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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 돈 10배 받은 노인도, 첫 직장 가진 청년도 "연금 개혁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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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 덕진구 기지로에 자리한 국민연금 본사. 장정필 객원기자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기지로에 자리한 국민연금 본사. 장정필 객원기자

연금개혁은 차기 정부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국정 과제 중 하나다. 평균 수명 증가와 출산율 저하 영향으로 기금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어서다. 정부는 2018년 제4차 재정 추계 분석에서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을 2057년으로 내다봤다. 2년 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 시기를 2055년으로 앞당겼다. 이대로라면 1990년대생 이후부터는 연금 납부만 하고 혜택은 한 푼도 받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개혁에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어떤 방식이든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해서다. 연금 수급을 목전에 둔 기성세대와 앞으로 부담을 떠안아야 할 미래 세대는 연금개혁 필요성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20대 청년부터 80대 노인까지 “연금개혁 필요”

올해 81세인 조행운(서대문구 북가좌동)씨는 20여년간 연금을 받아왔다. 조씨가 불입한 연금 보험료는 700만~800만원 남짓이지만 그가 받은 연금은 낸 돈의 10배에 달한다. 조씨는 “연금 덕분에 노후를 버틸 수 있었다”면서도 “이대로 두면 미래 세대가 연금을 못 탈 수 있으니 모두가 조금씩 손해를 보더라도 빨리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만 60세가 되면서 국민연금 불입 기간이 끝난 이모(서울 영등포구)씨는 2025년 3월부터 월 155만원을 수령할 예정이다. 이씨는 “매달 23만원 정도가 빠져나갔었는데 부담이 없어져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미래 세대는 보험료는 더 많이 내고 혜택은 적어지니 걱정이 크다”며 개혁 필요성에 공감했다.

국민연금 재정 전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민연금 재정 전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기금 고갈 예상 시점에 국민연금을 받게 될 2030세대는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지난해 10월 첫 직장을 얻은 이지호(29)씨는 매달 17만원 정도의 국민연금을 내고 있다. 이씨는 “기성세대는 보험료는 적게 내고 연금은 많이 타간 반면 90년대생부터는 그 반대가 됐다”며 “이렇게 내고도 연금을 아예 못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세대 간에 합의할 만한 적정 수준을 찾아 연금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유니온 “보험료율 적어도 3%p 더 올려야”

2018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연금특위에 참여했던 청년유니온은 한발 더 나아가 구체적인 보험료율 인상안을 내놨다. 나현우(30) 청년유니온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당장 필요한 건 모수개혁(연금제도 구조는 그대로 두되 보험료율, 지급률, 수급시기 등을 조정하는 것)이다.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8~19%까지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 번에 올리긴 어려우니 일단 3% 포인트라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 때는 보험료율이 30% 포인트 가까이 오를 수 있다”며 “지금의 청년ㆍ기성세대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나 위원장은 “청년들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라며 “기성세대가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연금특위 논의에서도 일부 단체가 ‘보험료율 인상’에 대해 지나치게 배타적인 반응을 보여 논의 자체가 이어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특위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보험료율 인상을 주장한 청년 대표에게 “역사에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을 것”이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나 위원장은 “기금이 고갈되면 국가 재정으로 보전하라고 하는데 이 역시 결국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하는 빚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청년 “尹 당선인의 연금개혁위원회 설치 공약, 공허하다”

국민연금 출생연도별 수익비.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국민연금 출생연도별 수익비.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청년들은 윤석열 당선인의 연금개혁 공약에 대해선 알맹이가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재학 중인 서효림(29)씨는 “안철수 후보가 토론회에서 연금개혁 이야기를 꺼내 화두가 됐었는데 후보들 공약집을 보면 빈약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서씨는 특히 윤 당선인과 관련해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했지만 ‘대화를 하자, 위원회를 만들자’는 주장은 그동안 무수히 나왔던 이야기라 더 공허하게 들린다”고 비판했다.

그는 청년세대에서 ‘연금 무용론’까지 퍼지고 있다며 정치권에서 무게감 있게 사안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씨는 “어차피 돌려받지 못할 거라면 연금을 내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인식까지 퍼지고 있다. 이런 불안과 공포가 커지면 비단 국민연금뿐 아니라 사회적 연대의 의미를 가지고 만들었던 각종 복지 제도 전체가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현우 위원장도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고 개혁위 설치만 언급하는 건 결국 자기 손에 피 묻히고 싶지 않다는 뜻”이라며 “개혁위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통령에 당선돼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된 만큼 방향성을 제시하며 국민을 설득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신(43)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청년위원장은 장기적인 로드맵을 제시해 청년 세대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송 위원장은 “2030의 경우 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큰데 장기적인 로드맵을 통해 100%는 아니더라도 내가 일한 만큼 향후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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