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도 '브레이킹 9.99초' 도전...달려라 김국영 "깰 수 있다 아닌 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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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린 기자

한국 육상 간판 스프린터 김국영. 30대지만 100m 9초대 벽을 계속 두드리고 있다. [사진 김국영]

“저도 이제 서른 두 살(만 31세)이에요. 올해가 9초 대에 도전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육상의 간판 스프린터 김국영(광주광역시청)은 30대에도 ‘100m 마의 10초 벽’을 계속해서 두드리고 있다.

경북 예천군에서 훈련 중인 김국영은 “제 기록이 4~5년째 정체기다. 큰 기록을 위해 큰 변화가 필요했다. 예년과 똑같은 루틴으로 날씨가 풀리고 대회에 나가면 10초1, 10초2대 기록만 세우고 끝날 것 같았다. 몇 년 안에 몸이 따라주지 않는 날이 올 거다. 그래서 마지막 발버둥 치는 것”이라고 했다.

김국영은 처음으로 2022시즌을 유럽에서 시작했다. 지난 1월9일부터 2월28일까지 독일과 체코에 머물며 실내육상경기대회 남자 60m 경기에 출전했다. 지난달 17일 체코에서 열린 야블로네츠 대회에서 6초69로 우승하는 등 총 7개 대회에 나서 4차례 우승했다.

김국영은 “우리나라에만 60m 공식 기록이 없는데,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도전해봤다. 아침부터 3시간 차 타고 가서 대회에 출전했다. 전날 8시간 차를 타고 간 적도 있다. 유럽 선수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정이었다. 저도 많이 배우고 강해졌다. 대한육상연맹 임대기 회장님과 최인해 전무이사님이 두 달간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했다.

오는 18일~20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열리는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 ‘출전 기준 기록(6초63)’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9일 주최측에서 초청장을 보내왔다.

한국 100m 일인자 김국영. [사진 김국영]

김국영이 2017년 6월 코리아오픈 국제육상경기대회에서 세운 100m 한국 기록(10초07)은 5년째 멈춰있다. 앞서 김국영은 2010년 10초31을 기록, 서말구의 한국 기록(10초34)을 31년 만에 갈아 치웠다. 키 1m76cm, 체중 78㎏인 김국영은 열아홉살 때부터 ‘단거리 불모지’ 한국에서 일인자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김국영이 서귀포 아인스하나 퍼포먼스에서 스파르타 사이언스 시스템을 측정하고 있다. [사진 김국영]

‘0.01초’라도 단축하고 싶은 마음에 김국영은 겨울마다 제주로 향한다. 제주시는 전지훈련 지원 사업으로 EPL(프리미어리그), NFL(미국프로풋볼) 팀들이 사용하는 ‘스파르타 사이언스’ 시스템을 제공한다. 인공지능 기반 빅데이터와 지면반력기를 활용해 운동 능력과 부상위험성을 측정한다.

김국영은 ‘로드(준비)와 익스플로드(폭발)에 비해 드라이브(추진) 능력에 보완이 필요하고, 신체 후면부를 더 잘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김국영은 “그동안 고중량 위주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주로 해왔는데, 뒷근육의 가동성을 위한 루마니안 데드리프트 스플릿 스쿼트, 멀리 뛰기 점프 등 맞춤형 운동을 처방 받았다. 덕분에 트랙에서 추진력이 향상됐고, 국가대표 코치님도 ‘달리기 폼이 더 편해진 것 같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김국영은 35㎏ 썰매를 메고 50m를 달리는 훈련 등도 한다.

김국영의 스파르타 사이언스 시스템 측정 결과. [사진 김국영]

김국영은 작년 6월 광주에서 연습 때 비공인 기록이지만 9.98초를 찍었다. 코로나19와 햄스트링 부상 여파로 도쿄올림픽 출전이 무산된 게 두고두고 아쉬웠다. TV로 도쿄올림픽을 지켜 본 김국영은 “(우)상혁이의 높이뛰기 경기를 보고 가슴이 뛰었다. 지난달 체코에서 룸메이트였던 상혁이는 항상 자신감이 차있고 당차다”며 “32세 쑤빙톈(중국)이 도쿄에서 황인종 한계를 넘어 아시아인 최초로 9초9초대의 벽(9초83)를 깬 걸 보고 충격 받았다. ‘중국 선수도 했는데 한국인이라고 못하겠어?’란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 단거리 간판 김국영. [사진 김국영]

올해 7월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 김국영은 올해 6월까지 기준 기록 10초05를 통과해야 하거나 랭킹 포인트(현 세계 75위)를 쌓아야 한다. 올해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다음달 국가대표 선발전이 있다.

김국영은 “기록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외로웠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두드리려고 했다. 많은 분들이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달려라 김국영’이라고 응원해 주신다”며 “할 수 있다가 아닌 한다, 뛸 수 있다가 아닌 뛴다, 깰 수 있다가 아닌 깬다는 생각으로 늘 출발선에 선다”고 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