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저작권료, 봉준호 ‘옥자’ 받는데 ‘오겜’ 못 받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22.03.13 15:58

업데이트 2022.03.13 17:49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에서 주인공인 슈퍼 돼지 옥자(왼쪽, 목소리 이정은)와 산골소녀 미자(안서현). [사진 넷플릭스]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에서 주인공인 슈퍼 돼지 옥자(왼쪽, 목소리 이정은)와 산골소녀 미자(안서현). [사진 넷플릭스]

“‘옥자’(2017)의 경우 넷플릭스와 창작자 조합이 맺은 협약에 따라 일정한 퍼센트 이런 식으로 (저작권료가) 계속 미국에서 송금이 돼서 오거든요.”(봉준호)

“(한국에서도) 방송작가뿐 아니라 음악 만드는 분들도 다 그런 혜택을 받잖아요.”(박찬욱)

지난달 24일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온라인 개최한 연례 시상식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 봉준호‧박찬욱 감독의 발언 내용 일부다. 봉 감독이 공동각본자인 할리우드 영화 ‘옥자’는 넷플릭스가 권리를 독점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지만, 창작자로서 별도 저작권료를 넷플릭스에서 받아왔다는 얘기였다. 똑같은 넷플릭스 콘텐트인데도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각본‧연출한 황동혁 감독이 흥행 수익을 나눠 받지 못한 것과 다르다.
봉 감독이 넷플릭스에서 받은 저작권료의 공식 명칭은 ‘재상영분배금(Residual)’. 한국에서도 대본을 집필한 방송작가에게 본방송 원고료는 물론 재방‧삼방 등에 대한 이용료까지 추가로 지급하는 것과 유사한 개념이다. 봉 감독이 가입된 할리우드 노동조합들이 소속 창작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OTT 등과 지속적으로 협상을 벌여온 결과다. 1946년부터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에 맞서 파업 등을 벌여 얻어낸 권리다.

해외 저작권 강화…미국은 조합 협상, 유럽은 법 강화

봉준호 감독과 영화 '옥자'에 출연한 할리우드 및 한국 배우들이 2017년 칸영화제 공식경쟁 부문에 초청돼 레드카펫을 밟은 모습이다. [AP=연합뉴스]

봉준호 감독과 영화 '옥자'에 출연한 할리우드 및 한국 배우들이 2017년 칸영화제 공식경쟁 부문에 초청돼 레드카펫을 밟은 모습이다. [AP=연합뉴스]

창작자 권리는 유럽 등에서도 국제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다. 2020년 김혜은 변호사의 ‘영화 창작자들을 위한 정당한 보상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2019년 디지털 유통환경 변화에 발맞춰 저작자와 실연자 권리를 강화하는 ‘디지털 단일시장 저작권 지침’을 발효했다. EU 모든 회원국이 2년 내 국내법에 반영‧이행토록 했다. 이와 별도로 프랑스‧독일‧스페인‧칠레 등은 어떤 형태로든 영화가 상영되면 창작자에게 수익 일부가 돌아가도록 법으로 정해 놓고 있다.
 그에 비해 한국 영화계는 창작자 권리 보호에 취약한 편이다. 지난해 9월 영화진흥위원회의 ‘포스트코로나 영화정책 기초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주요 영화산업국과 국내 방송업계 등에서 작가 등 저작자들의 당연한 권리인 영상물의 부가적 사용에 대한 비례보상 저작권료 혹은 로열티 권리를 국내 영화 창작자들은 전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봉준호‧박찬욱 감독의 관련 발언이 작심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다. DGK 저작권위원회를 맡고 있는 이윤정 감독이 최근 한 기고문에서 “글로벌 사업체가 악덕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법이 후진적이라서 창작자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DGK는 봉준호‧박찬욱‧황동혁‧나홍진‧강제규 등 스타 감독부터 신인까지 400여명이 소속된 단체다.

넷플릭스 저작권료 '옥자' 받는데 '오겜' 왜 못 받나

글로벌 흥행을 거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 예고편 장면. [사진 넷플릭스]

글로벌 흥행을 거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 예고편 장면. [사진 넷플릭스]

한국에선 영상저작물에 관한 특례(저작권법 100조)에 따라 특약이 없는 한 영상의 창작자는 저작권을 제작사에 양도한 것으로 추정한다. 김혜은 변호사는 이 특례는 “(대개 공동저작물인 영상저작물의) 유통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영화제작자는 저작권 일부 또는 전부를 다시 투자배급사에 양도하는 것이 그간 영화업계의 관행이었다"라고 설명한다. 황동혁 감독의 경우 할리우드 창작자 조합에 가입돼 있지 않기도 하지만, 영상저작물 특례를 근거로 한국 제작사가 저작물 수익을 모두 넘기는 매절 계약을 한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수익 재분배 통로가 막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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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K에 따르면 저작권법은 1987년 개정 이후 큰 변화가 없었다. 그사이 한국 영화 산업은 극장 매출이 2018년 세계 5위에 이를 만큼 규모가 커지고 이해관계도 복잡해졌다. 극장과 시스템이 전혀 다른 디지털 시장도 급속도로 확대됐다. 이같은 시장 변화에 따라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의 하청기지로 전락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국내 영화사들의 권리를 강화하고 토종 OTT를 육성해야 한다는 정책적 논의는 있었다. 하지만 창작자들의 저작권 보장은 관심 밖이었다는 게 영화감독들의 시각이다.
 이윤정 감독은 “제작자 이익을 보장하면 자연스럽게 작가‧감독한테 수익이 흘러 들어갈 것이란 식의 관점에서 영화 정책이 추진돼왔는데 실제로는 그런 구조가 아니다. 제작자와 창작자의 수입 구조는 엄연히 다른 현실을 인정하고 ‘안전망’을 설치해 달라는 게 우리 주장”이라고 했다.

