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육·복지 시스템 개선, 폭력의 대물림 고리 끊어야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79호 26면

[천근아의 세상 속 아이들] 아이들 폭력·범법 행위

아이들 폭력·범법 행위

아이들 폭력·범법 행위

※이 칼럼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심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법정 시리즈 ‘소년심판’을 보았다. 솔직히 처음에는 볼 생각이 없었다. 청소년들의 폭력이나 비행 이면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고, 드라마가 그것을 모두 담아내지 못할 거라 우려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첫 화에서 다룬 사건은 뉴스에서 떠들썩하게 보도한 실제 사건이었는데, 몰입감이 대단했다. 이어지는 사건 중에는 경범죄로 보호관찰 중이었던 청소년이 친부의 반복된 가정 폭력의 피해자였음이 밝혀진 사례도 있었다. 이 시리즈를 연출한 감독은 제작 발표회에서 “드라마가 답을 제시하는 건 아니지만 다양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 시리즈가 많은 대중으로부터 관심과 호평을 받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들은 진료하던 아이들을 위해 법원 또는 경찰서 제출용 진단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유치원 또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문제 행동을 일찍 발견하여 꾸준히 치료받는 경우는 청소년기 비행으로 이어지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적다. 발생하더라도 정도가 약하거나 재발률이 낮은 편이다. 문제는 청소년 범죄 또는 촉법 행위(10세부터 14세 미만의 소년)와 같이 형법 법령이나 소년법에 저촉되는 행동을 한 후 뒤늦게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에게 의뢰되는 사례다.

드라마 ‘소년심판’이 던진 화두

오른쪽사진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 의 한장면. [사진 넷플릭스]

오른쪽사진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 의 한장면. [사진 넷플릭스]

수년 전 일이다. 영철이와 엄마가 주저하는 모습으로 진료실에 들어섰다. 아이의 인적 사항을 보니 갓 13세 생일이 지난 상태였고 대안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무슨 일로 내원하시게 되었나요?” 나는 사전 설문지 주요 증상에 ‘문제 행동’이라고만 적혀 있어서 내원 동기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우리 영철이가 어릴 때부터 충동 조절이 안 되어 소소한 사고를 쳤었는데 최근에 큰 사고를 쳤습니다.” 엄마는 아이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희 아파트가 8층인데 베란다에서 고양이를 아래로 던졌습니다.” 엄마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영철이는 무표정하게 책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파트 주민 한 분이 아이가 고양이를 죽인 사실을 알게 되어 경찰에 신고했고 애가 조사를 받게 됐어요. 제가 미리 치료받게 했어야 했는데 먹고 살기 바빠서….” 엄마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릴 때 한차례 소아정신과를 방문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치료를 지속하지 않은 이유가 있으신가요?” 나는 물었다.

“애 아빠가 반대를 하도 심하게 해서요.”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대답을 이어갔다. “초등학교 입학 후 선생님한테 대들고 여자아이들을 괴롭혀서 소아정신과에 갔었는데, 남편은 ‘아이들이 어릴 때 다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그게 무슨 치료받을 일이냐’며 더 이상 병원에 못 가게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영철이 아버님은 오늘 안 오셨는데, 현재 무슨 일 하시나요?”

“….” 엄마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무슨 말 못하실 사정이라도….” 나는 엄마가 아이가 옆에 있어 대답하기 어려워하자, 영철이와 상담을 마친 후 엄마와 따로 상담하기로 했다. 영철이 아빠는 현재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상태였다.

