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스타’에 가려진 다섯 여성의 이야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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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호 20면

더 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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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
핼리 루벤홀드 지음
오윤성 옮김
북트리거

1888년 가을, 영국 런던의 동부 빈민가인 화이트 채플에서는 5명의 여성이 연쇄적으로 살해당했다. 약 두 달간 폴리를 시작으로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까지 5명 모두 목이 잘린 채 잔인하게 희생됐지만 130여년 지난 지금도 미제로 남아 있다.

실체 없는 이 살인자는 이른바 ‘잭 더 리퍼’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연쇄살인범의 대표 명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이 사건은 소설, 드라마, 뮤지컬, 영화, 게임 등으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고 국내에서도 현재 동명의 뮤지컬이 초호화 캐스팅으로 절찬리 상연 중이다. 살인자 앞에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맞을까 싶지만 잭 더 리퍼는 시대를 뛰어넘는 가장 유명한 ‘스타’ 살인마로 불리며 여전히 무대의 중심에 서 있다.

뿐만 아니다. 화이트채플 지역의 살인 현장을 돌아보는 잭 더 리퍼 투어는 여전히 진행형이며 잭 더 리퍼 망토, 티셔츠 등의 기념품도 버젓이 팔리고 있다. 살인의 산업화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이 이들이 여전히 잭 더 리퍼에 기대어 먹고살고 있는 셈이다.

영국 여성사를 전문으로 하는 역사가이자 저술가, 방송인인 저자는 살인마를 무대 중심에 두는 서사에 반기를 들고 5명의 피해자를 중심으로 이 이야기를 다시 썼다. 저자는 철저한 자료 조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희생자들의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우습게도 가해자는 영웅화되고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반면, 피해자는 그저 ‘매춘부들’로 뭉뚱그려져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피해자들이 그저 죽어도 되는 매춘부가 아니었다고, 누군가의 자식이자 아내이자 어머니이자 친구이자 그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이었다고 말한다. 또 그 시대를 살아가던 여성들이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사회구조 안에서 어떻게 살아갔으며 당시 빈민들의 삶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조망하고, 뿌리 깊은 여성혐오 문화에 대해서도 들여다본다.

책은 이야기한다. 이제 더 이상 잭 더 리퍼의 망토에 열광할 때가 아니라고. 희생자인 폴리,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의 이름을 기억해 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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