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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다시 판다…文 때 외신 불러 '폭파쇼'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일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를 촬영한 위성사진. 새 건물과 시설 보수용 목재가 보인다. [뉴스1]

지난 4일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를 촬영한 위성사진. 새 건물과 시설 보수용 목재가 보인다. [뉴스1]

지난 1월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철회를 시사했던 북한이 한국의 대선(9일)을 전후해 핵과 미사일 카드를 흔들고 있다. 특히 한·미 정보 당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더해 함북 철산군 풍계리 일대 핵실험장에서 2018년 5월 폭파한 시설을 복원하는 움직임을 포착하고 집중 감시에 들어갔다. 이곳은 북한이 2018년 6월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신뢰조치의 선제적 차원에서 외신들을 불러다 폭파 장면을 공개했던 곳이다.

그런데 북한이 최근 핵실험장의 갱도를 복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게 군 당국의 판단이다. 미국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 동아시아 비확산 프로그램 소장도 지난 7일(현지시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북한은 건물과 갱도 지주(동바리) 공사에 상당한 목재를 사용하고 있다"며 "최근에 포착된 이런 변화들은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새로운 활동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복구 나선 풍계리 핵실험장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이 복구 나선 풍계리 핵실험장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은 풍계리 만탑산 일대에 4개의 갱도 입구를 만들고, 주 갱도에서 뻗어 나가는 '가지 갱도'를 설치해 놨다. 1번 갱도는 2006년 10월 8일 1차 핵실험후 사용하지 않고 있다. 2번 갱도의 경우 여러 갈래의 가지갱도를 가지고 있어 북한은 2~6차 핵실험을 이곳에서 진행했다.

때문에 북한이 갱도 입구를 폭파했지만 한 번도 실험을 하지 않은 3번과 4번 갱도가 주목받고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은 2020년 9월 보고서에서 "갱도의 입구만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입구만 정비하면 핵실험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2006년 1차 핵실험으로 크게 손상된 1번 갱도를 제외한 나머지 갱도는 입구를 다시 내는 방식으로 수개월 내 복구가 가능할 것이란 주장을 내놨다. 조셉 버뷰데즈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11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입구 정도만 파괴되고 내부 손상이 크지 않았다면 3~6개월이면 복구가 가능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군 관계자 및 전문가들에 따르면 풍계리 지하 핵실험장은 수백 미터(m) 길이의 수평갱도로, 갱도 마지막 부분을 낚시바늘 형태로 터널을 뚫고 군데 군데 격벽(차단문)도 설치했다. 핵실험의 충격과 방사능 등이 터널 바깥으로 확산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다.

풍계리 핵실험장 2번 갱도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풍계리 핵실험장 2번 갱도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현재 길주 인근 지형의 피로 누적을 고려하면 더이상 대규모의 핵실험을 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북한의 6차 핵실험(2017년 9월 3일)이후 길주 인근에선 핵실험에 따른 후속 지진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함북 길주 일대에선 지난 4일에도 규모 2.1의 지진을 포함해 최근 한 달 사이에 다섯 번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곳에서 과거와 같은 큰 폭발력의 핵실험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북한이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 개발과 관련한 기술을 확보했다는 게 북한 핵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따라서 북한이 핵 카드를 다시 꺼낸 건 미국을 향한 압박과 함께 신형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전술핵 수준의 핵탄두 소형화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지난해 북한판 이스칸데르나 에이테큼스 등 신형 미사일을 개발해 실전 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지난해 1월 8차 당대회에서 핵소형화를 강조한 바 있다.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에 '배째라 식'의 긴장고조와 함께 김 위원장의 지시 관철이라는 이중 목적이 담긴 셈이다.

물론 관심을 다른 곳에 집중시킨 뒤 뒤통수를 치는 방식의 빨치산 전술 차원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제프리 루이스 소장은 "북한이 핵실험을 재개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2018년 폭파한 갱도의 손상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아예 다른 장소에서 핵 실험을 재개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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