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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정호의 시시각각

우크라이나 아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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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주된 소득원이었던 고본질, 농번기 동안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농막을 짓고 양파, 수박, 파 등을 재배했다. '아리랑'은 그들을 달래준 고향의 음악이었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주된 소득원이었던 고본질, 농번기 동안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농막을 짓고 양파, 수박, 파 등을 재배했다. '아리랑'은 그들을 달래준 고향의 음악이었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1952년 우즈베키스탄 고도(古都) 사마르칸트에서 태어난 황뽈리나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산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난 부모님도 각기 다른 곳에 묻혔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쫓겨온 아버지는 스탈린 사후 거주지 제한이 철폐되면서 1962년 자나 깨나 그리워하던 연해주로 돌아가 그곳에서 숨졌다.

푸틴의 침공에 고통받는 고려인
160년 유랑길과 함께한 ‘아리랑’
‘피와 눈물의 강’ 하루빨리 멈춰야

 아버지가 타계하자 어머니와 동생들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로 건너갔다. 1979년 우크라이나에 농사지으러 간 동생들이 이듬해 어머니를 모셔갔다. 기름진 땅 우크라이나에서 새 삶을 일궜다. 어머니는 2004년 돌아가셨고, 동생 넷은 크림반도에 남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농학을 전공한 황씨는 타슈켄트 인근 고려인 마을에 정착했다.
 황씨는 때때로 부모님이 흥얼거리던 ‘아리랑’ 가락을 읊조린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라라/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1995년 방한한 그는 “나에게 ‘아리랑’은 고향이고, 한국이다”고 말한다.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이 낸 『중앙아시아 고려인 아리랑 연구』(2015)의 한 대목이다.
 고려인 사회에서 황씨 같은 사연은 드물지 않다. 이른바 이산(디아스포라) 경험은 그들을 묶는 공통분모다. 더욱이 우크나이나의 고려인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틈새에서 때론 가족 분열마저 일어난다. 1942년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1962년 우크라이나 키이우 종합기술대학에서 전기를 전공한 콘스탄틴 보리소비치의 경우가 그렇다.
 보리소비치는 현지 주류사회에 편입해 성공한 사례다. 결혼 이후 키이우에 뿌리를 내렸다. 두 딸은 결혼해 독일과 폴란드에 살고 있다. 그의 자녀들처럼 우크라이나의 젊은 고려인은 영국·체코·독일 등으로 이주하는 일이 많다. “우크라이나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다.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불거진 현상이다. 보리소비치는 러시아에 남은 형과 사이가 틀어졌다. 러시아의 형은 푸틴을 지지하지만 우크라니아의 동생은 자유를 잃을까 걱정한다. 고려인 버전의 동서 대립이다(고기영의 논문 ‘우크라이나의 국내외적인 갈등 상황이 고려인 개인들의 삶에 미친 영향’).
 중앙아시아 고려인은 왜 서쪽 멀리 우크라이나에까지 가야 했을까. 먹고살기 위해서다. 중앙아시아 박토(薄土)를 일군 고려인은 1956년 거주 이전이 허용되면서 러시아 각지로 새 터전을 찾아 나섰다. 이때 ‘고본질’이라는 계절농업이 주목받았다. 3월 봄철에 우크라이나 남부, 카스피해 주변 등에 임시 농막을 짓고 양파·수박·참외 등을 키웠다. 농번기가 끝나는 10월 가을에 집으로 돌아왔다.
 고본질은 가족 단위 소공동체로 운영됐다. 통상 40~100명으로 구성됐다. 고려인의 근면성 덕분에 수익성이 좋았다. 1985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으로 합법화하면서 더욱 활기를 띠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며 서서히 사라졌다. 반면에 중앙아시아 각국이 독립하면서 우크라이나 고려인과 러시아 고려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게 됐다.
 우크라이나 고려인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3만 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고려인도 또다시 피란 보따리를 싸고 있다. 1863년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연해주로 첫 이민을 떠난 이후 160년 가까이 이어진 ‘아리랑 행렬’이다. 우크라이나 비극이 미국(서방)과 러시아의 충돌을 넘어 우리들의 전쟁일 수 있는 이유다.
 진용선 아리랑연구소장은 요즘 마음이 무겁다. 우크라이나 고려인 지인들과의 연락이 끊겨서다. “고려인은 동서를 가로지르는 ‘더 크나큰 세계’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역사의 짐이 아니라 더불어 미래를 열어갈 역사의 교두보입니다.” 물론 이는 고려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광기 어린 푸틴의 전쟁에 숱한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다. ‘피와 눈물의 강’(프란치스코 교황)이 하루빨리 멈춰야 할 이유다. 한국의 적극적인 동참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