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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일상 생활에서 발견하는 자연의 조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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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2021년이 참으로 다사다난했다고 생각했었는데 2022년은 이미 그보다 더한 격동기가 아닌가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이 말해주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도피적 행각 같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실용적 함의가 있기도 하다.

250년 전 영국의 과학자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그의 직업은 목사였고 또한 시골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교육자였다. 과학은 취미로 시작했고 처음에는 전기, 그 후에 공기에 대해 연구를 하면서 유명해졌다. 공기를 과학적 연구 주제로 삼았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공기가 없으면 삶이란 없다. 단 1분만 숨을 못 쉬어도 인체의 기능은 마비되기 시작한다. 그 중요한 공기에 대해서 우리는 평소에는 별 생각 없이 살아간다. (아마 물고기들도 물에 대한 생각을 항상 하지는 않으리라.) 지금은 대학의 법학 교수가 된 조카가 어렸을 때 필자에게 “삼촌, 공기가 뭐야?”하고 물어보았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이 “아, 공기 좋다!” 하는 말을 듣고 의아해했으리라. 그걸 어떻게 설명하지 고민하다가 부엌에 있던 비닐봉지를 풍선처럼 만들어서 손으로 쥐어 보며 그 안에 들어있는 공기의 압력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공기란 과연 뭘까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실 참 신기하다는 것을 곧 느끼게 된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공기
일상생활의 과학자 프리스틀리
호흡과 광합성의 상호부조 밝혀
삶을 개선하는 과학·정치·종교

18세기 후반에 가서야 화학자들은 역사상 최초로 공기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기체에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도 그저 어렴풋하게 알았고, “공기”(air)는 모든 기체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프리스틀리의 기체 연구는 일상적인 일에서 시작되었다. 동네 양조장을 구경갔다가 맥주가 발효되면서 나오는 거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대어로 이산화탄소라 부르는 그 기체를 물에 녹이면 상쾌한 탄산수가 된다는 것을 발견한 프리스틀리는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콜라, 사이다의 전신인 인공 탄산음료를 발명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기체의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연구하는 데 매료되기 시작하였으며, 여러 가지 종류의 새로운 기체를 발견하였다.

프리스틀리가 연구하여 알아낸 사실 중 하나는 지구상의 대기가 한가지 물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산소와 질소가 섞여 있고, 그 외에 이산화탄소 등도 소량 들어있다. 또 프리스틀리는 순수한 산소를 화학반응을 통해 처음 만들었고, 그 산소가 호흡에 좋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밀폐된 공간에 쥐를 넣어놓으면 일정한 시간 후 질식사한다. 그런데 그 공간을 보통 공기 대신 산소로 채웠을 때 쥐가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실험 후 프리스틀리는 용기를 내어 자기도 그 산소를 흡입해 보았다. 가슴이 가벼워지는 상쾌한 느낌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호흡기 질환자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것을 몰랐다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엄청나게 더 많았을 것이다. 대단한 실험 장비도 없이 집에서 연구하여 이러한 발견을 했을 때 느꼈을 프리스틀리의 기쁨을 상상해보라.

그런데 프리스틀리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광합성의 발견이었다. 광합성이란 나중에 생긴 전문용어이고, 프리스틀리가 알아낸 것은 동물이 호흡함으로써 질이 나빠진 공기를 식물은 다시 좋게 환원시킨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쥐를 잡아서 실험하다 알아냈다. 쥐가 갇혀있는 공간에 살아있는 식물을 같이 넣으니 아주 오래 살더라는 것이다. 식물이 없다면 우리 동물들은 대기 중의 산소를 다 소모해 버리고 결국 모두 질식사할 것이다. 프리스틀리는 그러면 그렇지 신이 우리가 살 수 있도록 마련해 주셨다고 감탄했다. 또 그러한 자연의 조화는 동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동식물이 서로를 돕는 상호작용이다. 동물이 뱉어내는 이산화탄소를 식물은 영양소로 사용한다. 광합성이란 태양광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을 결합해 탄수화물을 만드는 화학반응이며, 그 부산물로 산소가 나온다. 동물은 또 그 탄수화물을 먹고 그것을 산소와 결합해 에너지를 뽑아낸다. 그 부산물로 이산화탄소가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동물의 호흡과 식물의 광합성이 맞물려 들어가는 기가 막힌 조화는 지구상 생태계의 중요한 기초이다.

이렇게 신이 내려주신 자연의 조화 속에 인간이 살아간다고 생각했다면 프리스틀리는 보수적인 인물이었으리라 생각될지 모른다. 사실은 그 정반대였다. 종교적으로도 영국의 국교 성공회를 따르지 않고 유일신교(Unitarianism) 교리를 정립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아 남녀를 막론하고 자주적 사고를 하도록 교육하였다.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을 지지하면서 그는 영국에서는 미움을 받게 되었고, 결국은 왕당파 폭도들이 그의 집과 실험실을 파괴하고 불태우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프리스틀리는 그러한 박해를 피하여 미국으로 이민했고, 거기서 외로이 생애를 마치었다. 그러나 그의 과학적 업적은 잊혀지지 않았으며, 손수 소박한 실험을 해 가며 인간과 자연과 신의 이치를 이해하고자 했던 그의 정신도 계속 살려 나갈 만한 가치가 있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