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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바시 "힘의 논리 시대 도래, 한·일 협력 미룰 여유 없어" [당선인에게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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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의 대표적인 국제문제 전문가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77·전 아사히신문 주필) 아시아·퍼시픽이니셔티브(API) 이사장은 "국제질서가 격변하는 가운데 한국에 일본과의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가겠다고 선언한 정권이 들어선 것은 큰 기회고 (일본도) 그걸 잡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윤석열 당선인에게 바란다]

지난 11일 줌(Zoom)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한·일, 한·미·일 협력을 통해 중국의 현상 변경 의지에 맞서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면서 "한국과 일본이 협력함으로써 얻는 잠재적 이익을 그동안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럴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후나바시 요이치 아시아·퍼시픽이니셔티브(API) 이사장. [사진 아시아·퍼시픽이니셔티브]

후나바시 요이치 아시아·퍼시픽이니셔티브(API) 이사장. [사진 아시아·퍼시픽이니셔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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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차기 대통령이 탄생했다. 선거 결과를 어떻게 보나.
“60대 이상 세대가 윤석열 당선인에게 많은 표를 던진 것을 보며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최근 우크라이나 정세에서 안보 위기를 느낀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절반이나 되는 이들이 다른 선택을 했고, 국회 역시 민주당이 다수라 앞으로의 국가 운영에 어려움도 많을 것이라 본다.” 
윤 당선인이 내세운 대일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미·일 관계를 중시하겠다고 명확히 언급했다는 데 기대감이 크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부도 윤 당선인을 ‘함께 정책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로 여기는 분위기다. 당선인은 급격히 변화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국가의 안전 보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했으면 한다. 한국과 일본이 지금처럼 대립 상태에 있는 것은 너무 손실이 크다.”  
한국의 새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그동안 한국과 일본에 번영을 가져왔던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현상 변경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움직임에 우리는 힘의 균형, 질서의 정당성으로 맞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미·일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P)에 가입하지 않으면 안 되고,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에도 어떤 형식으로든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이 미·일과 밀착할 경우, 중국과 마찰 가능성이 있는데.
“중국뿐 아니라 북한도 고려해야 한다. 이번에 북한이 2017년 이후 5년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성능시험을 한 것은 명백한 도전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고, 중국이 북한에 적어도 조력자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불필요한 대립을 최소화하면서 안전 보장에 있어서는 한·미·일이 힘을 합쳐 억지력을 강화해가야 한다.” 
일본이 ‘한국이 먼저 해결책을 갖고 오라’는 입장을 고수하면 관계 개선이 쉽지 않아 보인다.   
“‘공은 한국에 있다’는 말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이후 일관된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핵심 사안은 대법원 징용 판결에 이어진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다. 이 문제가 1965년 한일 기본조약으로 해결됐다는 일본의 입장은 바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적 대처에 있어 기시다 정부는 훨씬 유연한 자세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해야만 한다.”  
한·일 정상회담이 언제 다시 열릴까.  
“정상 간 셔틀 외교는 윤 당선인이 먼저 제안을 했기 때문에 일본 정부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양국이 현재 왜 이런 관계에 오게 되었는지 검증하고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결국 ‘톱다운(Top-down)’과 ‘바텀업(bottom-up)’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윤 당선인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사실 일본의 전후 외교사 전체를 보더라도 이처럼 마음을 파고드는, 영감을 주는 선언은 없다. 그 이상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재가 그때와 다른 건 동아시아에서 ‘중국 리스크’가 매우 커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제는 한·일을 둘러싼 지정학적 상황을 유심히 살피면서 양국이 어떻게 협력할지 현실적인 측면에서 다시 짜야 한다.”
한국에선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일본이 군사력 강화 움직임이 보이는 데 우려가 크다.
“아베 전 총리가 꺼낸 미국과의 ‘핵 공유’ 논의는 더는 진전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기시다 총리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국회에서 선언했으니 적어도 이 정권에선 봉인될 것이다.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는 실행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는 일본만의 의지가 아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일본에 ‘창의 역할은 우리가 할 테니 일본은 방패 역할만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제 미·일동맹도 일본에 독립적인 공격력을 갖게 해 이를 기반으로 상호 의존하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어떻게 전망하나.
“진행 중이라 쉽게 예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전쟁 이후 러시아를 세계 질서의 틀 안에 어떻게 넣을지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됐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010년대 중국으로부터 대국 논리,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시대가 시작됐고 러시아의 도발로 그것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극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이 변화 속에서 한·일 관계 역시 리얼리즘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강한 리얼리즘적 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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