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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량 많고 세계서 통하는 달러, 아직 적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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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 달러는 어떻게 기축통화가 됐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대선 토론에서 한국이 기축통화국이 될 수 있는지, 또한 기축통화와 재정 위기의 관계는 무엇인지 논란이 됐다. 기축통화는 국제적인 금융결제의 기본 단위와 핵심 수단인 통화를 의미하는데, 현재는 사실상 미국 달러가 유일하다. 미 달러가 이러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된 출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금융 질서를 형성한 브레튼우즈(Bretton Woods) 체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1944년 브레튼우즈에 모인 44개 연합국 대표들은 전쟁 승리를 주도하던 미국의 의지에 따라 달러를 기축(基軸)으로 ‘조정 가능한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는데, 여기에서 달러의 공식적인 기축통화 개념이 시작한다. 핵심 구조는 금 1온스(28.35g)를 미화 35달러로 고정하고 미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국가의 통화는 미 달러에 대한 상대가치로 자신의 화폐가치, 즉 환율을 정하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국제 금융거래의 기축은 달러인 구조로 다른 국가의 중앙은행은 미 달러를 핵심 외환 자산으로 보유하게 된다.

1944년부터 국제결제 핵심 역할
대체할 국제통화 존재하지 않아
위안화·유로화 등 신뢰성 떨어져
한국은 특별인출권 진입이 우선

흔들리지 않는 미 달러 파워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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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심으로 국제금융 질서를 형성하고 사실상 독점적인 권한을 달러에 부여하는 이러한 체제에 대해 당시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고, 특히 영국은 상당한 이견이 있었다. 영국 대표는 저명 경제학자였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Keynes)였다. 그는 특정 국가의 화폐를 기축통화로 하는 것보다 방코르(Bancor)라는 새로운 통화를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1971년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달러를 금과 일정 비율로 교환하던 금 태환(兌換)을 정지한다고 발표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한다. 이를 계기로 달러의 공식 기축통화 지위는 폐기된다. 하지만 국제적인 금융결제의 기본 단위와 핵심 수단이라는 사실상의 기축통화 지위는 여전히 미 달러가 유일하다. 그것은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해 국제 결제수단으로 달러를 중심으로 이미 형성된 기존 금융 네트워크가 존재하고 이를 신뢰할 수준에서 대체할 수단으로의 국제통화가 실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축통화의 역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기축통화의 역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미국 국무부 차관을 지낸 하버드대 경제학과의 리처드 쿠퍼 교수가 일찍이 이 측면을 지적한 바 있다. 국제금융 거래와 가치저장에 사용되는 기축통화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국제적으로 통용 가능한 화폐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유로화·파운드화·엔화 정도인데, 이들 역시 달러를 대체할 수단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단순히 해외여행에 사용하거나 무역 결제에 일부 사용하는 것이 기축통화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축통화로서 핵심적인 요소는 국제 금융결제와 가치저장에 사용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유동성과 신뢰성 모두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많은 물량으로 풍부한 유동성이 존재해서 거래에 불편이 없고 가치저장에 문제가 없으면서도 물량 증가가 가격 하락을 의미하지는 않아 장기적으로 자산 가치가 낮아질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국제자산이 존재하면서 그 자산의 기본 단위 화폐여야 기축통화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미 재무부 발행 국채가 대표적인 수단이다.

유동성·신뢰성 모두 확보해야

달러의 대안으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유로화인데, 달러로 표시된 미 재무부 국채와 달리 유로화 표시 국채는 발행국가에 따라 실제 여러 종류가 존재해 하나의 국제자산으로 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유동성 확보도 어렵다. 같은 유로화로 발행되더라도 이탈리아·그리스, 그리고 독일에서 발행된 국채를 하나의 채권으로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따라서 국제금융거래와 가치저장이 가능한 수준의 국채 물량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물량이 많은 대표적인 국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 184%(2020년)에 달하는 이탈리아 정부 발행 국채인데, 이는 가치 안정성을 지니는 자산으로 보기 어렵다. 독일 정부에서 발행한 국채는 비교적 신뢰받아 가치 안정성은 있지만, 국채발행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독일의 특성상 국제금융거래를 위한 대규모 물량을 확보하기 어렵다.

