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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와 충돌, 투표함 9시간 못열었다…예고된 선관위 참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찰이 10일 인천시 부평구 삼산체육관에서유튜브 채널 '가로세로 연구소(가세연)' 와 일부 인천 시민들이 이동을 못하도록 막은 투표함을 이동시키고 있다. 뉴스1

경찰이 10일 인천시 부평구 삼산체육관에서유튜브 채널 '가로세로 연구소(가세연)' 와 일부 인천 시민들이 이동을 못하도록 막은 투표함을 이동시키고 있다. 뉴스1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사전투표 부실관리’의 여진은 9일 본 투표 당일에도 이어졌다. 선관위에 대해 고조된 불신이 원인이었다.

인천 부평구의 한 개표소에선 ‘부정 투표함’ 의혹으로 개표가 9시간가량 지연됐다.

10일 인천시 선관위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 30분쯤 인천 부평구의 한 개표소에선 보수 성향 유튜버 및 일부 시민들이 ‘신원 미상’의 남녀가 정체불명의 투표함을 개표소로 추가 반입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선관위 측은 “투표함을 이송한 이는 투표관리관과 개표 참관인이며, 개표소 앞이 이송 차량으로 붐벼 도보로 투표함을 운반하려 했던 것”이라 해명했지만, 충돌과 대치는 장장 9시간가량 이어졌다. 이날 오전 4시 45분이 돼서야 보수 유튜버 20여명이 참관하는 가운데 개표가 이뤄질 수 있었다. 해당 투표함에서는 윤석열 당선인의 표가 가장 많이 나왔다.

서울 강남구의 한 투표소에선 유권자가 기표 용구를 문제 삼아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중년 남성 유권자가 “투표지에 기표 도장이 절반밖에 안 찍힌다”며 고성을 지르며 소란이 일자 경찰이 나선 것이다.

같은 날 일부 유권자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 같은 마찰이 빚어졌다는 사실을 알리며 의혹이 확산했다. ‘특정 후보의 기표란에 코팅이 돼 있어 도장이 찍히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중앙 선관위 측은 “전혀 근거 없는 가짜뉴스”라고 반응했다.

유권자의 의심에서 비롯된 충돌이 아닌 선관위의 어이없는 실책도 곳곳에서 이어졌다. 경기 오산시의 한 투표소에서는 선관위 측이 착오로 “이미 사전투표를 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며 한 유권자를 돌려보내는 일이 발생했다. 경북 예천에서도 미투표자가 이미 제20대 대통령선거에 투표한 것으로 표기되는 일이 발생해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사에 나섰다.

‘조해주 논란’ 이후 “선관위, 중립기관이란 위상 스스로 포기”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둘째 날인 5일 오후 제주시 연동 사전투표소인 제주도의회 내 임시 기표소 앞에서 사전투표를 마친 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바닥에 놓인 가방 안에 투표지를 담고 있다. 이 같은 투표 방식으로 인해 '소쿠리 투표' 논란이 커졌다. 뉴스1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둘째 날인 5일 오후 제주시 연동 사전투표소인 제주도의회 내 임시 기표소 앞에서 사전투표를 마친 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바닥에 놓인 가방 안에 투표지를 담고 있다. 이 같은 투표 방식으로 인해 '소쿠리 투표' 논란이 커졌다. 뉴스1

그러나 이 같은 충돌과 소란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선관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관위의 “자초위난”이라 평가했다. “당장 지난 1월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인 조해주 전 상임위원이 ‘알 박기 연임’ 논란 끝에 사퇴하지 않았느냐”며 “선관위원 9명 중 2명이 공석이 된 상황도 선관위 부실 관리 사태의 원인이다”고 짚었다. 이어 “남은 선관위원 7명 중 6명이 대통령이 임명했거나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사람들이다. 선관위가 중립기관이란 위상을 스스로 포기하며 불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라 비판했다.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대상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 관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대상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 관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정희 위원장 책임 회피하지 말아야”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8일 “코로나 확진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투표에 참여해 주신 유권자들께 감사드리며, 불편과 혼란을 겪으신 유권자 및 현장에서 고생하신 분들께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뉴스1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8일 “코로나 확진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투표에 참여해 주신 유권자들께 감사드리며, 불편과 혼란을 겪으신 유권자 및 현장에서 고생하신 분들께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뉴스1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은 지난 8일 사전투표 부실 논란에 관해 한차례 사과했지만 학계와 정치권의 책임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책임지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며 “선관위가 헌법기관으로 계속 존속할 자격이 있는지를 묻게 된 상황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이어 “3.15 부정선거 이후 선거에 있어서만큼은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지로 선관위를 헌법기관으로 격상시켰던 것”이라며 “적어도 민주화 이후 이번 선거처럼 엉망이었던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반면 선관위 관계자는 “대선이 막 끝난 시점인 만큼 현재로써 징계나 책임을 논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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