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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가분이 고발한다

몇달전만해도 '틀X의 힘' 조롱…이준석 책임론? 덕분에 이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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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연구자이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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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신승 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왼쪽)을 배경으로 청년과 함께한 이준석 대표 모습을 합성했다. 그래픽=전유진 기자

대선 신승 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왼쪽)을 배경으로 청년과 함께한 이준석 대표 모습을 합성했다. 그래픽=전유진 기자

지난 9일 20대 대선이 막을 내렸다. 패배한 더불어민주당보다 승리한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흔들기가 당 안팎 모두에서 전개된다. 이겼는데 책임론이 나오는 이상한 형국이다. 이대남에 눈을 준 게 전략 실패라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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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를 가른 변수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나는 ‘청년층 영토 확장’전략은 분명 국민의힘 승리에 한몫했다고 본다. 판단 근거는 숫자다. 지난 2020년 4월 총선과 비교할 때, 국민의힘(총선 당시는 미래통합당)에 투표한 20대 남성 비율은 40.5%에서 58.7%로 늘었고, 20대 여성 비율 역시 25.1%에서 33.8%로 증가했다.

물론 총선과 대선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정권교체(수호)’ 이슈를 중심으로 각 진영이 결집했던 지난 세 번의 대선과 비교해봤다(이하 출구 조사 득표율은 방송 3사 기준, 19대는 갤럽 기준). 이 중 2017년 19대 대선은 탄핵정국이라 이번 대선과의 비교가 적절치 않지만 그럼에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그 시절 청년층에서 가장 외면받은 정당이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복기할 필요가 있다. 2012년 18대 대선만 해도 2030 남녀 모두에게 30% 이상 지지를 받은 정당이 19대엔 10% 이하의 지지율로 내려앉은 것이다. 이때 청년들은 마음 놓고 안철수·유승민·심상정 등 나름 꿈을 같이하는 대안 정치세력을 지지했다. 이때만 해도 정통 보수 정당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종지부를 찍는 줄 알았다.

이대녀 컴백, 부활한 보수 

그런데 이번 20대 대선에서 양당 구도가 10년 전의 18대 대선보다 더 강력하게 부활했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은 정치 시계를 자기들이 승리했던 2012년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청년층 공략이라는 목표를 이 시절을 기준으로 둔다면 한참을 더 초과 달성했다.

20대 여성 지지율(%) 비교. [출처:출구조사, 박가분]

20대 여성 지지율(%) 비교. [출처:출구조사, 박가분]

20대 남성 득표율 얘기가 아니다. 물론 국민의힘 20대 남성 득표율은 37.3%에서 58.7%로 껑충 뛰었다.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건 20대 여성 득표율이다. 18대 당시 30.6% 지지를 완전히 회복(33.8%)했다. 이대남 신드롬만큼이나 '이대녀 보수층의 복원'이 무시할 수 없는 현상이라는 걸 잘 보여준다.

2030 전체로 보면 어떨까. 18대 대선 당시의 20대였던, 지금의 30대 말이다. 10년 전 보수정당 후보에 30%대 표를 주던 그들은 30대가 된 지금 남녀 각각 43.8%, 52.8%가 윤석열에 표를 줬다. 나이 들면서 보수화하는 연령효과를 고려하더라도 훨씬 더 급격하게 보수에 유리한 여론지형 변화가 나타난 셈이다.

30대 여성 지지율(%) 비교. [출처:출구조사, 박가분]

30대 여성 지지율(%) 비교. [출처:출구조사, 박가분]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으로의 기대(?)만큼의 2030 결집이 나타나지 않은 건 ‘이준석 책임론’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했다. 많은 언론에서도 그를 ‘성별 갈라치기’의 원흉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접근이야말로 이준석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예컨대 청년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비판하며 뭉친 건 결코 오롯이 이준석의 작품이 아니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갈등은 그가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되기 한참 전인 2016년부터 남혐 커뮤니티인 메갈리아·워마드를 진앙지로 확산하기 시작해 2018년 혜화역 남혐 시위, 그리고 남녀 갈등이 표면화한 이수역 사건 당시 정점을 찍었다. 이준석 등장 이후가 아니라 지난 19대 대선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 아래서 젠더 갈등이 극심해진 게 분명한 사실이다. 이준석의 역할은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성별 갈라치기'로 없던 갈등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실재하는 갈등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멱살 잡고 끌고 왔는데 '아갈량'의 실패? 

온라인상의 안티 이준석 패거리는 그를 '아가리 제갈공명'을 줄인 '아갈량'이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그러나 사실 제갈공명도 천하 통일에는 실패했고 천하 삼분지계에만 성공했을 따름이다. 이준석은 그가 호언장담한 대로 2030세대를 전부 가져와 4050을 완전히 포위하는 데에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본래 보수정당을 지지하지 않던 2030 세대의 절반이나 찾아오는 데는 성공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더불어민주당 표심도 살펴보자. 지난 대선·총선과 비교할 때 누구의 텃밭이 파헤쳐졌는지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10년 전에는 2030 세대에서 보수정당이 지는 게 당연한 현상이었다. 하물며 청년층이 호감을 보였던 홍준표·유승민도 아닌 윤석열이 후보였다.

이준석에 대한 호오가 무엇이든 이와 별개로 이번 선거의 공과는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 벼랑 끝 국민의힘과 윤석열을 여기까지 ‘멱살 잡고 끌고 온’ 것은 이준석이라는 것이 바닥 민심의 중론이다. 국민의 힘은 불과 몇 달 전만해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틀X의 힘’이라고 조롱당했다. 현재에도 이준석 책임론을 꺼내 들거나 여가부 폐지 공약을 뒤집으려 드는 보수인사들을 ‘틀X’이라며 조롱하는 밈(meme)이 생성되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운데)가 선거 다음날인 10일 광주에서 윤석열 후보를 대신해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운데)가 선거 다음날인 10일 광주에서 윤석열 후보를 대신해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의 국민의힘이 청년을 젠더 갈등 프레임으로 ‘갈라치기’ 했다는 비판이 설사 맞다 치자. 그렇더라도 국민의힘 입장에서 남는 장사였다. 적어도 지난 서울·부산 재보궐 선거 이후 보수가 세대·성별 문화전쟁으로 손해 본 일은 없다. 아쉬운 건 오히려 민주당의 전략이다. 그럴수록 민주당은 성별 갈라치기라며 이대녀 편에 서는 게 아니라 이재명 후보가 강점을 보였던 사회경제 이슈에서 차별화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재명이 내세운 사회경제적 형평 위주의 공정과 이준석의 능력주의적 공정이 맞붙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민주당은 선거 막판에 이대남 프레임에 이대녀 프레임으로 맞섰다. 이준석 프레임에 스스로 넘어간 꼴이다. 선거에 진 지금도 이대남 갈라치기에 이대녀 갈라치기로 대응하자는 이른바 진보 논객과 스피커들이 활개를 친다. 2030 세대 여론 전반을 봤을 때 이는 국민의힘 상대로 앞으로도 어려운 싸움을 하겠다고 자처하는 꼴이다. 당장 눈앞에 다가온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민주당이 얼마나 더 수렁에 빠질지 벌써부터 걱정스러운 이유다.

물론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이준석의 갈라치기 꼼수 탓에 어려운 승리를 거두었다고 호도하는 목소리가 국민의힘 내부에서 점점 더 큰 힘을 얻어 내홍이 깊어진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런 요행을 바라는 것만으로 충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