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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 하는 동물처럼, 경쟁자 포용해야 번성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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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호 15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1970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하지만 이 화려한 경력에는 오점이 하나 있다. 그는 1961년 출간된 대학 교재에서 눈길을 끄는 ‘예언’을 했다. 러시아의 전신이었던 당시 소련이 1984년이나 1997년쯤 국민소득에서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1980년대가 가까워지는데도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자 1980년 판에서 수정했다. 잘못을 시인한 게 아니었다. 2002년이나 2012년쯤일 것이라고 시기를 늦췄다.

노벨상 받은 새뮤얼슨의 빗나간 예언

엽록체를 갖고 있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푸른민달팽이. [사진 위키피디아]

엽록체를 갖고 있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푸른민달팽이. [사진 위키피디아]

이번엔 맞았을까? 두 번째 예언 역시 빗나갔다. 2012년을 한참 지난 지금도 그런 기미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다행히(?) 그는 2009년 세상을 떠난 덕분에 자신의 예측이 결국 틀렸다는 걸 보지 않을 수 있었지만,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는 지금도 그의 예측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략까지 하면서 말이다. 새뮤얼슨이 두 번이나, 그것도 대학 교재에서 그렇게 말한 건 당시 소련 경제가 상당한 성장세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소련은 그런 성장을 이어가지 못하고 새뮤얼슨에게 오점을 남기게 했을까?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의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경제학)와 하버드대의 제임스 로빈슨 교수(정치학)는 미래지향적이지 않은 제도를 원인으로 꼽았다. 미래지향적이지 않은 제도란 착취적인 제도인데 소수 기득권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 구성원의 이익을 빼앗는 것이다. 불법이 아니라 그들만을 위한 합법적인 제도를 통해서 말이다. 러시아만의 일이 아니다. 두 사람은 전 세계 나라를 대상으로 왜 어떤 나라는 번성하는데 다른 나라는 그렇지 못한가를 연구했는데, 자원이 있음에도 번성하지 못한 나라들의 공통점도 이것이었다. 한 나라의 성패가 지리적 요인이나 문화보다는 제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얘기다. 반면 착취가 아닌 포용적인 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들은 자원이 없는데도 번성했다.

두 사람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 곳곳에서 드는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민국이다. 무엇이 착취적이고 포용적인 걸까? 착취적인 제도는 경쟁자나 반대자를 지배, 복종시키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걸 빼앗는다. 기득권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새로운 참여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말이다. 잠재적인 도전자의 싹을 자르는 것이다. 포용적인 제도는 반대다. 불편하긴 하지만 경쟁자와 한 울타리에 사는 걸 인정하고 정당한 경쟁을 통해 이익을 취한다. 착취가 상대를 지배하거나 배제한다면 포용은 상대를 용인한다. 이 차이가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를 결정한다. 착취는 일부(기득권)를 위한 것이라 혁신을 억누를 수밖에 없어 성장이 제한적이지만, 포용은 언제든 혁신이 자유롭게 일어날 수 있어 모두가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몸, 아니 이 세상을 이루는 생명들이 증명한다. 무슨 말인가 싶지만 사실이다. 지구 생명체는 크게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세균(박테리아)과 고세균, 진핵생물인데 앞의 두 ‘세균’은 이름만 비슷하지 상당히 다른 단세포 미생물이다. 이들이 바로 36억 년 전 생명의 역사를 시작한 주인공인데, 20억 년 전쯤 우연한 ‘사건’이 발생했다. 어느 날 고세균 속으로 박테리아가 들어온 것이다. 이러면 보통 옳다구나 싶어 소화시켜버리지만 이 고세균은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안에서 살도록 ‘배려’했다. 그런데 이 배려가 지구의 운명을 바꿨다. 각자 잘 하는 일을 역할 분담, 더 나은 생존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세균은 후세에 유전자를 전달하는 일을 맡고, 들어온 박테리아(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 생산을 맡는 식으로 말이다. 제3의 생명인 진핵세포, 더 나아가 다세포 생명체의 탄생이었다.

사람 장내미생물이 에너지 10% 생산

그래서 두 미생물은 지금도 여전히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지만, 진핵생물은 다세포 시스템 덕분에 온갖 생명체로 진화해 지구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미국의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가 ‘세포 내 공생사건’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다. 어디 동물뿐인가? 지구 생태계의 기반을 이루는 식물 역시 우연하게 들어온,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박테리아(엽록체)를 내쫓거나 소화시키지 않고 포용한 덕분에 지금의 푸른 지구를 만들 수 있었다.

상대를 받아들여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이런 공생은 지금도 생태계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강력한 생존 전략이다. 심지어 광합성을 하는 동물(푸른민달팽이)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여서 우리 안의 장내미생물이 우리가 쓰는 에너지의 10%를 생산한다.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포용을 통한 공생이 번성의 바탕이라는 말이다. 세계 역사를 바꾼 칭기즈칸은 금나라 출신의 야율초재를 무릎 꿇리지 않고 포용한 덕분에 전무후무한 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복종과 지배를 통한 착취는 쉽고 편할지 몰라도 오래가지 못한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이런 생명의 원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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