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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민영이 고발한다

정권교체로 끝? 청년들, 민주당 떠났듯 언제든 떠날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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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국민의힘 청년보좌역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윤석열 대선후보. 그래픽=전유진

지난 1월 국민의힘 청년보좌역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윤석열 대선후보. 그래픽=전유진

20대 대통령 선거 유세의 피날레를 장식한 지난 8일 밤 서울 시청 광장의 열기는 내가 어릴 적 경험했던 2002년 월드컵을 방불케 했다. 정권교체를 향한 국민적 열망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국민의힘 내홍이 한창이던 1월 초, 출근길 인사에 나선 윤 후보를 국민은 철저히 외면했다. 같이 사진을 찍자거나 사인을 요청하기는커녕 다가와 인사하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정권교체를 위해 어쩌면 다시 5년을 기다려야 했을지 모를, 아찔한 순간이었다. 국민의힘 내부의 세대 갈등 탓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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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대선 주자가 된 후 세대 간 내홍은 계속됐다. 정점은 1월 5일 서울시당에서 마련한 청년간담회였다. 윤 후보가 참석한다고 홍보해놓곤, 휴대전화로 후보를 등장시켜 뭇매를 맞았다. "새롭게 출발하겠다"며 선대위를 해체한 직후였기에 후폭풍은 더욱 거셌다. 패색이 짙었다. 게임으로 치면 그대로 'GG(패배 선언)'를 치고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아니, 정말 졌을 것이다. 윤 후보가 바로 다음 날 직접 청년보좌역 간담회를 하지 않았다면.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선 후보가 참석하는 '전국 청년 간담회' 화상회의를 지난 1월 5일 개최했으나, 예정과 달리 윤 후보는 통화로만 참석해 참가자들의 분노를 샀다. [중앙포토]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선 후보가 참석하는 '전국 청년 간담회' 화상회의를 지난 1월 5일 개최했으나, 예정과 달리 윤 후보는 통화로만 참석해 참가자들의 분노를 샀다. [중앙포토]

국민의힘 내부에서 선거를 지켜본 내 판단으로는 이번 대선 최대 분기점은 1월 6일 청년보좌역 간담회였다. 간담회 전 '막상 후보 앞에서 직언할 수 있는 청년이 얼마나 되겠냐'던 걱정은 기우였다. 날 것 그대로의 성토장이었으니 하는 말이다. 청년보좌역 절반 이상이 소위 여의도 문법과 거리가 먼, 보통 청년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날 윤 후보는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청년보좌역들의 비판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받아 적고는 호탕하게 “앞으로 여러분이 직접 하시라”고 말했다. 또 간담회가 끝난 직후 의원총회에서는 고군분투하는 이준석 대표를 찾아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화해를 청했다. 출근길 인사 때의 충격과 청년보좌역의 충언이 만들어낸 고무적인 변화였다. “여러분이 직접 하시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국민의힘은 청년을 중심으로 한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지난 1월 의원총회에서 갈등 봉합 뒤 포옹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지난 1월 의원총회에서 갈등 봉합 뒤 포옹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위키윤, 59초 쇼츠 공약, AI 윤석열, SNS 단문 메시지 등 선거의 흐름을 바꾼 주요 카드는 모두 청년들 작품이었다. 후보와의 직접 소통 창구가 생기면서 청년들은 들러리가 아니라 정책부터 메시지까지 당과 유기적인 협력을 이뤄냈다. 조직력은 물론이고 메시지 전달력이 앞서는 더불어민주당은 처음엔 AI 윤석열과 단문 메시지 등에 대해 “무책임하고 무성의하다”라고 비판했지만, 결국 똑같이 따라 했다. ‘꼰대 정당’으로 평가받던 국민의힘이 콘텐트를 주도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네거티브 대응도 신속했다. 윤 후보를 향한 신천지, 무속, 구둣발 등 네거티브 프레임은 민주당 광주선대위의 신천지 특보 임명, 밀짚 인형 저주의식, 이재명 후보의 실내 흡연 사진 등으로 무력화했다. 청년 지지자들이 트위터 등 SNS에서 신속하게 발굴해 제보한 덕이었다. 과거의 꼰대 정당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연이어 ‘59초 쇼츠’ 공약을 내놓았다. [유튜브 캡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연이어 ‘59초 쇼츠’ 공약을 내놓았다. [유튜브 캡처]

그러나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여전히 당내의 대다수 어른들은 청년들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젠더 이슈에 대한 불협화음이 이를 잘 보여준다. 여성가족부 폐지가 공약으로 나간 이후, 한동안 서로 다른 견해들이 우후죽순 퍼지며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됐다. 가령 "성별채용비 공시제나 지역인재할당제와 같은 민감한 이슈를 청년들의 검수 없이 성급하게 건드렸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청년들에게 조언 한 번만 구했어도 피해갈 수 있었을 말실수들로 구설에 오르는 일도 잦았다. 공식 보도자료에 ‘오또케(여경을 비하하는 표현)’라는 표현이 포함돼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30 지지자들의 민감한 부분이 무엇인지, 그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을 때 어떤 파장이 찾아올 수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몰이해의 다른 한편에는 여의도 기득권들이 청년이 의사 결정의 중심이 되는 것을 꺼려하고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이런 미세한 균열을 파고드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공세가 이어졌다. 이런 위기의 순간마다 청년들에게 충분한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그 미세한 균열을 발 빠르게 봉합하지 못했더라면 1월 초 출근길 인사길의 아픔은 패배로 이어졌을지 모른다.

비록 대선을 승리로 마무리하긴 했으나 이런 문제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청년 지지자들은 국민의힘에 충성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기를 바라며, 국민의힘이 그 이해관계를 충족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떠날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민주당을 떠난 이들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무너지는 지지율 앞에서 떠밀리듯 청년들에게 폭넓은 권한을 준 덕분에 무슨 문제가 생겨도 빠르게 수습할 수 있었다. 임시방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체질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대선 한번 승리했다고 전리품을 나눠주듯 또 기득권만 챙기고 청년들을 배제하면 이미 겪었던 문제는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 정권교체가 끝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승리의 축배를 들기도 전에 고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선에서 승리한 지금도 국민의힘은 위태롭다. 2년간 180석 거대 야당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 걸음걸음이 살얼음판인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내홍의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청년 지지자들의 손을 놓아버리는 건 과거로의 회귀를 넘어 국정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윤 당선인은 시대가 선택한 대통령이다. 지금 시대가 원하는 건 세대 통합을 넘어 지역 통합, 정치 통합이다. 이 시대적 과제를 누구보다 성실히 수행할 사람이 윤 당선인이라고 믿는다. 윤 후보가 청년들의 손을 놓지 않는다면, 청년들도 윤 당선인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젊은 피를 온전히 수혈한 국민의힘으로 거듭났을 때 보수의 장대한 미래도 꿈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