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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냐, 경총이냐, 전경련이냐...새정부 앞서 경제단체 '맏형' 경쟁

중앙일보

입력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새 정부에서 경제계 ‘맏형’ 자리를 놓고 경제단체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조짐이다. 문재인 정부에선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각종 행사를 주도하며 재계의 대표 격으로 부상했으나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재기를 노리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전경련과의 통합 뜻을 재차 밝히는 등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파워게임 양상이 경제단체들 사이에서도 나타날 전망이다.

경총 회장은 당선인과 학연

윤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10일부터 경총 측은 윤 당선인이 손경식(83) CJ 회장 겸 경총 회장과 최근 1년간 여러 공식 행사에서 만나면서 교류했다는 점을 알리는 데 적극적이었다.

실제 윤 당선인과 손 회장은 나이 차가 20년 이상 나지만,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재계 방문지로 경총 간담회를 가장 먼저 찾기도 했다. 손 회장은 윤 당선인의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와도 미술 전시회 등에서 만나 안면을 익혔다는 말이 있다. 경총 관계자는 “기업인 중에는 서울대 법대 출신이 드물다”며 “윤 당선인과 손 회장이 옛날부터 친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윤 당선인이 대선 후보가 된 후 각종 행사에서 만나면서 친분이 생긴 걸로 안다”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선후보 초청 경총 간담회에 참석해 손경식 경총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선후보 초청 경총 간담회에 참석해 손경식 경총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마침 경총은 영향력 확대를 꾸준히 노려왔다. 손 회장은 지난달 연 기자 간담회에서 경총과 전경련의 통합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그는 “동일한 역할을 하는 단체가 두 개가 있을 필요가 있느냐”며 “둘이 힘을 합치면 효율적으로 일 할 수 있고, 미국 헤리티지 재단처럼 한국도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고 꾸려가는 단체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지난해에도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저지하는 데 연이어 실패하자 통합론을 꺼내 들었고, “내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텐데 각종 현안에 대해 힘을 모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경련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경총에 대해 “전경련 내 고용 업무 담당 부서였다가 1970년 떨어져 나와 노사 관계 전담 사용자 단체로 설립된 아우 단체”라는 생각이 여전해서다. 전경련 관계자는 11일 “경총으로부터 (통합 관련) 공식적인 오퍼(제안)도 없었기 때문에 검토할 것도 없다”고 일축했다.

‘전경련 패싱’ 끝날까

이와 별개로 전경련은 절치부심하고 있다. 1961년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故) 이병철 회장 등이 주도해 설립한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시작된 전경련은 대기업을 대표하는 ‘맏형’ 경제 단체로 꼽혔다. 그러나 2016년 이른바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되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문재인 정부에서 외면당했다. ‘전경련 패싱’이라며 각종 행사에서도 소외됐다. 삼성 등 4대 그룹이 모두 탈퇴하는 등 한때 639개 사였던 회원사는 450여 개로 줄었다. 임직원도 200명에서 80명이 됐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처럼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한 ‘한국기업연합회’로 개명하는 방안까지 논의되다 흐지부지됐다.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전경련을 방문해 환담하고 있다. [중앙포토]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전경련을 방문해 환담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전경련은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을 통해 정책 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영향력 확대를 꾀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십 년간 쌓아온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허창수 회장과 전통 관료 출신인 권태신 상근부회장을 중심으로 새 정부 인사들과 물밑 접촉을 추진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또한 전경련은 탈퇴한 4대 그룹의 재가입에 힘을 기울이고 부회장단에 2∼3세대와 정보기술(IT) 기업 총수를 합류시키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실제 지난해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아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부회장으로 합류시키기도 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11일 “인수위에서 차기 정부 정책 방향이 결정되니 자체적으로도 정책 방향을 점검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 측에 정책 등을 제안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은 셈이다.

대한상의 영향력은 유지?

문재인 정부에서 부쩍 높아진 대한상의 위상이 새 정부에서 유지될지도 관심이다. 윤 당선인은 대한상의 회장을 맡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는 껄끄러운 인연이 있다. 2012년 최 회장이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불구속기소됐을 당시 윤 당선인이 관련 사건의 공소 유지를 담당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16일 대한상의 초청 간담회를 통해 다시 만났을 때는 윤 당선인이 재계 의견을 적극 청취하고 답변하면서 훈훈한 분위기였다는 후문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왼쪽)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달 7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 특별강연에 참석해 환담장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왼쪽)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달 7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 특별강연에 참석해 환담장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대한상의는 조만간 기자간담회도 열 예정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최 회장의 취임 1주년이 다가오기도 해서 조만간 새 정부에 바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려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3월 24일 대한상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각종 행사를 주도한 박용만 전임 대한상의 회장에 이어, 4대 그룹 총수 중 가장 연장자인 최 회장(1960년생)이 취임하면서 대한상의 위상이 더 높아졌다는 게 경영계 안팎의 평가였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윤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 때보다 규제를 개혁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 거라 생각한다”면서도 “앞으로 경제단체들이 당선인이나 새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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