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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P는 안 뽑습니다"…MBTI에 중독된 한국서 살아남는 법 [밀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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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한국 MBTI 연구소제공]

MBTI [한국 MBTI 연구소제공]

MBTI가 뭐예요?

요즘 MZ 세대 사이에서 인사말처럼 자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MBTI에 대한 질문인데요. 16개 유형으로 사람들의 성격을 알아보자는 취지인데, 요즘에는 회식 자리부터 소개팅, 심지어 면접장까지 사람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됐다고 합니다.

특정 MBTI 성향은 지원 불가하다는 채용 공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특정 MBTI 성향은 지원 불가하다는 채용 공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MBTI 결과를 제출하라는 기업 채용 공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MBTI 결과를 제출하라는 기업 채용 공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일부 MZ 세대는 "16개로 사람을 나눈다니 폭력적"이라며 'MBTI 과몰입 사회'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MBTI를 거부하는 MZ 세대의 목소리를 밀실팀에서 들어봤습니다.

[밀실]<제86화> #MBTI가 불편한 MZ

회사에서도, 소개팅에서도…MBTI 중독된 한국사회  

최단비씨.

최단비씨.

얼마 전에 친하지 않은 사람이랑 술자리를 한 번 가진 적이 있는데 그분이 대뜸 저한테 'MBTI가 뭐냐고' 묻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는 'MBTI를 맹신한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INFJ야' 이랬더니 다짜고짜 'INFJ는 나랑 잘 맞는데' 이러는 거예요. 불쾌하다기보다는 약간 황당했어요.  

퇴사 후 갭이어를 보내고 있는 최단비(30)씨는 주변의 MBTI 과몰입 현상에 최근 들어 큰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MBTI는 그냥 참고할 수 있는 재밋거리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주변 친구들이나 사회 분위기는 마치 그 테스트가 내 성격을 단정 짓는 증명서처럼 여기니까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어요.  

최단비씨는 ‘MBTI 뭐냐고 그만 좀 물어봐’라는 글에서 처음에는 나를 알아가기 위해 시작한 MBTI 테스트 때문에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다고 털어놨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건 저에게는 평생의 과제인데, 요즘은 30분짜리 테스트로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단정 짓는 게 너무 당연시되고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혼란스러웠어요.

회사원 김은미(35)씨도 단비씨와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어느 날 회사에 가니까 직원들이 휴게실에서 '까르르 까르르' 거리면서 웃고 계시더라고요. 두 분이 MBTI가 똑같이 나왔나 봐요. 그러면서 ‘자기랑 나랑 어쩐지 잘 맞더라’ 하면서 이러시는데, ‘그럼 나는 안 맞는 사람인 건가?’라는 생각도 들고. 약간 편 가르기 식으로 느껴져서 거부감이 들었어요.   

그러나 자신의 다른 생각을 말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다 MBTI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상황인지라 다른 의견 말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제가 찬물 끼얹듯이 ‘나 근데 이거 안 믿어’ 할 수가 없으니까요.  

은미씨는 MBTI가 자아탐구의 도구라고 주장하는 MZ 세대를 향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정말 자기 자신을 알고 싶다면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하거나 다방면의 사람을 만나는 식으로, 더 진중하고 깊이 있는 방향으로 알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전 세계에 60억 인구가 있다면 성격도 60억 가지라고 생각을 해요. 저는 ENFJ지만 저 지구 건너편에 사는 또 다른 ENFJ랑 또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양성을 존중하고 타인을 틀에 박히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INFP는 '씹프피'? 도 넘은 비판에 상처  

MBTI 세계에는 사회생활 부적응 유형으로 꼽히는 대표 유형들이 있습니다. INFP와 INTP인데요. 내향적이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산다는 이들 성향을 두고 온라인에서는 각종 '밈'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친구들과 불화하는 '괴짜' 캐릭터로,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이미지입니다.

INFP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유승우씨. [유튜브 캡처]

INFP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유승우씨. [유튜브 캡처]

유승우(35)씨는 '나는 프피-어느 INFP 이야기'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상담사로 오랜 시간 일해온 승우씨는 INFP를 둘러싼 '밈'을 보고 느낀 점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솔직히 (INFP관련밈이) 그렇게 막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제 유형은 비주류, 아웃사이더, 찐따 약간 이런 이미지 심지어 래퍼 한 명은 제 유형을 보고 '씹프피'라고...'밈'이 개그나 유머 코드로서 그냥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것들이면 괜찮은데 더 막 깊이 파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기업에서 꺼리는 MBTI 성향으로 알려진 MZ 세대도 만나봤습니다. INTP 성향을 가진 이소영(22)씨는 "INTP는 지원하지 말라는 공고를 보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소영씨.

이소영씨.

일단은 회사 입장에서 생각을 일단 해볼 것 같아요. 왜 INTP를 뽑지 말라고 했는지에 대해. 그래도 저는 지원을 할 것 같긴 하거든요. 면접장에서 '저는 이런 이런 노력을 해 온 사람이고 자격이 있으니 뽑아달라'고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두 번까지 해볼 것 같고, 그래도 안 되면 제 회사를 차릴 것 같아요. INTP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게요.  

소영씨는 INTP 성향 친구들에게는 응원의 말을 남겼습니다.

너희는 뭘 해도 잘 되니까. 파이팅

MBTI 본래 취지, "배제 아니고 포용"

한국 MBTI 연구소 김재형 연구부장은 MBTI의 본래 취지가 16개 성격 유형이 서로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채용을 위해 만들어진 검사가 아닌 MBTI를 채용 면접에서 강요할 경우 지원자들이 특정 MBTI 성향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MBTI의 모토는 16개 유형, 이 다양한 유형들이 공존하는 다양성의 세상을 만들자는 겁니다. 1등부터 16등이 있는 게 아니에요. 다 자기만의 색채가 있는 건데…. 그냥 '요즘 유행이니까 MBTI 코드 써보세요' 이 정도 수준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가뜩이나 스펙 쌓기도 힘든 청년들한테 이게 또 다른 부담이 되는 건 왜 생각을 못 하는지 모르겠어요. 결국에는 취업준비생들로서는 만들어진 성격을 기재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을 거거든요.  

온라인에서 떠도는 검사지는 전혀 근거가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정식 검사는) 검사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으셔야 하고요, 결과에 대해서 전문가로부터 해석을 듣고 상담까지 진행이 돼야 온전한 검사입니다. MBTI뿐 아니라 모든 심리 검사는 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전문가가 없이 자의로 받는 심리검사는 효력이 없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에 MBTI를 참고한 채용 공고를 올려 논란이 됐던 한 식품 기업 측은 "요즘 트렌드다보니 자기소개서 상에서 본인의 MBTI 성향을 소재로 해서 본인 장점을 잘 강조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라며 "MBTI 지표값이 채용의 기준이 된 건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서로 다른 성격 유형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위해 고안된 MBTI. MZ 세대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MBTI가 점차 불편한 '성격 증명서'로 변질하고 있습니다.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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