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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 "노조에 치안권 넘어가"…이런 불만 없앤다는 尹 공약 [윤석열 노동공약으로 본 변화 예측]

중앙일보

입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월 15일 오전 부산 영도구 순직선원위령탑을 찾아 정태길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선원노련) 위원장과 참배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월 15일 오전 부산 영도구 순직선원위령탑을 찾아 정태길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선원노련) 위원장과 참배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 소감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공정과 상식의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법치라는 헌법 정신을 되새기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분야 공약에도 이 기조가 그대로 녹아있다. 윤석열 정부의 고용노동 정책은 '노동 존중'과 '소득주도성장' 등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와 확연한 차이를 보일 전망이다.

민간 주도 괜찮은 일자리 창출…기업 자율 보장

윤 당선인은 문 정부와 마찬가지로 일자리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 결은 문 정부와 다르다.

문 정부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일자리 81만개 창출'을 내세웠다. 이 공약을 실현하려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고용 형태가 바뀌었을 뿐 일자리는 늘지 않았다. 입사를 준비하던 청년과 기존 정규직의 반발을 불러왔다. 여기에다 돈을 퍼부어 공공부문 단기 일자리를 양산했다. 언뜻 일자리가 늘어난 듯 통계 착시현상이 나타났다. 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한 '비정규직 제로 선언'은 임기 말 비정규직 800만명이라는,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규모를 기록하는 역설을 낳았다.

윤 당선인은 '기업 성장과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 주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공약했다. 좋은 일자리는 세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간 기업의 활력을 도모함으로써 생긴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기업의 성장을 돕고, 경제 활동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를 풀어가겠다는 의미다.

10일 부산 금정 서동로 부근에서 관계자들이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 현수막을 걸고 있다. 뉴스1

10일 부산 금정 서동로 부근에서 관계자들이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 현수막을 걸고 있다. 뉴스1

임금체계 선진화…시장 중심 생산성 향상 독려

고용노동 부문 부속 공약에 이런 윤 당선인의 생각이 담겨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관련해선 명확한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비정규직을 악으로 보고,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전환을 추진해온 정부의 정책에 변화가 예상된다. 기업의 인력운용 자율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상식과 공정에 입각한 전환을 유도할 전망이다.

윤 당선인의 공약에는 임금체계 개편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매년 해만 바뀌면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연공급제) 대신 직무 가치와 성과를 반영한 임금체계로의 개편을 약속했다. 이는 생산성과 성과 등을 고려한 임금체계다.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은 "임금체계만 제대로 바꿔도 노동개혁의 절반은 완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연공서열에 따른 호봉제와 같은 임금체계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과거 이 임금체계를 운용하던 일본도 1990년대부터 역할급이나직무급으로 바꿨다. 일본노동조합총연합(렌고)은 매년 노동백서를 낼 때 예외 없이 첫 장에 생산성 국제비교 자료를 제시하며 향상 방안을 산하 노조에 독려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선 '현행 1~3개월인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 기간을 1년 이내로 확대'하는 공약을 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주당 최대 52시간을 넘기지 않는 범위에서 근로자가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근로자의 결정 권한을 강화하면서 기업은 기업 사정에 따른 유연 근로의 틀을 확대할 수 있다. 법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강제하기보다 유연한 근로시간제를 추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 대구지역본부 노조 간부 등 200여명이 지난달 17일 오전 대구 달서구 호산동 한국노총 대구본부 다목적홀에서 윤석열 대선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국노총 본부는 이에 앞서 이재명 후보 지지를 결의했다. 남승렬 기자

한국노총 대구지역본부 노조 간부 등 200여명이 지난달 17일 오전 대구 달서구 호산동 한국노총 대구본부 다목적홀에서 윤석열 대선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국노총 본부는 이에 앞서 이재명 후보 지지를 결의했다. 남승렬 기자

고무줄 법치주의 확립 통해 노사 자치 유도

윤 당선인은 공공부문 노동이사제와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공약했다. 노동이사제는 여야 합의로 최근 국회에서 입법화됐다.

