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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만 논설위원이 간다

젠더갈등 증폭 ‘이대남’, 새 정부에 득일까 실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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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대남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지난 1월 국회에서 포옹하고 있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

지난 1월 국회에서 포옹하고 있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

남성 역차별 담론을 뜻하는 사회현상이던 ‘이대남’이 20대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정치현상으로 바뀌었다. 사회현상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일반화해 기술하는 것인 반면, 정치현상엔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하기 쉽다.

국민의힘의 전략대로 이대남은 윤석열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이 됐다. 그러나 이대남 결집의 반작용으로 선거 막판 이대녀가 이재명 후보에게 몰렸다. 지나친 이대남 챙기기가 이대녀에 대한 차별·배제로 이어져 반감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 일등공신서 부담요소로
이대녀 결집에 민주당 반사이익
이대남 효과 오세훈 때만 못해
정치권이 ‘을들의 싸움’ 부추겨

선거는 끝났지만 두 정당은 여전히 20대 남녀의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이대남 vs 이대녀’의 정치현상은 차기 정부의 국정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당사자인 1990년대생과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회현상으로서의 이대남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와 박지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연합뉴스]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와 박지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연합뉴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에서 이대남의 58.7%가 윤 후보를 택했듯, 이들이 정권교체의 일등공신인 건 분명하다. 이전 기록과 비교하면 더욱 선명하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2016년 12월) 당시 이대남의 국민의힘(구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7%에 불과했지만 지난 1월 44%로 급증했다. 이대녀는 같은 기간 8%→11%로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대남의 국민의힘 지지는 꾸준히 늘었다. 2019년 처음 더불어민주당을 역전한 뒤 엎치락뒤치락 했다. 정부·여당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의 성격이 컸다. 서세혁(30)씨는 “‘미투’나 ‘곰탕집 성추행 사건’ 같은 젠더 이슈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프레임을 형성하고, 그에 대한 반감과 역차별 담론이 정부·여당을 비판적으로 보게 만들었다”고 했다.

국가미래연구원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 2017~2018년 남녀갈등 언급량(2409만 건)은 2015~2016년(385만 건)의 6.3배였다. 전체 사회갈등 언급량의 70%에 달할 만큼 남녀갈등이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대두했다. 조국 사태와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이슈가 맞물리며 정부에 대한 불만도 커졌다. 지난 1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도 가장 심각한 사회갈등은 남녀갈등(33.5%)이었다(18~39세).

20대 표심에 출렁인 대선 후보 지지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대 표심에 출렁인 대선 후보 지지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대남의 표심이 처음 주목받은 건 2020년 총선에서다. 이대남의 40.5%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을, 48%가 민주당을 찍었다(출구조사).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등 공정 이슈가 부각되고 윤미향 사건 같은 내로남불이 계속 되자 이대남의 이탈현상이 심화됐다. 당시 이대남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어준 정치인이 이준석 대표다.

그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이대남은 2021년 4월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을 통해 처음으로 정치적 효능감을 느꼈다. 이대남의 정치세력화에 힘입어 두 달 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이준석 대표는 2030과 장년층을 묶는 ‘세대포위론’을 전략으로 내세웠다. 윤석열 캠프의 청년보좌역을 맡았던 박민영(30)씨는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이대남이 대선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20대 남녀 표심 어떻게 변했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대 남녀 표심 어떻게 변했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실제로 두 후보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할 때마다 독립변수는 이대남이었다. 지난해 11월 후보 확정과 함께 42%에 달했던 윤 후보의 지지율은 12월 이 대표와 갈등을 겪으며 35%로 떨어졌고, 1월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의 결별 이슈가 겹치며 26%까지 급락했다. 약사 출신의 박한슬(31) 작가는 “이대남은 비토 당하는 이준석을 자신과 동일시했다”며 “기성세대에 치이고 여성에게 역차별 받는 이대남의 분노가 이준석을 통해 결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현상으로서의 이대남

지난 연말 윤석열 후보의 측근들 사이에선 이른바 ‘뜰채론’이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단기간 표를 끌어 모을 수 있는 부동층은 20대 남성뿐인데, 이를 매개할 정치인이 이 대표뿐이었다”며 “이대녀는 지지율이 산포돼 표집이 어렵지만, 이대남은 뜰채로 뜨면 된다는 전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와 감정이 있는 상태에서도 끌어안을 수밖에 없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뜰채’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윤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걸고, 이 대표와 갈등을 빚던 페미니즘 성향의 인사들이 물러나자 이대남의 지지율은 수직 상승했다. 이 같은 결집은 이대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윤 후보에 대한 20대 남녀 지지율 전체를 끌어 올렸다. 1월 7일 10%에서 한 달 만에(2월 18일) 32%로 급등했다(한국갤럽).

