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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ICBM 의지 또 과시한 김정은...레드라인 넘나드는 속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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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노동신문은 1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해위성발사장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미사일 발사 시설의 확장과 개축을 지시하며 '정찰위성' 발사를 공식화 했다. 뉴스1

노동신문은 1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해위성발사장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미사일 발사 시설의 확장과 개축을 지시하며 '정찰위성' 발사를 공식화 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 정찰위성 개발 의지를 또 드러냈다. 국제사회가 레드라인으로 여기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와 핵실험에 한 발 더 다가서는 모양새다.

북한 매체들은 11일 김 위원장이 서해 위성발사장을 찾아 미사일 발사 시설의 확장·개축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정찰위성' 발사도 공식화했는데 인공위성 체계 시험을 빌미로 곧 ICBM 성능 개량을 위한 시험 발사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모라토리엄 파기 선 넘나드는 北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위치한 서해 위성발사장은 북한이 2018년 미국과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선제적 신뢰 조처로 폐쇄를 결정했던 곳이다. 북한 매체들이 전날 김 위원장이 국가우주개발국을 방문해 "2025년까지 다량의 정찰위성을 쏘라"고 지시했다고 밝힌 데 이어 이날 장거리 로켓 발사장 현지지도 사실을 전하는 등 김 위원장의 동선을 잇달아 공개한 건 군사적 긴장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한 서해위성발사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 서해위성발사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김 위원장은 발사장에서 대형 운반 로켓을 발사할 수 있도록 발사장 구역과 로켓조립 및 연동 시험시설 등을 개건·확장할 것을 주문했다. 일반적으로 인공위성 발사에 사용하는 장거리 로켓은 위성을 보호하는 덮개인 페어링 부분만 탄두로 교체하면 ICBM으로 즉시 전용할 수 있어 미국은 북한의 위성 발사용 로켓 개량을 ICBM 성능 개량과 같은 맥락으로 여기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16년 3월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를 채택하며 "비록 위성 발사나 우주발사체로 규정될지라도" 북한의 발사를 막아야 한다고 콕 짚어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가우주개발국을 시찰하고 5년내 다량의 정찰위성을 배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가우주개발국을 시찰하고 5년내 다량의 정찰위성을 배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여기에 북한이 핵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는 미국 학자의 주장도 나왔다. 제프리 루이스 미국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프로그램 소장은 지난 7일(현지시간) 북한이 2018년 5월 폭파한 풍계리 핵실험장 복구에 나선 정황을 최근 위성사진을 통해 포착됐다고 밝혔다.

북한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은 핵실험·ICBM발사 모라토리엄(유예) 파기에 근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미 국방부도 이날 북한이 최근 '정찰위성'과 관련해 두 차례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신형 ICBM의 성능을 시험하려는 의도라는 평가를 내놨다.

정찰위성 보유는 김정은 숙원사업

김 위원장은 지난해 1월 8차 당대회에서 직접 국방력 강화 5개년 계획의 5대 핵심 과제를 제시하며 군사정찰위성 개발을 지시했다. 이밖에 극초음속 미사일, 수중 및 지상에서 발사하는 고체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 무기, 무인정찰기 등이 당시 제시한 5대 과제다.

북한이 2012년 4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공개한 '광명성-3호' 위성의 모습. AFP, 연합뉴스

북한이 2012년 4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공개한 '광명성-3호' 위성의 모습. AFP, 연합뉴스

북한의 '정찰위성' 보유에 대한 의지는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2014년 '무인기 사건'이 단적인 예다. 당시 추락한 북한발 무인기가 국내 곳곳에서 발견되면서 북한이 대남 정찰용 무인기를 남측으로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무인기에 탑재돼 있던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주요 군 시설은 물론 청와대까지 선명하게 촬영한 사진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한·미 군 당국의 정보자산에 대응해 '우리식 정찰기'에 대한 야망을 키워온 북한이 8년 여 만에 군 정찰위성 보유를 가시화하는 단계까지 들어선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정찰위성개발은 사실상 북한 정권의 숙원사업 가운데 하나"라며 "두 차례에 걸친 정찰위성 개발 시험 및 국가우주개발국과 서해 위성발사장 현지지도 행보는 치밀한 계획에 따라 목표를 반드시 관철하려는 명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尹 정부, 美 대응 능력 시험

'김정은식 마이웨이'의 배경에는 타이밍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과거에도 한국 대선이 끝나고 정부 교체기가 되면 군사행동에 나서며 존재감을 과시하곤 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에는 연말까지 모두 11차례나 미사일을 발사했다. 6차 핵실험(9월 3일)과 ICBM급인 '화성-15'형을 발사(11월 29일)하며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것도 이때다.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2월 25일)을 앞둔 2013년 2월 12일에도 3차 핵실험을 감행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뉴스1

북한의 이번에도 새로 들어서는 윤석열 정부의 대응 능력을 시험하고 대남 정책 방향을 가늠해 보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강력한 우군인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 주도의 제재에 협조하지 않는 틈새도 노렸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러 간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ICBM 시험발사를 하더라도 안보리 차원의 강력한 추가 제재가 나오는 게 쉽지 않다는 판단 아래 북한이 레드 라인을 넘나들며 핵·미사일 능력 증강을 달성하려는 전술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 때리기에 올인 중인 미국이 북한의 도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며 대처할 수 있는 외교적 여력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측면이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움직이며 정찰위성 개발 및 발사가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며 "한편으로 미국을 압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레드라인을 넘지 않도록 자신들의 손을 잡아 달라는 메시지도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금강산 남측 시설 주변에서 철거에 쓰일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장비 이동이 포착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10월 금강산 시설을 시찰하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 상황을 이유로 2020년 1월 철거 연기를 우리 측에 통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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