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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직격인터뷰

"허니문 거의 없을 수도…더더욱 통합 노력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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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220310 국민의힘 선대위 해단식 10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한 윤석열 당선인이 당선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20310 국민의힘 선대위 해단식 10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한 윤석열 당선인이 당선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권교체는 했지만 심판은 못 했다.”

10일 오전 2시 30분 ‘윤석열 대통령 당선 유력’이란 속보에 박동원 정치컨설턴트가 보인 반응이다. 실제 민심이 미묘했다. 역대 최고로 많은 1639만4815명이 윤 대통령 당선인에게 표를 던졌지만 동시에 역대 최고로 많은 1614만7738명이 2위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둘의 표차는 24만7077표(0.73%포인트), 전체 유권자에 비하면 한 줌도 안 됐다.

이번 대선 민의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중앙일보와 함께 2030과 4050의 민심 추이를 조사해온 한국정당학회 소속 중견 정치학자인 강신구(아주대)·구본상(충북대)·김준석(동국대)·최준영(인하대) 교수에게 10일 물었다. 이들은 “허니문이 없을 수도 있다”며 “결국 통합이 답”이라고 답했다. 이들과의 대화를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았는데도 초박빙 승부가 됐다.
▶김준석=“국민의 절반이 정권 교체를 바라는 상황에선 정부여당이 이길 수 있는 희망은 지지층의 결집과 상대 진영의 분열일 수밖에 없었다. 일부 여권 인사의 평가대로 민주당은 이 선거를 대단히 잘 치렀다. 결과적으론 집권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오히려 야당이 얻을 표를 온전히 가져오지 못했다고 본다. 어딜 봐도 국민의힘은 아직 탄핵을 극복하지 못했고, 정권을 담지할 수 있는 세력으로 비치긴 어려웠다.”

▶구본상=“구도(정권교체)와 인물론 충돌에 따른 결과라고 본다. 주요 후보 호감도가 매우 낮은 상태에서 선거 과정이 진행됐지만, 투표율은 높게 나타났다. 싫으면 투표하러 안 나가는데 나갔을 정도로 결집된 상태란 의미다. 누가 되었든 (선거 결과를)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강신구=“원래 투표는 갈등 상황에서 ‘나는 누구의 편에서 싸울 것인가’를 표를 통해 미리 보여주는 행위다. 그래서 ‘종이로 된 돌(paper stone)’이라고 한다. 51대 49냐, 70대 30이냐의 의미는 다르고 달라야 한다. 이 차이는 승자가 패자에게 자신의 입장을 강제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저항과 반발의 강도, 나아가서는 봉기(revolt)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승자와 패자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표뿐만 아니라 경쟁자에 주어진 표의 의미와 무게를 되새기는 게 필요하다.”

강신구 교수

강신구 교수

-특히 정계 입문 9개월 만에 대통령 당선인의 자리에 오른 윤 당선인은 이번이 상대 당과 치르는 첫 선거였다. 무엇을 깨달아야 했다고 보나.
▶최준영=“당연히 통합이다. 이번 선거에서 누가 당선됐느냐에서 민의를 찾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이재명 후보가 될 수도 있었다. 초박빙이란 건 나라가 갈라져 있다는 것이고 그대로 방치한다? 진짜 내전 상태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위기상황이니 통합하라는 게 메시지라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윤 당선인이 정치 신인이어서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의도의 닳고 닳은 원칙이나 이념, 그룹과 거리를 둘 수 있고 조심하고 신중할 수 있어서다. 안철수 활용법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TV토론을 보니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과 접점을 가질 수 있는 정책적 공약들을 냈더라.”

▶구본상=“선거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난 상대 후보(진영)에 대한 비난, 경멸 태도 등을 누그러뜨리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지지자들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정치보복에 대한 우려도 적극적으로 불식해야 한다. 나는 당선인의 정치적 경험 부재에 대해 오히려 우려하는 쪽이다. 의회 경험을 통해 갈등 상황에서도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는 자세를 체득하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근소하게 이긴 정당이 의회 다수 정당과 일치하지 않는 분점 정부 상황에서 입법 생산성이 낮을 가능성이 큰데, 의회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 조급해질 수도 있다.”