영화감독들, 한국영화 해외 저작권료 수급 물꼬

2020년 영진위 자료에 따르면 일부 스타 감독‧작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화 창작자들의 연소득은 평균 2000만원이 안 된다. 작품당 기획 단계만 3~4년 이상 걸리는 작업 공정을 감안한 경우다. 2019년 극장 개봉 경험이 있는 감독 315명을 대상으로 DGK가 진행한 실태조사에선 작품 흥행에 따른 성공보수(인센티브)를 제작사로부터 지급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70% 이상이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DGK가 몇 해 전부터 벌이는 ‘공정한 보상 캠페인’은 그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2019년 비영리 저작권 보호 단체인 세계작가감독기구(W&DW)와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CISAC)의 도쿄 총회에 참석한 게 신호탄이 됐다. 이후 해외 저작권 관리 단체들과 협약을 맺고 한국영화의 해외 저작권료 확보에 나섰다. 자국에서 상영된 외국 영화 창작자에게도 수익 일부를 떼어주는 국가들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게 결정적이었다. 이 감독은 “각자 국내법에 따라 현지 방송‧플랫폼들이 한국영화 창작자의 저작권료를 상당히 오랫동안 신탁회사에 맡겨놨는데 주인이 안 찾아가니 (일부는 공공 기금화돼) 막 사라지기 시작한 때였다고 밝혔다.

한국영화감독조합 홈페이지에 공개된 영상에서 박찬욱 감독이 지난해 프랑스에서 자신의 영화 상영에 대한 저작권료를 받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감독조합 홈페이지에 공개된 영상에서 박찬욱 감독이 지난해 프랑스에서 자신의 영화 상영에 대한 저작권료를 받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한국영화감독조합]

그런 노력에 따라 지난해 초 박찬욱‧봉준호‧강제규‧연상호‧홍원찬‧한지혜‧정주리 등 영화감독 15명이 프랑스에서 1차 저작권료를 받았다. 곧 스페인‧아르헨티나‧호주 등에서의 저작권료도 정산될 예정이다. 이 감독은 “(서비스된 한국 작품에 대한) 넷플릭스 저작권료는 스페인에서 먼저 받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스페인의 경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종이의 집’ 작가와 감독이 작품 이용량에 비례해 저작권료를 받고 있다. 국내 창작자들이 스페인을 통해 정확히 얼마를 받게 될지는 미지수다. 넷플릭스는 중앙일보에 해외 계약의 세부적인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 감독은 “칠레에서도 넷플릭스와 저작권료를 협의하는 중이라는 메일을 받았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저작권료에 대한 세계적인 관행을 알 수 있고, 그에 맞는 국내 시스템을 갖춰나갈 수 있기 때문에 미처 받지 못한 해외 발생 저작권료를 확보하는 작업은 중요하다”고 했다.

"포기할 수 없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 보장해야" 

지나해 프랑스에서 영화 상영에 대한 저작권료를 받은 연상호 감독이 한국 방송가에서 작가 등이 받는 재방송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진 한국영화감독조합]

지나해 프랑스에서 영화 상영에 대한 저작권료를 받은 연상호 감독이 한국 방송가에서 작가 등이 받는 재방송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진 한국영화감독조합]

DGK는 2018년 CISAC의 권고 사항을 토대로 ▲감독과 작가가 영상물의 저작자라는 점 ▲저작권은 포기하거나 양도할 수 없는 공정한 재산권이라는 점 ▲저작물 사용에 대해 소비자가 지불한 사용료의 일정 비율을 비례보상액(저작권료)으로 징수하는 단체의 활동을 보장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업계의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 특히 제작사가 창작자로부터 저작권 일체를 양도받는 것으로 여겨져 온 그간의 계약 관행을 손보는 관련 논의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작자는 “제작사가 저작권을 인계받을 수 없다면 세일즈 계약을 체결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면서 “할리우드 조합들처럼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조합원 작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조합 차원에서 어디까지 관리해줄 건지 의무도 제공해야 균형이 맞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측은 “통상적인 감독과의 계약서 자체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구체적으로 요구 사항이 발생하면 귀 기울여 듣고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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