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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장려금 '해남의 역설'...지원금 받고 36%가 5년내 떠나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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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8일 오후 경북 군위군 전통시장이 장을 보러 나온 군민들로 북적인다. 손님은 물론 상인까지 대부분이 노년층으로 보이는 어르신이었다. 군위=임성빈 기자

8일 오후 경북 군위군 전통시장이 장을 보러 나온 군민들로 북적인다. 손님은 물론 상인까지 대부분이 노년층으로 보이는 어르신이었다. 군위=임성빈 기자

 지난 8일 장날에 찾은 경북 군위 전통시장에는 반찬거리와 과일ㆍ옷 등을 사러 나온 어르신으로 북적였다. 흰머리를 꼬불꼬불하게 파마한 할머니 상인과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손님이 생선값을 흥정한다. 점심시간 "군위 시장 맛집이 어딘가요?"라는 기자의 물음에 시장 상인은 "젊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데는 없는데…"라며 고개를 저었다.

군위군은 전국에서 가장 노령화된 지역이다. 14일 통계청에 따르면 중위 연령은 60.8세(2020년 기준)다. 가장 어린 아기부터 제일 나이가 많은 어르신까지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의 나이가 환갑을 넘었다는 뜻이다. 한국 전체의 중위 연령은 43.7세다. 인구가 줄면서(2월 현재 2만3053명) 지역의 유일한 응급의료기관이었던 군위병원은 2014년 문을 닫았고, 소방서 대신 출장소 격인 119안전센터만 남았다.

전국 노령화지수 상위 지역.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전국 노령화지수 상위 지역.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최모(37)씨는 “중ㆍ고등학교부터는 아이들을 대구ㆍ포항 등 도시 지역의 큰 기숙학교로 보내는 학부모들이 많다”고 전했다. 일거리를 찾는 청년 세대도 대구 등 가까운 도시 지역으로 빠져나갔다. 옷가게를 하는 추정환(76)씨는 “젊은 사람 일자리는 내가 봐도 없다”며 “군위 농공단지에도 일자리가 있고 하우스 농사를 지으러 돌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젊은 사람이라기보단 중년들”이라고 했다. 인근 대도시가 중소도시의 인구를 빨아들이면서 한국의 지역 불균형은 날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수도권 인구도 2020년 처음으로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지역 간 인구 격차가 네 번째로 큰 나라다. 돈과 사람이 수도권·대도시로 몰리면 비좁은 땅에 집과 일자리를 얻으려는 경쟁은 심화한다. 청년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생존에 집중한다. 이 와중에 지역은 인구가 빠져나가며 경쟁력을 점점 더 잃어간다. 실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GRDP) 비중은 지난 2015년 수도권이 비수도권을 추월한 이후 격차를 벌리는 추세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총생산 비중.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총생산 비중.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차기 정부 인구정책 방향은 지역균형발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윤 당선인은 “지역균형발전을 이뤄서 일자리 기회가 균형을 잡아야만 청년의 지향점이 다원화되면서 아이를 낳게 된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대학을 다니다 의성에 정착한 권예원(25)씨는 청년이 농ㆍ산ㆍ어촌에서도 일할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 권씨는 “경쟁이 심한 도시가 아닌 지방에도 청년들이 각자 삶의 루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청년 창업 지원 사업처럼 돈만 주는 사업을 넘어, 청년이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지속가능한 생활을 할 수 있을지를 찾아가는 과정에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북 의성군에서 만난 권예원(25)씨가 청년들이 지역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적협동조합 ‘멘토리’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왼쪽은 멘토리가 마련한 공간에 설치된 팻말. 의성=임성빈 기자

경북 의성군에서 만난 권예원(25)씨가 청년들이 지역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적협동조합 ‘멘토리’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왼쪽은 멘토리가 마련한 공간에 설치된 팻말. 의성=임성빈 기자

그렇다고 출산율을 인위적으로 높이려는 ‘출산 장려금’ 등의 처방은 지방 소멸에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2012년부터 첫째 아이에 총 300만원을 지급한 전남 해남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감사원 분석에 따르면, 당시 해남에서 출산장려금을 받은 아이의 어머니 중 27.5%는 출생 직전(6개월 내)에 해남에 전입했다. 그러나 이후 3년간 출산장려금을 받은 아이 중 26%, 어머니 중 22%가 해남을 떠났다. 2012년 해남의 0세 인구는 810명이었지만, 5년이 지난 2017년 5세 인구는 519명으로 36% 감소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저서 『지방도시 살생부』에서 이를 ‘해남의 역설’이라고 지적했다. 파격적인 출산장려금으로 3년 연속 전국 출산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전남 영광군도 전체 인구는 2013년 이후 계속 감소하는 중이다.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되려 지방자치단체가 보조금을 뿌리고, ‘옆 동네’보다 지원금이 적으면 지자체장의 표가 깎이는 식의 ‘지자체 각자도생’ 정책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마강래 교수는 “지금까지 정부는 낮은 출산율을 보고 당황한 나머지 수도권을 ‘똘똘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대응해 왔는데, 수도권에만 집을 짓고 광역교통망을 깔면 지방은 더 버티기 어렵다”며 “무너지는 비수도권을 치유하는 비용은 점점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이고, 지역소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국가 존망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마 교수는 이어 “지금까지는 개별 기초지자체 단위까지 지원을 분절하다 보니 액수도 적고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며 “지방 도시들이 함께 산업ㆍ일자리ㆍ기업유치 정책으로 협력할 수 있는 광역 메가시티를 구성해 수도권과 맞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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