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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시대’ 입체 전망]청와대 ‘해체’ 광화문서 집무,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 첫걸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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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호 08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와 경복궁 뒤로 보이는 청와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최영재 기자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와 경복궁 뒤로 보이는 청와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최영재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내건 정치 분야 공약의 핵심은 청와대의 ‘해체’와 ‘광화문 시대’의 개막으로 요약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시키겠다는 취지에서 청와대라는 명칭도 없애고 ‘대통령실’로 바꾸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 슬림화를 통해 부처 위에 군림해 온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고 실무에 적합한 청와대로 탈바꿈하도록 하겠다”며 “대통령실은 범국가적 현안의 기획·조정과 미래 전략 수립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대해진 청와대를 실무형 전략 조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 기간 ‘광화문 시대’도 수차례 강조했다.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을 광화문 앞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하겠다면서다. 대통령 관저의 경우 경호상의 문제나 국가 비상사태 등에 대비해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 등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윤 당선인은 “기존의 청와대 부지는 국민의 품으로 돌려 드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 부지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감안해 역사관이나 시민공원을 조성하는 방안을 전문가와 국민 여론 수렴을 통해 확정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선 대통령 집무실 이전엔 현실적 제약이 만만찮을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도 19대 대선 때 청와대를 광화문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했지만 결국 2019년 이를 백지화했다. 청와대 본관·영빈관 등 주요 공간이 들어설 대체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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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경호 문제도 난제다.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주변에 고층 빌딩이 많아 외부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데다 광화문광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각종 시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경호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지역 통신 차단 문제나 청사 내 공간 부족도 풀어야 할 숙제다. 김두현 국민안전연구소장은 “경호·보안 문제나 새로 조성되는 광화문광장 공사 상황 등을 고려하면 단기간 내 집무실 이전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며 “광화문 이전 준비와 더불어 지금의 청와대를 보다 열린 공간으로 바꿔 국민과의 소통을 늘리는 방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윤 당선인은 청와대 시스템의 대대적인 변화도 예고했다. 인력의 30%를 감축해 참모진을 ‘정예화’하고 대신 분야별 민·관 합동 위원회를 구성한 뒤 실력 있는 민간 분야 인재들을 적극 등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 부인과 가족들 업무를 맡던 제2부속실도 폐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국가 안보상 민감한 분야가 아니라면 민·관 합동 위원회에 외국인도 포함시키는 등 각계의 최고 인재를 모셔오겠다는 게 윤 당선인의 확고한 의지”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부분은 수석비서관을 없애고 민정수석실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점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차관급이지만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감사원 등 5대 사정 기관 업무를 총괄하며 가장 핵심적인 실세 자리로 꼽혀 왔다. 윤 당선인은 이처럼 청와대 조직을 최대한 줄이는 대신 각 부처 장관에게 최대한 권한을 부여해 국정이 내각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할 방침이다. 장관들에게 사실상 전권을 맡긴 뒤 결과에 대해서도 확실히 책임을 지게 하는 ‘분권형 책임장관제’를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역대 거의 모든 정권이 청와대를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부처 장관들은 ‘청와대 거수기’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윤 당선인은 장관들에게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며 지속 가능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30대 청년 장관을 적극 등용하고 부처마다 청년보좌역을 두도록 해 ‘젊고 유능한 내각’ 이미지를 강화하고 젊은 세대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국정에 최대한 반영되도록 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11일 대통령직인수위에 ‘청와대 개혁 TF’를 별도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제가 헌법에 명문화된 상황에서 이 같은 내각제 요소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세심한 보완책들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문이다. 실제로 현행 헌법상 국무총리는 국무위원 제청권과 각료 해임 건의권 등을 행사할 수 있게 돼있지만 총리와 장관 모두 임면권자인 대통령의 뜻에서 벗어난 결정을 내리기가 결코 쉽지 않았던 게 현실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의 의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책임장관제에 대한 법적 규정이 마련돼야 실질적인 운용이 가능할 것”이라며 “총리와 장관의 정책 개입 범위와 책임 소재 등을 명확히 해 대통령과 대통령실, 총리·장관 사이의 역할 혼선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지방분권에 대한 청사진도 제시했다. 세종시에 대통령 제2집무실을 신설하고 국회 세종의사당도 임기 내 개원해 미완에 그친 세종시의 행정수도화를 완성하겠다고 포부도 밝혔다. 국민의힘도 지난해 12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정진석 국회부의장은 “세종시에 대통령 집무실이 마련되면 개헌 없이도 세종시가 실질적 행정수도의 면모를 갖추면서 국가 균형 발전과 국가 경쟁력 강화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은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데 따른 행정 이원화와 비효율 우려를 불식시키고 제2집무실을 정착시키려면 대통령이 먼저 ‘일주일에 최소한 며칠은 세종에서 업무를 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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