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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신과 봉합 두마리 토끼 쫓는 윤호중 비대위…“돌려막기” 비토 확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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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다시 기어서라도 국민께 다가서겠다.”
3·9 대선 패배 이후 꾸려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우여곡절 끝에 14일 공식 출범했다.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원내대표)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첫 회의에서 “비대위는 국민의 과녁이 되겠다. 고치고 바꾸고 비판받을 모든 화살을 쏘아 주시기 바란다”며 “처절한 자기성찰과 반성의 토대 위에서 뿌리부터 모든 것을 다 바꾸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n번방 사건’ 폭로자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과 6명의 비대위원도 반성론을 꺼냈다. “대선 결과만이 아니라 지난 5년 간 국민들에게 ‘내로남불’이라고 불린 행태를 더 크게 기억해야 한다”(박 위원장), “반성과 사과가 진정성이 있으려면 진짜 바뀌어야 한다”(채이배 비대위원)는 등이었다. 비대위원들은 회의 시작에 앞서 반성의 의미로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사죄도 했다.

‘윤호중 비대위’ 비토 확산…“국민들 ‘정신 못 차렸다’ 볼 것”

비대위가 첫걸음을 뗐지만 당 내에선 ‘윤호중 비대위’를 둘러싼 파열음이 여전하다. 노웅래 민주연구원장은 이날 KBS라디오에서 “대선 패배의 책임자인 원내대표가 다른 사람은 총사퇴했는데 혼자 남아서 ‘돌려막기’를 했다”며 “부동산 정책이나, 위성정당을 만들 때 앞장섰던 사람이 (비대위원장을) 하면 ‘민주당이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라고 국민들이 생각할 것”이라며 윤 위원장을 겨냥했다.

민주당 선대위 여성위원장을 지낸 정춘숙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대선 패배에 책임이 있는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맡는 것은 극히 비상식적”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당 보좌진협의회도 입장문에서 “비대위가 과연 제대로 쇄신을 이끌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며 반기를 들었다.

'n번방' 사건을 처음 공론화한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재명 후보 캠프 여성위 부위원장)이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미래당사에서 성범죄 추적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n번방' 사건을 처음 공론화한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재명 후보 캠프 여성위 부위원장)이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미래당사에서 성범죄 추적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입문 47일차’로 주목받고 있는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도 내부에선 논란이다. “정치경험이 부족한 분이 172석 정당을 이끌 수 있을지 의문”(비문 중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의식한 이벤트성 인선”(서울권 초선)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다.

집단적 반발 조짐도 있다. 초선 그룹인 ‘더민초’ 임원진은 15일 대선 패인 평가를 위한 비공개회의를 열기로 했다. 친문(친문재인) 모임 ‘민주주의4.0 연구원’도 18~19일 워크숍을 통해 당의 장래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 양쪽에 속해 있는 친문 초선 의원은 “‘윤호중 비대위’ 체제가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대세라면 집단적 거부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호중 비대위’에 대한 박한 평가는 이들 앞에 놓인 숙제의 크기와도 관계가 있다. 계획대로라면 석 달도 채 남지 않은 6·1 지방선거 선방의 비책을 내놔야 한다. 대선 패배 후 첫 당 지지율 조사(리얼미터·미디어헤럴드, 10~11일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35.6%로 국민의힘(43.2%)에 크게 밀리자 위기감은 한층 높아졌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서울권 중진 의원은 “단순한 외부인사 영입과 반성 메시지만으로는 윤석열 정부 출범 3주 후에 열리는 지방선거를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대선 0.73%포인트 차이 패배를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며 위안 거리로 삼으면 지방선거에서 호남을 제외한 모든 광역자치단체장 자리 대부분을 국민의힘에 내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낙연 탓” vs “이재명 잘못” 계파갈등 격화 조짐 

‘윤호중 비대위’에 대한 불신은 계파 갈등과 맞물려 휘발성을 높이고 있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를 지지하는 일부 당원은 이낙연 전 총괄선대위원장 경선 캠프 대변인을 지낸 배재정 전 의원이 비대위원에 임명되자 온라인 당원게시판에 “이 전 지사를 괴롭힌 배 전 의원은 사퇴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러자 이 전 위원장 지지자들은 “이 전 위원장이 만약 대선 후보가 됐다면 민주당이 패배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맞받아치는 중이다.

또 일부 강성 이 전 지사 지지자들은 이낙연계 의원들에게 “대선 패배는 이낙연 전 위원장 탓”이라며 문자폭탄을 보냈다. 그러자 이 전 위원장 경선캠프 비서실장을 지낸 이병훈 의원은 지난 12일 의원들이 모인 채팅방에 “이 전 위원장은 전국을 돌며 65차례 이재명 후보 유세를 했다. 호남에도 정성을 쏟아 이 후보가 85%가량의 지지도 얻는 데도 기여했다”며 반론을 펴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오른쪽)가 지난 10일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이낙연 전 총괄선대위원장과 악수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오른쪽)가 지난 10일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이낙연 전 총괄선대위원장과 악수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의 한 수도권 재선의원은 현 상황에 대해 “당내 의견 수렴없이 비대위 구성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면서 파열음이 커진 데다 케케묵은 계파갈등까지 뒤엉키면서 쇄신 방향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오히려 지연될 위험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폴리컴 소속 박동원 정치컨설턴트는 “윤호중 비대위 앞엔 전면적 계파 갈등으로 번지기 전에 당내 균열을 봉합하면서도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과제들에선 분명한 쇄신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는 이중적 과제가 놓여 있다”며 “표차(0.73%포인트)만큼의 변하면 족하다는 판단은 지방선거 필패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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