심상정 전 정의당 대선후보는 “(정치권이) 2030을 성별로 갈라치기 하고, 안티 페미니즘을 선동한다”고 비판했다. 신지예(32) 전 국민의힘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도 “분열로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기획된 것”이라며 “공작의 결과로 2030 여성과 페미니즘이 조롱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이를 ‘편향적 동원(mobilization of bias)’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정치세력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사회현상으로 나타난 다양한 갈등 중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편취하고 부풀린다는 이야기다(『절반의 인민주권』).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20대 안에서의 젠더갈등이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긴 했지만, 정치권이 갈등을 부풀린 측면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대남의 급부상은 이대녀의 반감을 키웠다. 대학생 전모(22·여)씨는 “국민의힘에서 여성 표는 안중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반페미를 내건 후보를 지지할 순 없다”고 했다. 직장인 김모(27·여)씨도 “미투 운동 후 제도가 보완되나 싶더니, 정반대로 여가부 폐지 같은 급진 공약이 나오는 걸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를 포착한 민주당은 선거 막바지에 이대녀의 불안과 반감을 파고드는 전략을 내세웠다. 윤석열 후보를 ‘안티 페미니스트’로 몰며 이대녀 결집에 나섰다. 아울러 N번방 추적단 ‘불꽃’ 활동가인 박지현(26)씨를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영입하고, 선거 뒤엔 공동비상대책위원장으로 인선했다.

일각에선 이대남·이대녀 현상은 결이 다르다고 말한다. 박한슬 작가는 “이대남의 급부상은 기획된 게 아니라 이미 예정된 것”이라며 “이대녀는 ‘82년생 김지영’과 미투 운동, N번방 사건 때 이미 집단화의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K를 생각한다』의 저자인 임명묵(28) 작가도 “정치권이 젠더갈등을 기획한 게 아니라 반대로 이대남들이 ‘핵심은 젠더갈등’이라며 정치인들을 이끌어 온 것에 가깝다”고 밝혔다.

정권 출범 후 젠더갈등은

이대남은 차기 정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가장 먼저 젠더 청구서가 날아들 것으로 예상된다. 박민영씨는 “청년들은 국민의힘에 충성하지 않는다”며 “이해관계가 안 맞으면 떠난다, 그렇게 민주당을 떠났다”고 했다. 이대남은 무고죄 처벌 강화, 여가부 및 여성할당제 폐지, 병역제도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캠프에서 일했던 A씨는 “이대남의 편을 계속 들면 국정이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6월 지방선거 이전까지면 몰라도, 그 이후에도 계속 남녀 갈라치기란 비판을 받으며 이대남 결집 전략을 고수하긴 어렵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 B씨는 “‘여가부 폐지’ 같은 공약은 이름만 바꾸고 정책은 큰 틀에서 유지하는 방식으로 합의점을 찾으면 되는데, 문제는 이준석 대표”라고 했다.

실제로 이 대표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윤핵관’과의 사이가 안 좋은 데다, 극적 단일화로 대선 승리에 공헌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도 감정의 골이 깊다. 지나친 이대남 강조로 역풍을 불렀다는 지적과 함께 20대 전체 득표율에선 윤석열 후보(45.5%)가 이재명 후보(47.8%)에 밀리며 세대포위론이 실패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선과 이번 대선의 출구조사 결과를 비교하면, 이대녀의 이재명 후보 지지율(58%)은 박영선 후보(44%)보다 높았다. 하지만 이대남의 윤석열 후보 지지율(58.7%)은 오세훈 후보(72.5%)보다 낮았다. “선거가 이틀만 늦었어도 (국민의힘이) 졌을 것”이란 분석(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대선을 통해 나타난 이대남의 급부상과 이대녀의 반작용은 지역·이념·계층에 좌우되던 전통적인 투표 지형에 젠더까지 새롭게 추가하며 갈등구조를 심화시켰다. 두 거대 정당이 20대를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달성하는 데 이용하면서 ‘을들의 싸움’을 계속 부추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