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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소련 침공에 '무덤' 된 조국 떠올라" 아프간 여고생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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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40년 전 우리가 겪은 아픔이 우크라이나에도….”
서울에 사는 여고생 압둘 나히드(18)는 최근 뉴스에서 우크라이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쓰리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면서 우크라이나 전역엔 포성이 멈추지 않고 있다. 나히드에게 이런 상황이 남 일 같지 않은 것은 조국 아프가니스탄이 떠올라서다. 그는 전쟁을 피해 10년 전 부모와 함께 한국에 왔다. 인도적 체류자로 한국에 머무를 수 있었다. 지난 10일 나히드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편지를 썼다. 한국어로 씌어진 A4 한 장 분량 편지의 제목은 ‘평화를 열망하는 그들에게’였다.

‘제국의 무덤’ 아프간 여고생의 눈물

나히드는 지난 10일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한 편지를 썼다. 사진 본인제공

나히드는 지난 10일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한 편지를 썼다. 사진 본인제공

편지엔 40년 전 러시아(소련) 때문에 피해를 본 아프가니스탄의 역사가 담겼다. 1979년 소련의 침공을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선 셀 수 없이 많은 분쟁이 이어졌다. “이후 아프간은 지금까지 전쟁이 끊이지 않는 ‘제국의 무덤’이 되어버렸다”고 나히드는 슬퍼했다.

지난해 탈레반이 재집권하는 과정도 충격이었다고 했다. 한국의 또래 친구들이 교과서에서나 배우는 전쟁의 비극이 나히드와 가족들에겐 현실이라는 점이 서글펐다고 한다. 그는 “전쟁이 나면 노인과 여성, 아동이 가장 많이 피해를 본다”며 “나와 같은 학생을 가르쳐야 할 어른들이 권력을 잡고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며 어른이 되는 게 싫어지기도 했다”고 적었다.

나히드는 한국에서 배운 것들이 우크라이나에 희망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전쟁의 아픔을 겪은 대한민국은 아프가니스탄과 다르게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서다. 그는 “한국에서 10년간 학교에 다니면서 어떤 권력과 그 어떤 무기도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를 열망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정신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저를 비롯한 전 세계사람들이 우크라이나를 생각하고 기도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달라”고 적었다. 우크라이나 국민을 향해 “외로운 싸움이 언젠가는 찬란한 빛을 발휘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응원했다.

무슬림인 압둘 나히드는 항상 히잡을 쓰고 있다. 사진 본인제공

무슬림인 압둘 나히드는 항상 히잡을 쓰고 있다. 사진 본인제공

“아프가니스탄과 우크라이나에도 봄이 오길”

지난달 21일 압둘 나히드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세계시민포럼 〈우리는 온 아이들〉기획전에서 고국을 다룬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세계시민포럼 제공

지난달 21일 압둘 나히드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세계시민포럼 〈우리는 온 아이들〉기획전에서 고국을 다룬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세계시민포럼 제공

나히드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아프가니스탄도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지인 등으로부터 간간이 전해 듣는 현지 소식에 따르면 나히드의 고향은 반년 전 탈레반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탈레반이 도시를 장악하면서 남성은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는 등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고향의 여러 가게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수입 통로가 막히면서 상품 구매층이 사라졌으며 실직자가 대폭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나히드는 전했다. 공공기관 종사자도 월급을 받지 못하는 터라 한 끼만 먹으며 하루를 버티는 시민들이 많다고 한다. 견디다 못한 이들은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다. 이란과 터키를 지나 유럽으로 망명길에 오르는 이들이다. 나히드는 “아프가니스탄의 겨울은 서울보다 춥다”며 “모두에게 잔혹한 겨울이 빨리 끝나고 아프가니스탄과 우크라이나에도 봄이 오길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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