구본상 교수

구본상 교수

-이번 대선엔 지역·세대·성 등 삼중의 갈등 구조가 명백해졌다.
▶최준영=“이념까지 사중 갈등이라고 본다. 무서운 게, 갈등이 교차가 되어야 힘이 빠지는데 하나로 중첩·정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호남·진보와 4050대와 2030여성, 더불어민주당이 다 연결되는 거다. 더더욱 통합, 협치가 중요한 어젠다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김준석=“세대 갈등에 이어 젠더 갈등이 부각됐고 사라진 것 같은 지역갈등까지 여전히 잔존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정치인들이 이러한 갈등을 만들어낸 건 아니지만 이를 이슈화해서 정치에 활용했다는 책임에선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본상=“지지 후보뿐만 아니라 여러 쟁점에서 20·30대, 40·50대, 60대 이상 간 차이는 명확해졌다. 20·30대, 특히 20대에서 젠더 갈등은 이념 차원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대선 이후에도 계속되리라 전망한다. 특히 20대 여성들이 페미니즘 백래시(역풍) 때문에 얘기를 안 하고 조심하는 분위기였는데 이대남이 이슈가 되면서 이대녀들도 (이대남들과) 다른 표심을 줬다.”

김준석 교수

김준석 교수

-그렇다면 국민의힘의 호남 공략과 세대포위론 특히 이대남·이대녀 갈라치기 전략이 실패했다고 보나.
▶구본상=“호남 공략은 결과적으론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장기 전략으론 실패했다고 보지 않는다. 꾸준하게 두드릴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경험적 연구 결과다. 이대남·이대녀 갈라치기 전략은 실패했다고 본다. 이대남 위주의 선거 전략은 이대녀들이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로 옮겨갈 가능성을 크게 줄였다고 평가한다. 2000년대 이후 20대 후반~30대 초반에서 여성 투표율이 남성 투표율보다 높은 것은 일관되게 나타난다. 20대 남성 지지를 얻더라도 20대 여성 지지를 잃으면 20대 다수의 지지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주당 출신의 자치단체장이 잇단 성추행으로 물러났음에도 여전히 여성은 보수정당이 성차별주의적이라 여기는 성향을 보이고 이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있다.”

▶최준영=“선거공학적으로 보면 이대남을 데려오지 못했다면 이번 선거를 졌을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했던 이들을 데리고 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선거공학적으론 맞는 전략이었지만 국민통합에선 또 다른 과제를 만들었다. 어떻게 젠더 갈등을 봉합할 것인가가 또 다른 과제로 등장했다고 본다.”

▶강신구=“20대는 아직 굉장히 유동성이 강한 세대라고 본다. 지금 완전히 보수화된 세대라고 하지만 2016년 촛불시위 할 때 거리에 나왔던 세력이 20대다. 완전히 집토끼처럼 카운트할 수 없다.”

최준석 교수

최준석 교수

-172석 야당이란 한 번도 경험 못 한 수준의 여소야대 의회가 기다리고 있다.
▶구본상=“윤 당선인이 근소하게 이긴 상황이라 허니문 기간도 거의 없을 가능성이 크다. 지지자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상대방도 공간을 주는 게 필요한데 특히 지방선거로 바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굉장히 공세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클 것 같다. 걱정이 많이 된다.”

▶김준석=“현재 구도는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구도가 아니다. 임기 초 국정을 주도해 성과를 내야 하는 대통령의 입장에선 야당과 타협이 필요하다. 야당도 무조건 발목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민주당이 대선 패배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역시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민주당의 경우 여전히 문재인 대통령이 대주주다. 이재명 후보가 불리한 선거에서 0.7%포인트 차이의 접전을 만들어 냄으로써 후보로서의 득표력은 보여준 바 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후보에 지우고 당권을 회복하려는 친문계와 대선에서의 일정의 성과를 토대로 당권을 새롭게 장악하려는 친이재명계의 갈등이 깊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일단은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윤 당선인에 대한 견제를 통해 당내 갈등을 일단 봉합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윤 당선인은 임기 초 순탄한 운영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강신구=“제일 처음으로 맞부딪히는 게 정부조직법과 국무총리 추천이 될 것이다. 윤 당선인이 어떤 인사를 내세우느냐에 따라 방향이 바뀔 것 같다. 윤 당선인이 민주당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인사를 내놓으면 민주당의 반대가 정당화되는 상황이 될 것이고, 받아들일 만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충분히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인사를 후보로 내세웠음에도 민주당이 반대하면 국민이 ‘딴지 건다’고 느끼고 돌아설 수 있다. 당선인의 제안에 따라 야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이다.”

▶최준영=“당선인의 입장에서 계속 통합이라는 어젠다를 가지고 저들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론 아예 ‘총리를 야당에서 정하라’라고 통 크게 양보하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그 정도 화합의 손길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