저는 그들(도네츠크 공화국과 루한스크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자는 제안을 지지합니다”고 답변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제야 “좋다.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말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회의에 대해 “푸틴 대통령이 주요 의사결정에서 측근들을 배제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권위주의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은 푸틴 대통령과 참모들 사이에, 그리고 전쟁 지도부와 현장 전투부대(전투원) 사이에 전쟁의 ‘최종 목표’에 대한 인식의 간격(Gap)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유엔(UN) 회의에서 “이건 진짜 전쟁이에요. 나 무서워! 그들은 우리를 파시스트라고 불러요”라는 어느 러시아 병사의 휴대폰 문자가 공개된 적이 있다. 전쟁의 최종 목적에 대한 크렘린 궁과 전투 현장의 간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인구 1000명 당 20명 필요한데 3.4명 만 투입

지난 10일 푸틴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전쟁의 최종 목표를 공식화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요구 취소, 비무장화ㆍ비나치화, 중립국 지위, 돈바스 지역의 독립 인정 등이다. 그리고 협상이든 전쟁이든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라도 이를 달성할 것임을 강조한 바 있다.

러시아 크라노스다르 크라이의 프리모르스코-아카타스크 공군기지에 전개된 Su-34 전투폭격기. 러시아는 압도적 공군력을 갖고서도 우크라이나에서 제공권을 아직 확보하고 있지 못한 상태다. EPA=연합

러시아 크라노스다르 크라이의 프리모르스코-아카타스크 공군기지에 전개된 Su-34 전투폭격기. 러시아는 압도적 공군력을 갖고서도 우크라이나에서 제공권을 아직 확보하고 있지 못한 상태다. EPA=연합

그렇다면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은 잘 준비되었을까?

우크라이나 지역에 투입된 러시아군 병력의 규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8년 러시아는 조지아에 약 7만 명의 병력을 투입해 전쟁을 5일 만에 종결한 바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러시아 병력은 약 15만 명으로 알려졌다. 조지아보다 2배가 조금 넘는 규모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국토 면적은 조지아의 9배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병력밀도가 4분의 1 이하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2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스 존스 부회장도 CNN에서 “장기전이 되면 러시아군이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03년 미국의 랜드(RAND) 연구소는 “특정 국가를 장기간 점령하기 위해서는 인구 1000명당 병력 20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직전에 투입 병력의 규모를 둘러싼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미국 국방부 장관과 에릭 신세키 육군참모총장의 논쟁, 그리고 이라크 안정화 작전에서 미군이 오랜 기간 고전한 사례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투입된 러시아군 약 15만 명은 우크라이나 인구 1000명당 약 3.4명에 불과한 수준이다.

러시아가 전쟁의 최종 목표를 ‘돈바스 지역과 크름(크림)반도를 기반으로 점령 지역을 일부 확대하는 것’으로 한정했다면 이러한 병력 규모는 합리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공언한 최종 목표를 달성시키기 위해서는 수도 키이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전제를 군사력으로 점령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필요한 병력은 현재 투입 병력의 3배에 달하는 ‘약 40~50만 명’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결국 전쟁의 최종 목표와 수단 사이에 불균형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군사적으로 승리해도 정치적으론 패배

푸틴 대통령의 최종 목표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우크라이나에 친 러시아 정권을 수립하고, 영구히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러시아군이 수행하고 있는 군사작전의 방법은 이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하리카우의 민간인 아파트가 러시아군 포격을 부숴졌다. 러시아군은 최근 무차별 공격을 벌여 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가 커지고 있다. AP=연합

우크라이나 하리카우의 민간인 아파트가 러시아군 포격을 부숴졌다. 러시아군은 최근 무차별 공격을 벌여 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가 커지고 있다. AP=연합

‘속전속결’은 이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3개 방면으로 전면 침공할 경우, ‘우크라이나 정부의 조직적인 저항 의지가 조기에 와해할 될 것’으로 가정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희망적인(Wishful Thinking) ‘가정’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작전계획에서 가정이 잘못되면 ‘예비계획’으로 전환해야 한다. 러시아 군사 지도부가 이러한 상황에 대비한 예비계획을 준비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현재 수행하고 있는 작전 수행 방법은 전쟁의 최종 목표와 부합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특히, 비 정밀 탄약을 활용한 대규모 공중 폭격과 포병 공격 때문에 민간인 피해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포위된 대도시의 민간인 대피를 위해 설정한 ‘인도주의 통로 개설’ 약속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물론 러시아군의 민간인 공격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저항 의지를 약화하기 위해 고도의 계산된 작전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친러시아 정부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대규모 민간인 피해를 경험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반감을 극복하고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향후, 러시아군이 마리우폴ㆍ하리키우ㆍ키이우 등을 대상으로 대규모 도시지역 작전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감내하기 어려운 민간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승리하더라도 장기적인 측면에서 정치적으로 패배한 전쟁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적지에서 보급이나 정비 받기 힘들어

