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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아깝게 패배…분해서 밤잠 설쳐요" 대선후 'PESD' 덮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직장인 김모(38)씨는 최근 치러진 제20대 대선 이후 며칠간 잠을 설쳤다고 한다. 2위 후보를 지지한 그는 “이재명 후보가 졌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힘들다. 간발의 차로 패배해서인지 더욱더 분하고 슬픈 마음에 잠들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0.7%로 엇갈린 아쉬움 때문일까. 김씨처럼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시민이 늘고 있다. 선거 후유증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겪고 있다는 이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이른바 ‘선거 후 스트레스 장애(PESD·Post Election Stress Disorder)’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0일 새벽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 들어서며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경록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0일 새벽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 들어서며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경록 기자

‘역대급 비호감 선거’에 도진 PESD

어감상 정신질환의 일종처럼 보이는 PESD는 정식 병명은 아니다. 미국에서 2017년에 등장한 신조어다.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나서 앓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에서 ‘정신적 외상(traumatic)’만 ‘선거(election)’로 바꾼 표현이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CNN 등 외신이 “새 정부에 대해 심리적으로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널리 퍼졌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오명이 씌워진 이번 한국 대선의 특성이 5년 전 미국의 대선 이후와 비슷한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상대 후보의 당선을 막아야 한다’는 부정적 사고가 투표의 주요 동기가 되면서 유권자들의 스트레스가 과거보다 더 커졌다는 것이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외래 진료 중 대선 이후 ‘화나서 잠을 못 자겠다’고 하거나 상대 후보와 지지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환자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말했다. 직장인 조모(32)씨는 “‘최악’과 ‘덜 최악’을 놓고 고민해야 하는 선거였던 만큼 여느 대선 때보다 스트레스가 심했다. 결과가 나오고 우울감 때문에 며칠간 식욕이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 중앙일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 중앙일보

박빙 승부에 눈물 삼킨 지지자들

선거 막판 양강 후보 지지자들이 결집하면서 박빙 승부가 벌어졌던 점도 스트레스의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지난 10일 발표된 개표 결과 윤석열 당선인(48.56%)과 이 후보(47.83%)의 득표율 격차는 0.73%포인트로 역대 최소치를 기록했다. 24만여 표 차이로 승패가 판가름나면서 이 후보에 투표했던 유권자들은 선거가 끝난 뒤에도 분루를 삼키고 있다.

이 후보 지지자인 전모(44)씨는 “본 투표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이길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고 개표방송을 봤는데 졌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났다. 이번 대선만큼 패배의 후유증이 큰 선거는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에게 투표한 하급 직원에게 보복을 예고하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된 게시물. 블라인드 캡처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에게 투표한 하급 직원에게 보복을 예고하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된 게시물. 블라인드 캡처

“극단적 댓글 자주 보면 증오감 커질 수도”

아쉬움과 분노가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 10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한 의료기기 업체의 본부장급 직원이 윤 당선인에게 투표한 하급 직원에게 보복을 예고하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회사 측은 해당 본부장에게 대기발령 조처를 하고, 조사를 거쳐 징계 수위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선거 전후로 극단적인 온라인 게시물이나 댓글을 자주 접하면 불안감과 증오감이 커지게 된다. 선거에 과도하게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면 일상으로 돌아가서 운동이나 여가 등 즐거운 활동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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