오른쪽사진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 의 한장면. [사진 넷플릭스]

오른쪽사진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 의 한장면. [사진 넷플릭스]

영철이는 어린 시절부터 아빠로부터 체벌을 많이 당해 왔다. 아빠는 이 체벌을 아이의 문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한 훈육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엄마는 아빠로부터 아이를 보호할 에너지가 없었다. 엄마 또한 아빠의 폭력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영철이는 자신을 아빠로부터 보호해 주지 않는 엄마를 향한 분노가 컸다. 아빠가 교도소에 수감된 뒤부터 아이의 분노는 폭력으로 드러났다. 아침 등교 시간에 늦을까봐 서둘러 깨우는 엄마를 향해 욕을 하거나 휴대폰을 던져 다치게 한 일도 있었다. 학교 반 아이 중 특수교육 대상인 지적장애 친구의 학용품을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는 일이 반복되어 학교에서 징계를 받은 적도 있었다. 문제의 사건 당일 아침에 영철이는 출근을 준비하던 엄마로부터 “아침부터 휴대폰만 하냐. 빨리 밥 먹고 학교 가라”는 평범한 잔소리를 들었다. 그날따라 영철이는 엄마의 잔소리에 너무 화가 나서 뭐라도 잡히는 것이 있으면 다 집어 던지고 싶었다고 한다. 그 순간 자신의 방 문턱에서 엄마가 애지중지하던 고양이를 발견했다.

영철이를 향해 물었다. “그 행동을 후회하니?” “잘 모르겠어요.” 아이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엄마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그래도 경찰 앞에서는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말했습니다”라며 영철이를 변호했다.

나는 1년 전 칼럼에서 품행 장애와 냉담-정서 결여 성향(callous-unemotional trait)을 다룬 적이 있다. 영철이도 품행 장애 중 냉담-정서 결여 성향 유형에 속하는 아이다. 이 유형의 아이들은 타인의 감정에 무신경하고 냉담하며 자신의 문제 행동을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다만 경찰서나 법정과 같이 처벌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죄책감은 표현하기도 한다. 냉담-정서 결여 성향을 지닌 품행 장애 청소년들은 성인기에 반사회적 인격 장애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고 범죄를 저지를 확률도 높다.

모두 부모 책임으로 돌려선 안 돼

그렇다면 냉담-정서 결여 성향의 아이들이 보이는 폭력성의 신경생물학적 원인은 무엇일까. 학자들은 다른 품행 장애 유형에 비해 냉담-정서 결여 성향의 아이들에게는 유전적 영향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대략 60%가 유전될 가능성이 있고, 냉담-정서 결여 성향이 심각한 경우 무려 81% 정도까지 유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한 메타 분석 연구는 청소년들의 반사회적 행동에 미치는 유전적 영향이 40~50% 된다고 보고했다. 많은 뇌 영상 연구들도 냉담-정서 결여 성향의 아이들은 두려움을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와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 사이의 연결성이 감소되어 있고, 그것이 공격성과 폭력성을 높인다고 말한다. 또한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뇌 영역의 기능 장애도 동반한다.

다만, 아이들의 폭력과 범법 행위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해야 한다. 단순히 유전적 특성에 따른 뇌 기능 이상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소년심판’에서 다룬 가정폭력의 피해자 서유리(극중 인물) 사례와 영철이 사례 모두 열악한 양육 환경에 따른 폭력의 대물림 현상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그렇다면 열악한 양육 환경은 모두 부모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인가? 남편의 치료 반대와 학대로부터 아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엄마의 잘못인가? 자신의 아들을 감싸느라 손녀를 아빠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해 주지 못한 할머니의 잘못인가? 누구나 알다시피 그렇게 단선적으로만 접근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들은 나름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들의 성과와 역할은 그다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 아이들의 문제는 오랫동안 우리나라에 축적되어온 각종 사회문제와 과열된 교육 시스템의 결과물이기도 하며,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복지의 사각지대와도 연관이 있다. 따라서 아이들의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시스템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영철이와 엄마는 단 두 번 병원을 방문했고 법원에 제출할 진료 기록을 받아간 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소년심판’을 보면서 수많은 영철이가 떠올랐다. 훗날 영철이가 유사한 사건으로 병원을 다시 찾는 일이 없기만 바랄 뿐이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등장인물을 가명으로 처리했고, 전체 흐름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 내용을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8년 영국 국제인명센터(IBC)의 ‘세계 100대 의학자’로 선정.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 가정법률상담소 교육위원, 법무부 여성아동정책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아이는 언제나 옳다』, 『엄마 나는 똑똑해지고 있어요』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