국제적 통화 이용 인덱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국제적 통화 이용 인덱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영국 파운드화는 파운드화 표시 국채 물량이 국제금융거래를 위한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할 정도가 되기 어렵고, 영국의 경제 규모와 안정성 역시 독일을 포함하는 유로 체제에 비해서는 장기적으로 파운드화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 정도가 되기 어렵다. 일본의 경우는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270%(2020년)에 달할 정도로 일본 국채의 물량이 상당해 유동성이 존재하며 비교적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양호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 국채는 자국 금융기관을 비롯해 국내 보유물이어서 해외 거래량은 많지 않다. 해외에서 대거 유통되더라고 일본 경제에 대한 신뢰가 유지될지 확신하기 어렵다.

재정 취약하면 기축통화 불가능

물론 최근 중국의 경제발전과 함께 위안화의 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현재 위안화는 기본적으로 외환거래가 사실상 통제되고 있기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로 보기 어렵다. 외환시장에서 유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통화를 대규모 국제금융결제에 사용하거나 장기적인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으로 볼 수는 없다.

결국, 상당한 양의 국채를 발행해 이를 국제금융시장에서 매각하더라도 해당 발행국가의 신인도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국가에서 발행하는 통화이면서 자유롭게 외환거래가 가능한 화폐여야 기축통화로서 역할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결국 지금은 미국 달러밖에 없는 셈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유로화·파운드화·엔화처럼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 유통되는 화폐라 하더라도 이러한 관점에서 기축통화라 부르기 어렵다. 또한, 기축통화까지는 아니지만,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통화로서 유로화를 쓰고 있더라도 재정 건전성이 악화한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에서 모두 위기가 발생하며 유럽이 재정·외환위기에 휘말린 바와 같이,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특별인출권(SDR)과 기축통화의 차이

최근 우리 원화가 기축통화가 될 수 있는지 논란과 함께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개념이 화제가 되었다. 특별인출권은 IMF 가맹국에 국제수지 악화 상황이 벌어질 때 특별인출권에 대한 교환비율에 따라 외화를 인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 특별인출권을 산출할 때 사용하는 바스켓(basket) 안에 원화가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 원화가 기축통화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면서 발생한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축통화와 특별인출권은 개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특별인출권은 1969년 IMF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국제 보유자산 개념이지만, 통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제통화기금에 대한 지분이나 채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특별인출권을 형성하는 통화에 대해 교환될 수 있는 보유자산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IMF는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 통용되는 5개 통화를 특별인출권 가치 산출 가중치 계산에 활용하고 있다. 현재는 미 달러(41.73%), 유로(30.93%), 위안(10.92%), 엔(8.33%), 파운드(8.09%)의 가중치로 산출한다. 이 산출 가중치 산정에 원화가 포함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기축통화 개념으로 확대 해석된 것이다.

IMF가 외화를 인출할 수 있는 권리를 산출할 때 사용하는 가중치 산정에 포함되는 것과 기축통화가 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실제로 특별인출권 가치 산정에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수출이고,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적으로 주요 수출국인 한국이 가중치 산출에 편입될 수는 있으나 그것이 기축통화를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의 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하기 이전에 한국은 복수 통화바스켓 설정을 통해 무역량이 많은 상대 국가의 상황과 국내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환율을 설정하는 제도를 채택했는데, 이때 중요한 기준이 상대적인 무역 비중이었고 특별인출권의 가치 산정을 위한 가중치도 이러한 개념에서 무역을 주요 고려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따라서 특별인출권 산출 가중치에 포함된다면 기축통화보다는 국제적으로 무역 비중에서 인정받는 국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별인출권에 포함되는 것이 우리 경제를 재정 건전성 문제에서 자유롭게 하거나 위기 가능성을 줄인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