주목을 끄는 것은 노사 현장의 법치 확립이다. 현 정부에선 노조의 회사 점거와 같은 불법행위에 대해 "노사 간의 문제"라며 뒷짐을 지는 경우가 빈발했다. 지난달 10일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 본사를 점거했을 당시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쟁의행위가 적법한지는 수사기관 입장에서 먼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기본적으로 CJ대한통운 문제는 노사 간 문제로 이해하고 있다"며 "노사 간 대화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택배노조가 (본사에서) 자진 퇴거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노조가 점거 19일 만에 스스로 점거 농성을 해제하고 나서야 본사 업무가 정상화됐다. 지난해 8월 현대제철 협력업체 노조가 현대제철 통제소를 점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노조에 치안권이 넘어갔다"는 비판이 나왔다.

윤 당선인이 엄정한 법 집행을 공약한 만큼 윤석열 정부에선 법치 확립을 통한 노사 자율이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줄기가 될 전망이다. 이로 인해 노조와 정부 간의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조합원들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2022년 공공운수노조 비정규직 투쟁선포 기자회견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조합원들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2022년 공공운수노조 비정규직 투쟁선포 기자회견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획일적 최저임금 인상 대신 저소득층 소득 보전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첨병은 최저임금이었다. 문 대통령 임기 동안 시간당 6470원이던 것이 올해 9160원으로 41.6%나 올랐다. 이로 인해 일자리가 급속하게 줄어드는 등 부작용이 있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도 인상 기조는 유지됐다.

윤 당선인은 저소득층의 소득보장을 위해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를 공약했다. 근로 소득이 적은 근로자에게 소득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일하는 복지 제도'다.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선별적으로 국가가 추가 소득을 보장으로써 저소득층에 대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내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최저임금 인상이 대기업 근로자에게 오히려 이익' '중소 자영업자에 과중한 부담' '일자리 감축'과 같은 논란이 줄어들 전망이다.

윤 당선인은 또 "최저임금의 지역별·업종별 차등 인상"도 공약했다. 하지만 이 공약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국내 기업은 지역을 구분해 임금을 주지 않는다. 물가가 낮은 곳에 근무하는 직원도 물가가 높은 곳에 근무하는 직원과 직급이 같다면 같은 임금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만 지역별로 차등을 두기 어렵다. 자칫 낮은 최저임금이 책정된 지역에 '열등 지역'이란 낙인이 찍힐 수 있다. 국민통합을 내세운 윤 당선인으로서도 공약을 이행하기가 만만찮을 전망이다. 업종별 차등에 대한 논의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월 23일 서울 여의도 카페 '하우스'에서 진행한 '국민공약 언박싱 데이 행사'에 참석해 부모 육아 재택보장 등 국민제안 공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월 23일 서울 여의도 카페 '하우스'에서 진행한 '국민공약 언박싱 데이 행사'에 참석해 부모 육아 재택보장 등 국민제안 공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산업안전, 공포 마케팅 대신 선진국형 예방 주력

산업안전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국책과제로 분류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처벌보다는 예방에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현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했다. 모두 경영진과 기업을 처벌하는데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러나 윤 당선인은 '산재 예방에 행정 역량 집중'을 공약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운용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처벌보다 예방 위주의 활동을 강화하는 쪽이다.

일각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정도 점친다. 그러나 헌법소원과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정 작업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 제정을 밀어붙였던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다수당인 점도 걸림돌이다.

이외에 윤 당선인은 육아휴직을 현행 남녀 각각 1년에서 1.5년씩, 부부합산 총 3년으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배우자 출산휴가는 현행 10일에서 20일로 늘리는 방안을 내놨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법치로의 환원과 시장경제에 입각하되 일하는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은 윤 당선자의 소신"이라며 "균형잡힌 노사관계를 지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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