우크라이나의 전면 침공은 2014년의 크름반도 병합이나 이후 전개된 돈바스 분쟁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전쟁이다. 러시아군은 돈바스 지역에서 운용하던 대대전술단(BTG) 형태로 부대를 편성하여 우크라이나에 투입했다. 이러한 조치가 작전 수행 ‘방법’에 부합하는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적절한 것일까?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미국이 지원한 재블린 휴대용 대전차유도미사일을 지고 참호에서 이동하고 있다. 이 같은 서방의 무기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상대로 선전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로이터=연합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미국이 지원한 재블린 휴대용 대전차유도미사일을 지고 참호에서 이동하고 있다. 이 같은 서방의 무기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상대로 선전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로이터=연합

대대전술단은 강대국과의 전면전쟁이 아니라 지역분쟁 개입에 최적화한 부대편성이다. 돈바스 지역의 분쟁은 전투 강도가 격렬하지 않고, 적의 종심지역으로 깊이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더욱이 친 러시아 반군들로부터 ‘경계ㆍ정찰’뿐만 아니라 ‘보급ㆍ정비’까지도 일부 지원받았다. 따라서 소규모 단위의 부대라도 단점보다는 장점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에 나선 러시아군은 러시아계 주민들의 지원이 거의 없는 종심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대대전술단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보급ㆍ정비능력의 한계가 대표적이다. 미군의 제병협동작전 수행 중심제대는 여단이고, 여단 예하에는 보급ㆍ정비를 전담하는 지속지원대대가 편성되어 있다. 덕분에 여단의 작전지속능력이 시간과 공간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군의 대대전술단은 미군 여단의 약 5분의 1 규모에 불과하다. 그 예하에 보급ㆍ정비를 전담하는 조직을 충분히 편성할 수 없는 구조이다.

또 다른 문제는 징집(복무 기간 12개월) 병사와 계약을 통해 직업군인으로 입대한 병사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다는 점이다. 미군은 모든 구성원이 직업군인이다. 이러한 ‘균질성’은 소부대 전투력 발휘에 효과적이다.

러시아 정부도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징집 병사의 해외 원정작전의 참여를 법령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징집병사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계약’으로 전환했고, 전사자들 가운데 징집 병사들이 포함돼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다. 결국 군사전략의 ‘수단’이 작전 수행 ‘방법’에 적합하지 않은 측면이 드러나고 있다.

기존 군사전략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을 경우, 전쟁 지도부는 군사전략의 3가지 요소를 점검하고, ‘균형’ 회복을 위한 조처를 해야 한다.

‘수단’에 해당하는 부대를 추가로 투입할 수도 있고, 군사작전의 수행 ‘방법’을 변경할 수도 있다. 이런 조치가 불가능하다면, 전쟁의 ‘최종 목표’를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전쟁이 총참모부가 최초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최종 목표는 변화가 없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 군사전략의 실패 가능성이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한국의 국방혁신에 주는 시사점은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미군을 지향점으로 군사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군도 2000년대 중반 이후 군사개혁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식 모델을 참고한 바 있다. 하지만 세계 2위 군사력을 보유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미국식 전쟁은 미국만이 할 수 있구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육군 제7 기동군단의 기계화 장비들. 한국군은 인구절벽 때문에 병력자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동ㆍ첨단ㆍ정예화의 국방개혁으로 전력손실을 극복하려고 한다. 육군

육군 제7 기동군단의 기계화 장비들. 한국군은 인구절벽 때문에 병력자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동ㆍ첨단ㆍ정예화의 국방개혁으로 전력손실을 극복하려고 한다. 육군

1970년대부터 한국군도 미군과의 연합방위체제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한 바 있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 출범과 함께 광범위한 국방혁신을 추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준비과정에서 가장 선행해야 할 사항은 지금까지 우리가 추진해온 국방개혁의 성과와 한계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계 최첨단의 미군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한국군 군사전략의 ‘불균형’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즉, 군사전략의 3개 요소 측면에서 한국군이 구현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냉철하게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한국적 국방혁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과정에서 범하고 있는 군사전략 측면의 과오가 한국의 국방혁신에 유의미한 교훈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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