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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잔디의 일리(1·2)있는 선택

"피해호소인" 야만적 2차가해…이런 민주당 찍을 수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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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김잔디 공무원. 박원순 성폭력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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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새 기획 칼럼 시리즈 '나는 고발한다. J'Accuse...!'가 대선 이후 드러난 다양한 표심읽기에 도움이 되는 '나는 고발한다 번외편-일리(1·2) 있는 선택'을 14일부터 일주일 동안 매일 연재합니다.
1번이든 2번이든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무지하다고 비판하거나 악마화하는 대신 그 선택의 이유를 들어보며 상대에 대한 이해를 높여보자는 취지입니다. 20대 여성의 속내를 쓴 권나영씨 글에 이어 오늘은 그와 비슷한 또래이자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인 김잔디(가명)씨가 1번을 찍을 수 없었던 이유를 썼습니다. 더 많은 관련 칼럼은 중앙일보 사이트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를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오른쪽) 사진을 배경으로 김잔디씨의 책 사진을 합성했다. 그래픽=전유진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를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오른쪽) 사진을 배경으로 김잔디씨의 책 사진을 합성했다. 그래픽=전유진

며칠 전 저녁 구내식당에서 만난 동료에게 왜 야근을 하느냐고 물으니 "내일 휴가라 일을 다 끝내야 한다"고 했다. 어디 좋은 데로 봄나들이라도 가는지 싶어 물었더니 임신 중인 아내의 정기검진 때문이란다. 아내는 ‘태아 검진시간’ 제도를 사용할 수 있지만 부모로서 똑같은 책임이 있는 남편에겐 적용되지 않아 연차를 써야 하는데, 그는 이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상했다. 절대로 당연한 일이 아니다. 태아 검진이라는 부부의 '동일한 목적'을 위한 일인데 한 사람은 제도의 보장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제외되는 상황이 내 눈엔 결코 당연해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제도의 불균형은 태아 안전에 대한 보호 의무가 여자(엄마)에게만 존재한다는 식의 차별적 가치관을 담고 있는 거 같아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임신한 아내와 태중 아이를 위하는 마음으로 같이 산부인과 검진에 가는 예비 아빠를 우리 사회가 역차별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이 같은 일상적 차별을 묵인하면서 우리는 어떤 특별한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바라는 것일까.

'여성' 이름 단 부처 필요한가  

지금 여성가족부 존폐를 놓고 시끄럽다. 없애냐 마느냐 하는 표피적 문제보다 난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 꼭 정부 조직에 ‘여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처가 있어야만 권리를 보장받는 형식적인 양성평등만이 필요한 것이냐는 물음말이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난 이보다는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실질적인 양성평등을 바란다고 답하고 싶다.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여가부가 굳건히 존재했던 지난 5년의 더불어민주당 정권에서 벌어졌던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거다.
모두가 기억하듯 민주당은 자기 당 소속 권력자들의 잇따른 권력형 성범죄의 피해자들을 피해자라 부르지조차 않았다. 민주당의 성범죄로 빈자리가 된 주요 지역 지자체장들을 다시 뽑기 위한 보궐선거를 위해 들어간 비용은 1000억원에 육박할 만큼 컸다. 막대한 세금을 낭비하고도 일말의 양심조차 없는지 민주당은 당헌까지 바꿔가며 후보를 냈다. 이런 사실을 애써 축소하려는 의도인지 문 정부의 여가부 장관은 "국민의 성인지 집단학습 기회"라고 말했다. 이 정도 인식이니 민주당 남녀 의원들과 그 지지자들이 피해자를 향해 야만적인 2차 가해를 하는 걸 뻔히 보고도 단 한마디의 일침도 놓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여가부의 행적 

이정옥 당시 여가부 장관은 민주당 성폭력 사건으로 치러진 재보선에 대해 "성인지 집단학습 기회"라고 말해 반발을 불러왔다. [중앙포토]

