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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소모적인 여가부 폐지 논쟁 지양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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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및 부위원장 인선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윤 당선인은 기자 질문에 답하면서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하지 않았느냐”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다시 확인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및 부위원장 인선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윤 당선인은 기자 질문에 답하면서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하지 않았느냐”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다시 확인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젠더 갈등 치유도 새 정부가 할 일

당선인, 야당 후보 시절과는 달라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그제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하지 않았느냐”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재확인했다. 선거판 핵심 공약이 다시 등장하자 더불어민주당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상민 의원은 “여가부의 역사적 소명, 여전히 필요하고 더욱 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조직법은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여가부 폐지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여성부로 신설돼 2005년 지금 명칭으로 바뀌었지만 타 부처와 연계된 업무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부처 고유의 영역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2008년 이명박 당선인 인수위에서도 통일부와 함께 폐지 대상으로 거론됐으나 업무를 조정하는 선에 그쳤다.

현 정부에선 양성평등이 아니라 오히려 남녀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 소속 최고권력층의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대신 가해자인 집권여당 측을 옹호하는 듯한 반여성적인 태도로 도마 위에 올랐다. 여당을 위해 대선 공약을 만든다는 구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여당(與黨)가족부’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큼 존폐 위기를 자초한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물론 여가부의 다양한 기능은 무시할 수 없다. 여성의 권익 증진 등 여성 정책을 기획하는 일 외에도 청소년 정책, 위기 청소년 보호·지원, 가족·다문화가족 정책, 성범죄 예방, 피해자 보호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갑자기 부처 폐지 얘기가 나오니 한부모가정, 학교 밖 청소년 등이 불안해할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인 1월 초 “더 이상 남녀를 나누는 것이 아닌 아동, 가족, 인구 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의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여가부 기능이 재조정될지언정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원희룡 인수위 기획위원장도 어제 여가부 기능과 역할이 없어진다는 건 “괴담”이라고 못 박았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부처 이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유연한 입장이 있는 만큼 여야가 토론해 충분히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문제다.

윤 당선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7자만 달랑 SNS에 올렸던 선거운동이 남녀 갈라치기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그래서다. 선거 때 불거진 젠더 갈등을 책임지고 수습하는 건 새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선거는 끝났다. 당선인은 이제 공격과 선명성 투쟁이 중요하던 야당 대선후보가 아니다. 선거 유세 같은 발언으로 소모적 논쟁을 부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남녀 갈라치기 전략으로 상처받은 20대 여성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좀 더 세심하고 폭넓은 정치적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당선인이 숱하게 강조하는 국민통합의 길은 그래야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