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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야, 서해가 싫어졌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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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면

제20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달 19일 경남 거제시.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유세 도중 대구를 번쩍 들어 올렸다. 거제 지역 청년 어부인 강모씨가 선물한 말린 대구였다. 윤 당선인은 “어민의 땀과 자연의 지혜가 담긴 귀중한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 대구는 거제를 상징하는 물고기(시어·市魚)다. 그만큼 대구는 거제 인근 지역에서는 중요한 생선으로 통한다.

경남 거제시 외포항에서 어민들이 대구를 분류하고 있다. 남해에서는 대구가 많이 잡힌다. 대구는 세계 역사를 바꾼 생선으로 꼽힌다. [중앙포토]

경남 거제시 외포항에서 어민들이 대구를 분류하고 있다. 남해에서는 대구가 많이 잡힌다. 대구는 세계 역사를 바꾼 생선으로 꼽힌다. [중앙포토]

대구는 명태와 특수 관계다. 명태는 대구의 일종인 왕눈폴락대구로, 서로 사촌쯤 되는 어종이다. 대구는 입이 커서 대구(大口)라는 이름이 붙었고, 머리가 커서 대두어(大頭魚)라고도 한다. 대구와 명태는 한때 국내 대표적인 어족자원이기도 했다.

대구는 남해 어민들에게 꽤 괜찮은 소득원으로 자리 잡았다. 약 40년간 복원 작업을 꾸준히 해온 덕분이다. 반면 서해에서는 남해와 달리 복원 자체가 쉽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 충남도가 하던 대구 수정란 방류 사업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14일 경남도 수산자원연구소 등에 따르면 대구는 1980~1990년대만 해도 남해에서 어획량이 급감했다. 1년에 10마리도 잡히지 않을 때도 있어 마리당 20만~30만 원을 호가할 정도로 가격이 치솟았다.

경남도 수산자원연구소는 1981년부터 수정란과 1㎝ 크기의 치어(稚魚)를 통영·거제·고성·남해·진해 등 남해에서 키웠다. 지금까지 방류한 수정란은 978억개, 치어는 2억6100만 마리 정도 된다. 올해도 지난 1월 한 달간 수정란 40억개와 치어 1800만여 마리를 바다에 풀어 놓았다. ‘육식성 대식가’로 알려진 대구는 몸길이 40~110㎝, 최대 20㎏까지 성장한다.

충남도 수산자원연구소 직원들이 대구에서 알을 짜내고 있다. 이 알은 수정한 다음 방류 했다. [사진 충남도 수산자원연구소]

충남도 수산자원연구소 직원들이 대구에서 알을 짜내고 있다. 이 알은 수정한 다음 방류 했다. [사진 충남도 수산자원연구소]

장기적인 노력 덕분에 남해 대구 어획량은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통영수협과 거제수협 등에 따르면 대구 위판량은 2019년 4만8660t에서 2020년 7만1513t, 지난해 7만5455t으로 늘었다. 경남도 김제홍 해양수산국장은 “지난 1월 거제 외포를 중심으로 진해만에서 하루 3000여 마리가 잡힐 정도로 어민에게 중요한 소득원이 됐다”고 말했다.

반면 서해에서 대구 복원작업은 성과가 신통치 않다. 충남도 수산자원연구소는 2019년 충남 최서단 격렬비열도 인근 해역에 대구 수정란 600만개(립)를 방류했다. 수산자원연구소는 수정란이 부화한 뒤 3년이 지나면 포획 가능한 크기(60㎝)로 성장해 겨울철 서해 어민 소득원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수정란에서 성장한 대구를 포획했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충남도 수산자원연구소 측은 “수정란 방류 지점이 육지에서 너무 먼 55㎞ 정도 떨어져 있어 복원이 쉽지 않은 환경”이라며 “향후 수정란 추가 방류 계획도 없다”고 했다.

보령수협 위판 실적을 기준으로 할 때 충남도내 대구 생산량은 2007년 8478t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5년 2473t까지 떨어졌다. 2017년 3645t으로 회복되긴 했지만 2020년 1123t으로 다시 감소했다. 충남도 수산자원연구소 관계자는 “남획과 기후변화에 따른 먹이 부족 등으로 어획량이 떨어진 것 같다”며 “서해상에 자주 출몰하는 중국어선의 불법 조업도 대구가 갈수록 줄고 있는 원인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구는 지방이 적어서 비린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잘 먹는 생선이다. 해물탕 중에는 담백하고 맑게 끓인 대구백숙과 얼큰한 대구 매운탕이 가장 인기가 좋다. 명태나 마찬가지로 버리는 부분 없이 아가미·알·눈·껍질까지 모든 음식에 활용된다.

대구를 말린 대구포는 오래전부터 만들어 온 가공식품으로 소금에 절였다가 등을 가른 뒤 펴서 말린 것으로 잔칫상이나 제사상에 올린다. 예전에는 산후에 젖이 부족한 산모들이 영양 보충을 겸하여 먹었다. 윤석열 당선인이 선거 유세중 받은 말린 대구는 거제도 등 남해 어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한편 대구는 미국과 유럽에서 주요 식량이자 부를 쌓는 수단이었다. 보스턴에 있는 매사추세츠주 의사당 건물 입구에 나무로 조각한 대구가 걸려 있을 정도로 미국을 일으킨 생선으로도 꼽힌다. 미국인들 사이에선 “보스턴은 대구 때문에 탄생한 도시”라는 말이 있다.

바이킹이 콜럼버스보다 훨씬 더 먼저 뉴잉글랜드(아메리카)에 도착한 데도 대구의 역할이 컸다.  먼 거리를 항해하는 동안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말린 대구를 주식으로 삼아서다. 바스크족은 자신들만 아는 북아메리카 해안의 대구 황금어장에서 엄청난 수의 대구를 낚아 올렸다.

1620년 영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도착한 사람들은 대구가 풍부한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정착했다. 1602년 영국의 항해가 바솔로뮤고스널드가 근처 해안에 있는 갈고리 모양의 곶에 케이프 코드(대구 곶)라는 이름을 붙이고 대구가 ‘들끓는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당시 신대륙은 척박해 먹을거리가 부족했지만, 이주민들은 대구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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