이정옥 당시 여가부 장관은 민주당 성폭력 사건으로 치러진 재보선에 대해 "성인지 집단학습 기회"라고 말해 반발을 불러왔다. [중앙포토]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목격한 국민의 분노가 차오르고, 야당은 이를 반영해 이번 대선 국면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을 내놓았다. 지난 5년 동안 너무도 명백한 잘못을 하고도 제대로 바로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더니 폐지 공약이 나오고 나서야 ‘여성과 남성을 편 가르고, 혐오적인 선동’이라고 여가부 안팎, 여성계가 흥분한다. 그리고 적잖은 2030 여성들이 여기에 동조한다. 하지만 나는 여가부 폐지 공약의 이행 여부와 무관하게 공약을 내건 것만으로도 국민의 삶을 직접 변화시키는 중대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나의 대선 한 표도 그런 기준으로 던졌다. 절박한 심정이었다.
지난 2020년 4·15 총선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무려 180석의 의석을 차지했고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은 63%를 기록했다. 180과 63. 이 숫자가 가리키는 엄청난 위압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해 7월 무소불위의 권력을 상대로 법적 절차를 제기했다. 서울을 쥐고 흔든 유력 정치인의 권력형 성범죄에 맞서 법 앞에 평등한 인간으로 마주 서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바랐던 법 앞의 평등은 가해자의 극단적 선택으로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힘에 압도돼 나는 매일매일 더 위축되었다. 그의 부재 후 더욱 또렷이 체감한 180과 63의 위력, 기호 1번은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여성 권력자들의 2차 가해 

지난 재보선 당시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캠프 공동선대본부장직을 맡았던 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피해호소인' 발언 후폭풍으로 사퇴했다. 그는 여성계 대모로 정치권에 입문했으나 정작 피소 사실을 가해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에 먼저 알리고 여성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앞장섰다. [연합뉴스]

지난 재보선 당시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캠프 공동선대본부장직을 맡았던 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피해호소인' 발언 후폭풍으로 사퇴했다. 그는 여성계 대모로 정치권에 입문했으나 정작 피소 사실을 가해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에 먼저 알리고 여성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앞장섰다. [연합뉴스]

선거가 끝나고 권력이 바뀌었다. 차기 정부에서는 지난 민주당 정부와는 달리 2차 피해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이뤄졌으면 한다. 여성폭력방지 기본법 제18조에선 국가와 지자체의 2차 피해 방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나, 직접 겪어보니 구체적인 보호 내용과 절차 등이 미흡하다. 특히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의 2차 가해는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막아야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소모적 싸움을 피해자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곧 출범할 새 정부는 ‘권력형 성범죄 척결’을 약속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로 규정한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라는 교육 영상을 배포해 논란을 일으켰다. 새 정부는 이런 식의 성별 갈등을 조장하는 대신 ‘위계’와 ‘모호한 공사 구분’이 잠재적 가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을 하고 관련 정책을 만들었으면 한다. 권력은 언제나 견제와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또 위계에 눌려 당연하다고 여긴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여야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미국의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었던 루스 긴즈버그의 차별과의 싸움을 그린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On the Basis of Sex)'에서 루스는 가족의 보육자 자격을 여성으로 지정한 조세법을 근거로 노모를 부양한 독신 남성에게 간병인 세금공제 혜택을 주지 않았던 조세 재판소의 판결에 대한 항소 재판 변론 과정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나라를 바꾸어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느 법정의 허락 없이도 변화는 이미 시작됐으니까요. 이 나라가 바뀔 권리를 지켜달라는 말입니다.…이런 법은 여성을 돕기는커녕 새장에 가두고 있습니다. "

여성을 새장에 가두지 마라 

우리 헌법에는 특별히 남자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여자라는 단어는 두 번(제32조, 제34조) 강조된다. 남성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현행 법률은 21개지만, 여성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법률은 146개로 176번이나 언급된다. 그만큼 여성을 따로 새장에 가두고 있다.
여성에게 우리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남녀의 생물학적인 차이에 더해 유교문화권이라는 특수성이 단단한 지지대가 된다. 학창 시절 별다른 남녀 차별을 겪지 않았던 사람도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국면에서 운동장의 기울기가 점점 가팔라지는 것을 실감한다. 그러나 운동장이 기울어졌다고 한쪽에만 유리한 규칙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그 기울어진 대지 위에 콘크리트를 붓고 운동장 자체를 평지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처럼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는 객체’로서의 여성은 사회의 불합리함에 맞서 싸울 수 없다.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는 제도적 이분법으로는 남녀가 함께 행복해질 수 없다. 지난 대선 결과인 48.5와 47.8이라는 숫자를 ‘우리 사회의 끔찍한 분열 양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마중물’로 바라보고 싶다. 남녀의 구별이 아닌 생애주기별로 직면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지 새 정부는 국민과 활발한 소통을 하며 해결해나갔으면 한다.
헌법정신을 강조하는 차기 정부가 ^여성의 권익 보호에 대한 국가 의무를 명시한 헌법과 ^새 정부의 약속인 공정과 상식, 그리고 ^평등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조화롭게 구현해 나갈지 궁금하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공정과 상식의 그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